2025년 3월 9일을 끝으로, 2024년 3월에 백남준 아트센터 상시 전시로 열린 <일어나 2024년이야!>가 1년여 간의 긴 여정 끝에 마무리되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으로, 1984년 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발표한 노래 <일어나 1984년이야!>를 '2024년'으로 재설정하며 이제는 과거의 기술이 된 그때 그 당시의 새로운 기술들을 접목한 백남준의 예술을 접할 수 있었던 <일어나 2024년이야!>.
이대로 떠나 보내기 아쉬워, 인상 깊었던 작품 몇 가지를 기억해 보고자 한다.
TV 정원
전시관 한 곳을 수풀로 가득 메운 공간의 곳곳에는 아날로그 텔레비전이 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그 작고 모서리가 둥근 텔레비전들의 화면에는 화려한 색상과 패턴들 등 다채로운 화면과 리듬감이 느껴지는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이 영상들은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인 <글로벌 그루브>다. 제목의 '그루브'처럼 음악과 춤이란 매개체를 통해 전 세계적인 소통의 방향을 제시하며, 하나의 '지구촌'을 표현했다.
마치 한 송이의 꽃처럼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는 텔레비전과 우거진 자연의 만남은 인공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이미지를 보여준 < TV 정원 >. 옛 산물이 된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 현재를 거스르는 한 시대의 생동감과 활기를 느껴볼 수 있는.기술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한 하나의 유기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미디어 감시에 대한 경고를 담은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에게 백남준은 1984년 새해에 뉴욕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위성 텔레비전 생방송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송출하며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소통과 화합의 즐거움을 안겨주었으며, 전 지구적 연결로 실시간과 송출이란 개념을 통해 세계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만남을 성사할 수 있었다.
2025년이 바라본, 1984년은 전 세계가 들뜨고, 하나의 축제의 장처럼 들뜨고, 다채롭고 흥겨웠다.
훗날 미래는 기술로 인한 디스토피아로 예측한 오웰의 경고를, 백남준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서로 다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 될 수 있다고 되려 반문하는 듯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40년이 지나서 봐도 참신하고 독특하며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개척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을 넘어선 현대 미술의 장으로 넓힌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TV 부처
부처가 폐쇄회로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찍힌 자기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보고 있는 < TV 부처 >는 화면 속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성찰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존재하는 대상과 몇 초 후 출력되어 출현하는 실시간 영상 이미지 속에 있는 대상이 지속해서 순환되며 백남준이 깊이 연구하던 주제인 '현실과 재현의 동시적 관계'를 창조한다.
동양과 기술 그리고 관조적 태도라는 이질적 요소들의 조화가 인상 깊다.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 속에 부처의 인자한 미소에 마음 한편이 왠지 모르게 편안해진다.
TV 물고기 (비디오 물고기)
일렬로 늘어선 24대의 어항 뒤에 24대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놓여 있다. 모니터에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등 다양한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항 속 유영하물고기들과 다양한 화면 모니터링의 미묘하면서도 절묘한 프레임을 선사하는 < TV 물고기 >다.
프레임에 따라 물고기는 하늘을 날 수 있으며, 텔레비전의 시공간 속 하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론 어항 속에 존재하는 물고기가 TV 프레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마법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마치 실체 하지만 실체가 아닌 '재현'의 대상이 된 것처럼, 백남준은 재현과 실체의 관계를 탐구하며 기술이 구현하는 화면의 '생생함'과 현실 속 '존재'를 대비하며 기술과 자연과의 공존을 강조한다.
< TV 정원 >처럼 < TV 물고기 >또한 기술과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갈수록 점점 선명함과 있는 그대로 재현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시대에, 실재와 재현의 경계가 모호하다. 백남준은 이를 예측한 듯이, 40여년 전에 실체와 재현, 기술과 자연의 경계를 작품으로 풀어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