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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입춘이 지나고, 피부로 느껴지는 추위는 여전하지만 해는 확연히 길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것이 시간이라더니, 겨울을 붙잡고 싶어도 이미 떠나고 있다. 봄이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빅뱅이론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아는가?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물리학자 셸든과 레너드, 그리고 그들의 친구 하워드와 라지, 마지막으로 셸든과 레너드의 옆집에 사는 페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공계 천재들의 일상에 새로운 인물이 한 명씩 추가되며 관계가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이 드라마는 내가 본 미국 드라마 중 가장 아끼는 마음으로 보는 작품이고, 등장인물 중 특히 셸든을 가장 좋아한다. 셸든은 어린 나이에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명석하지만, 사회성은 그만큼 부족하다. 그는 변화를 몹시 싫어해 요일마다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음식을 먹고, 늘 같은 자리에 앉으며 예측할 수 있는 일상을 추구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그는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친구들이 연애하고, 결혼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셸든의 완벽하게 통제된 일상에도 균열이 생긴다.


그는 혼란스러워하지만, 점차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모든 것이 180도 바뀌지는 않지만,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관계의 변화는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을 만들고, 개인의 변화는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또한 관계와 주변 환경 등 수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가 이전과 같지 않음을 느낄 때도 있고, 새로운 직장을 시작하기 위해 익숙한 동네를 떠나야 할 때도 있다. 변화는 언젠가 올 것임을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특히 ‘관계’의 변화에서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동반된다. 자주 만나던 친구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관계 자체는 그대로일지라도, 나와 상대의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그 거리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변화도 마찬가지다. 연인에서 부부로, 부모가 되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거나,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신이 속한 환경이 바뀔 때,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익숙했던 자리에서는 분명하게 보였던 것들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불투명해진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바로 그때, 변화는 우리에게 선택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말이다. 손에 쥔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명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4개월 간의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혼란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이 요즈음 겪은 변화 중 가장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고민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글을 써내려 가며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지만 결국 이 변화 속에서 얻어가는 것이 훨씬 많았다. 변화는 불안을 줄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변화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면 그냥 한 번 해보자. 그 모든 순간이 내 안에 남아 결국 지탱해 줄 것이기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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