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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호주 = 티라노사우르스


 

이 글의 제목을 오스트레일‘로드’라 지은 이유는 간단하다. 호주가 넓어도 하도 넓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넓은 곳에 도로가 다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방 한쪽 벽에 붙어있었던 세계지도에서 호주는 뭐랄까 티라노사우루스의 얼굴 같았다. 유럽-아시아-아메리카로 이어지며 세계에 위용을 떨치는 북반구에 비해 남반구는 홀쭉하기 그지없었는데(철없는 어린아이가 보기엔 그랬다), 그 남반구의 한가운데에, 호주가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얼굴로 고고하게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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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보니 호주는 내가 묘사한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사납게(?) 넓었다.

 

 


의지의 한국인


 

여행 첫날,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주며 퇴근하던 가이드는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적지가 숙소에서 차로 세 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이라고.

 

왜 그렇게 먼 곳으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중요한 건 그래서 몇 시에 모이느냐였다. 가이드는 내일 아침 일곱 시 반에 숙소 앞에서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안 그러는데, 라는 말들이 웅성웅성 들려오자 가이드는 돌고래, 라는 한 단어로 우리의 원성을 일축했다. 거기에 가면 자연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돌고래는 그 비현실성으로 우리를 유혹했고, 우리에게 첫날 실제로 마주했던 여러 비현실적인 풍경을 되새기게 하며 가이드가 말한 집합 시간을 묵묵히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사실 그리 먼 곳도 아니라는 식으로 가이드는 얘기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의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지도를 보니 호주 대륙으로 따졌을 때 ‘애걔?’ 싶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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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다음날 일정을 얘기하며 호텔 조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은 그 말에 더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호텔에 가면 무조건 조식 뷔페를 즐기는 우리 가족은 의지의 한국인답게 의지를 다졌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래서 조식이 오픈하는 아침 여섯 시 반에 맞춰 로비 옆의 식당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의지의 한국인은 한창 음식을 차리고 있다가 우릴 보고 당황한 서양인 웨이터들을 마주했고, 그들의 미처 다 준비되지 못한 어색한 미소를 시작으로 조식 서비스를 당당하게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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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너무 넘쳤던 것인지, 우리 가족 말고는 그 어떤 팀도 식당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우리 가족은 다들 아침은 거를 생각이군, 하면서 스크램블 에그와 시리얼, 베이컨, 커피를 준비해 자리를 잡고 먹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야 우리는 그들이 나갈 준비를 전부 마치고서 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은 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사람이 가득해진 식당을 퇴장했다.

 

 


길 위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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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버스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가이드는 남쪽으로 줄곧 내려가는 세 시간의 드라이브가 관광객들한테는 고난임을 알고 잠자코 우리를 자게 두었다. 시드니 날씨가 우중충해서 잠들기에도 제격이었다.

 

하지만 우중충한 와중에도 구름이 저 멀리까지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걸 봐버린 나는 잠을 못 이뤘다. 게다가 시내를 빠져나가고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부터 나타난 풍경들이 이색적이고 경이로워서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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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무들을 수두룩하게 보았다. 호주의 나무는 줄기가 가늘고 하얗고 길었다. 가지가 여러 모양으로 꺾여 있었으며, 어떤 건 속이 붉었다. 그런 나무들이 빽빽하게 모이니 열대우림 같았다. 긴팔원숭이가 곡예를 부리고 다니기에 좋아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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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숲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숲은 평평한 지대에 쭉 펼쳐져 있어서 고르게 자란 이끼처럼 보였고, 지평선 부근에 자리한 산들은 우리나라의 험준하고 다채롭게 깎여 있는 산과는 달리 그리 높지도 않고, 옆으로 길게 늘어선 담장처럼 놓여있어서 버스가 쥐라기 월드 같은 태초의 세계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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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날씨가 맑아졌다. 구름 사이로 투명한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차창 안으로 햇빛이 들이쳐 자기만의 유희를 펼쳤다.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 날씨는 우리에게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의 풍경을 선사했다.

