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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마 종 기

 

 

경상도 하회 마을을 방문하러 강둑을 건너고 

강진의 초당에서는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잔 한다는 

친구의 편지에 몇 해 동안 입맛만 다시다가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

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

돌침대에서 일어나 길 떠나는 작은 성인의 발.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나누고

성도 이름도 포기해버린 야산을 다독거린 후

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을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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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간절히 열망해 본 적이 있는가. 열망이 때로는 실패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실패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치를 향해 도전했던 프로젝트가 처참히 무너진 경험을 담고 있다.

 

나는 스무 살의 새내기 시절, 300만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청년 독서 문화 개선'을 주제로 진행된 이 도전은, 학교 안에서 책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누는 '북크로싱 캠페인', 독서 관련 굿즈를 제작해 배포하는 '팝업스토어', 그리고 이슈메이커 작가와 함께한 북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었다. 아울러 내가 사는 지역의 독립서점을 소개하는 매거진도 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기대와 달랐다. 방문자 데이터는 제대로 수집되지 않았고, 팔로잉은 이루어지지 않아 만족도조차 측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이 그 실체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내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결과물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불분명하여, 발행 주기와 컨셉 모두 흐릿해졌다. 결과적으로, 불투명한 콘텐츠는 청중에게도 제대로 다가가지 못했고, 누구에게 홍보해야 할지조차 감을 잡지 못하는 채 공중에 떠돌기만 했다.


팀장은 수상을 목표로 삼았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는 그 어떤 작은 상조차 받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프로젝트는 너무나 엉망이었음에도 당시 나는 그것을 실패라고 느끼지 못했다.

 

내가 간절히 열망했던 것은 단순한 수상이나 스펙 쌓기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그려진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경험이었다. 성과적으로는 실패일지라도, 내가 진정 원하는 가치를 이루려 했던 그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마종기 시인이 말하길,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열망하며 살아갈 것인가, 또 무엇을 통해 실패를 마주할 것인가.

 

성과가 미흡했다고 실망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그 가치를 향한 열망에 주목하자. 목적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멋진 삶이 아닐까.

 

***

 

기독교 신앙 아래 쓰여진 이 시를 나는 어떻게 머금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아래의 글을 써내려갔다. 보이는 것을 바라서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와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실체를 바라봤던 나의 이야기이다. 물론 세상물정 모르는 어렸을 적 이야기라 보이는 것 너머의 가치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취업 생각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 속에 지내고 있다.

 

일이 아닌 가치를 바라보자.

 

그게 숨통이 트일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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