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긴 4개월이 지나, 약속되었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기간이 마무리되어 간다. 기한이 정해진 글을 꾸준히 써본 적이 없던 터라 고민과 방황도 있었으나, 그 끝에 남긴 약 스무 개의 글을 돌아보니 제법 뿌듯한 마음도 든다.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영화를, 책을, 일상을 뒤적이며 보내온 시간을 떠올리면 문득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과거: 글을 통해 존재하는 나
책 ‘창조적 행위’의 한국 번역본에는 ‘존재의 방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해당 제목이 붙은 이유는 첫 챕터의 내용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첫 챕터인 ‘누구나 창조한다’ 속 내용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창의적 행위를 하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살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창조를 거듭하는 행위를 통해 세상 속에 존재한다.
나에게 가장 의식적이며 친숙한 창조적 행위는 바로 ‘글쓰기’다.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글쓰기를 즐기기 시작한 건 바로 ‘코로나 블루’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는 고사하고 주변 사람들과도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 없던 시절, 나는 혜화의 숱한 공연장으로 향했다. 5인 이상 편하게 모일 수 없고, 해외여행도 가기 어려운 시기에 뮤지컬은 내게 유일한 세상과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였다. 내가 느낀 감정과 휘몰아치는 생각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내게 가장 익숙한 방법인 글쓰기를 선택했다. 혼자만 간직하기 아쉬운 후기들을 블로그에 하나씩 기록했다. 이후 블로그에 책, 영화 등의 감상도 남기면서 글에서 다루는 문화 예술 종류를 확장했고, 공부로 인해 잊고 있었던 ‘글쓰기’에 대한 호감이 싹텄다. 글을 통해 자유로이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내가 쓴 글이 누군지 모를 타인에게 닿아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이 소중했다. 사람과의 단절이 당연했던 시기에 글로 인해 숨통이 트였다. 그 호감의 씨앗이 자라 에디터의 길까지 나를 이끌었다.
현재: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그렇다면 코로나 시기도 끝난 지금까지도 왜 나는 글을 쓰는가? 나에게 글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왜 예술을 만드는가?’ 챕터 속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는 각자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공유하고 세상에 머문 시간을 나타내는 기념물로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짧게 머물다 사라지기에,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내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증거를 남겨두고 가는 것이다.
나 또한 유사한 이유로 글을 썼다. 코로나 시기야말로 ‘내가 여기에 있다’라고 세상에 소리치고는 수단으로서 글을 활용했다. 그렇게라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타인과 소통하며,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꼈다.
에디터로서의 4개월이 지난 지금 글쓰기는 위의 의미와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에디터 활동을 진행하며 꾸준히 글을 작성하는 습관이 생겼고, 작은 일상도 관찰하며 돌아보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나씩 쌓이는 글들은 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고, ‘나’를 찾아가는 긴 로드맵이 되었다.
‘Project 당신’ 중 ‘자기소개’를 주제로 한 글은 특히나 나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해당 글을 작성하던 시절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새로운 분야를 배우며 자신감이 위축되던 시기였다. 그때 처음 주어진 ‘Project 당신’ 글의 주제가 ‘자기소개’였고, 가장 자신이 없던 시기에 본인을 소개하게 되어 고민을 거듭했다.
긴 고민 끝에 내 현재 상태를 글로 솔직하게 공유하고,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한 나만의 시도를 ‘마법 주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쓰기로 결정했다. 해당 글을 작성하며 글로부터 치유 효과를 경험했고, 위로를 받았다. 더 나아가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내가 적은 말들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던 특별한 글이다.
또한 글을 쓰는 행위는 타인의 글을 읽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많은 글을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고, 자연스레 좋은 글을 찾아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아트인사이트 내의 글을 읽으며 평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문화예술 분야까지 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전보다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나를 표현하고, 나를 알아가고, 더불어 타인과 공존하며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내게는 ‘글쓰기’이다.
미래: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앞으로도 나는 글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글을 ‘지향’할 것인지에 관한 이정표를 의미한다. 막연히 ‘좋은 글’이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지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나는 어떤 글을 좋아하는가?’
‘좋은 글’, ‘훌륭한 글’이 아닌,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호’를 따지고자 한다. 나에게 좋은 글이란 글쓴이의 개성과 깊이 있는 사고가 드러나는 글이다. 바로 글을 쓴 사람의 ‘고유성’이 드러나는 글. 이러한 글은 글을 쓴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가 궁금해진다. 어쩔 때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고유성’을 가진 글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글이며, 내가 지향할 글이다.
글쓰기는 보편적인 행위이지만, 각자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관객 수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감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글을 쓸 때 내 고유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다. 그렇기에 글 주제를 골몰하고, 때로는 몇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더라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사색과 고민이 담긴 글만이 독자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론: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세상에 예술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또한 각자의 방식을 통해 예술가로서 세상에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책 ‘창조적 행위’를 통해 각자의 예술 작품을 어떻게 발전시킬 건지에 대한 동기부여를 얻고, 자신만의 작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