 

휴게소는 자기주장이 강한 우리나라의 휴게소들과 달리 작고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휴게소 너머로 펼쳐지는 마을과 바다의 풍경에 정신을 잃어서 휴게소 안을 제대로 구경할 새가 없었다.

 

 


돌고래를 찾아서 - 저비스베이


 

아쉽게도 저 아래 보이는 마을과 해변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만한 곳에 도착했다. 한 시간을 더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저비스베이’였다.

 

여기는 전날 갔던 왓슨스베이에 비하면 사람이 적고 유유자적한 휴양지 같은 곳이었다. 바다는 청록빛이었고 모래는 눈부실 정도로 하얬다. 짧게 말해 천국에 온 것 같았다. 누구라도 이런 곳에 온다면 마음이 온화해질 것이다. 모든 분쟁의 협의는 이런 곳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

 

우리는 여기서 3층짜리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돌고래를 구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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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시드니하버보다 더 바다다웠다. 바다로 나아갈수록 물의 청록빛은 쪽빛으로, 남색으로 변해갔다. 동그랗게 만이 형성되어 있어서 저 끝에 두 육지가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게 독특했다.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어왔고, 햇빛이 장난치는 아이처럼 우리를 눈부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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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수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의혹을 마주했다. 해초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돌고래가 보이는 포인트가 있을 거라며. 여기는 다른 계절엔 혹등고래까지 나온다는, 그런 곳이니까…


무슨 방송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그때 확신했다. 돌고래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세 시간을 달려온 보람이 사그라드는 순간. 자연은 아름다운 만큼 무정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결국 우리가 한 시간 반 동안의 항해에서 본 건 바다, 바다, 바다였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크루즈에 탑승한 호주 사람들은 전혀 실망한 기색이 없었는데, 그건 배 아래쪽에서 일어난 이벤트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누리는 이벤트를 보며 돌고래를 보지 못한 속 쓰림을 달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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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고를 들은 가이드(그는 크루즈에 타지 않았다)는 무척 아쉬워했다. 그는 이런 날이 잘 없다고 우리를 위로하며 자신이 예전에 크루즈를 탔을 때 찍은 돌고래 영상을 공유했다. 이걸 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돌고래를 봤다고 자랑해도 된다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관광객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다. 나는 갈등했으나 저장만 했을 뿐 어디에 공유하진 않았다. 사실 나는 바다만으로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목장, 농장, 아웃백, 토끼, 그리고 와인


 

다음 목적지 ‘쿠랑가타 와이너리’로 향하는 도중에 목장이 나타났다. 목장엔 소며 말이며 한가하게 모여서 풀을 뜯었다. 나도 그 옆에서 뜯고 싶을 정도로 목가적이었다. 그런데 이 목장이 정말 넓었다.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며 심긴 나무들과 전봇대들, 목장을 구분 짓는 울타리 또한 한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노는 땅이 많으면, 하고 시샘이 날 정도로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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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목장을 보며 흥미로운 TMI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호주는 소, 말, 돼지, 양 등을 키우는데 가축 중엔 메리노 양이 1억 마리로 제일 많다고 한다(호주 국민보다 캥거루가 많다고도 주지했다). 농장주들은 총기 소유가 가능하며, 호주의 야생 들개인 딩고나 캥거루를 사냥할 수 있다고 한다.

 

가축으로 기르는 소는 한 마리당 6천 평 정도의 면적을 가지는데, 예방접종, 소몰이 시기 말고는 사람 손을 거의 거치지 않아서 노동력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호주의 키드멘코 농장은 경기도의 2.5배의 면적인데, 직원은 스무 명 내지는 서른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헬기로 소몰이를 하기 때문이다.


목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호주의 거대한 땅덩어리 얘기로 나아갔고 호주 인구 이야기를 끄집어냈으며(호주 인구의 85%는 해안가에 살고 있으며 바다와 산맥을 보며 살아간다), 그 유명한 ‘아웃백’ 얘기에 닿았다. 아웃백은 호주의 오지, 사막을 말하는데, 그런 사막들이 산맥의 뒤(back)에, 즉 바깥(out)에 있어서 아웃백이라고. 우리가 아는 그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는 미국 관광객이 호주의 사막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그 이름을 가지고 미국에 돌아가서 스테이크 집을 만든 거라고.


토끼 이야기도 했다. 한때 호주는 토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왜냐하면 호주엔 토끼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주 개척 시기에 영국에서 누군가 토끼 24마리를 데리고 온 것인데, 호주에는 포식자 맹수가 없어서 호주 전역에 토끼가 퍼지고 말았다. 그렇게 불어난 게 무려 10억 마리. 그들은 마구잡이로 풀을 뜯어먹었고 사막화를 진행시켰다고 한다. 아웃백도 원래는 물이 없긴 하나 풀이나 숲이 많은 지형이었는데, 거기에 있는 풀들마저 토끼들이 다 해치워버린 것이다. 그래서 1910년부터 토끼 토벌 작전에 나섰고, 현재는 2억 마리로 줄었다고 한다.

 

토벌하면서 토끼를 서쪽으로 몰았고, 그래서 토끼 보호용 울타리(Rabbit-Proof fence)를 만들어서 개체수를 유지 중이라고. 나는 전에 완성한 소설에 토끼와의 전쟁을 간략히 썼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오늘의 괜찮은 소득이라고 생각하며(동물의 개체수를 인간이 임의로 조정하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마음 한편으로 품으면서) 목장 끝에 보이는 포도밭, 쿠랑가타 와이너리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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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많은 이야기 후, 가이드는 자신이 원래 하려던 와인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와인의 종류(정확히는 만 개가 넘는다)와 각각의 맛(떫은지 단지), 그리고 상황별로 선물하기 알맞은 와인 가격대를 소개했다. 상당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화이트 와인이 아니면 와인을 마시지 않는 초보자라 그의 설명을 좀 시큰둥하게 들었지만, 호주 포도나무엔 해충이 없고(그래서 외국에서 들어오는 식품 검역이 까다롭다고), 와인으로 쓰는 포도는 알이 작고 나무도 작으며 일반 포도보다 농축된 맛이 난다는 정도만 기록해 두었다.

 

 

 

떫은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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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리자 살벌하게 뜨거워진 햇빛 아래 가족이 대대로 운영하는 고풍스러운 와이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데서 이런 농장을 운영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행복하겠지. 아무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야. 나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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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일정은 세 잔의 시음이 전부였다. 시음을 허락해 준 덩치 크고 인상이 좋은 직원은 우리에게 잔을 따라준 뒤 다른 패키지 팀(유감스럽게도 이 팀은 저비스베이서부터 우리와 코스가 같았다)을 대접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우리는 와이너리를 더 구경할 새 없이 그 옆의 식당으로 이동해서 ‘피시 앤 칩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이때 처음으로 패키지 관광객의 한계를 체험했는데, 정식 운영시간이 아닌 듯 그 넓은 식당에 직원이 거의 없었고, 손님은 우리 관광객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맛본 피시 앤 칩스는 학창시절 급식에서 나오는 생선튀김과 다르지 않았다. 아쉬운 나머지 식당을 나와 와이너리 곳곳에 덩굴을 휘감고 자란 포도를 맛봤지만(먹어도 된다고 했다), 떫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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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생겨난 아쉬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돌아가는 길에 들른 베리타운은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을 반대쪽으로 좀 멀리 걸어가면 맛있는 도넛을 판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가지 않았고, 마을 곳곳의 상점들(서점, 수공예품, 가구점, 장난감 가게)을 구경만 하다가 애초에 시간이 부족해서 카페에서 스무디만 마시고서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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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턴 허탈함이 올라왔다. 오늘 일정이 이게 끝이라는 사실에. 이제 몸을 푼 것 같은데 끝이라니. 버스 안에서 여섯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끝내야 한다니. 시드니 시내에 도착해서 이른 저녁으로 불고기 전골을 먹으면서 다짐했다. 오늘을 이대로 끝낼 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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