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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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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를 참 많이 타게 되는데 그때마다 혼자 공상에 빠지곤 한다. 이런저런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기도 하고, 한국에 두고 온 일들이나 아주 어릴 적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지난번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어릴 때 아빠 차에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뭐야? 자기 가족을 대변하는 그런 노래.”


자전거를 타며 우리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앨범이 몇 가지 있었다. 요즘은 차에서 블루투스 연결만 하면 어떤 노래든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CD를 구매하거나 원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직접 구워서 듣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의 음악은 개별적인 곡이 아니라 앨범 단위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 K-팝부터 인디, 밴드, 재즈, 팝, 클래식까지.

 

이런 음악적 스펙트럼은 아빠 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확신한다.

 

 

Winterplay의 < Choco Snowball >

 

이 앨범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도 애정하는 앨범이다. Winterplay라는 팝 재즈 밴드가 어느 음악 방송에 출연했을 때, 엄마와 아빠가 그들의 음악에 반해 곧바로 앨범을 구입했다고 한다. 덕분에 나와 오빠는 영어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매일같이 이 앨범을 들었다. 통통 튀는 멜로디와 중독적인 가사가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앨범을 계기로 팝 재즈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게 됐다.

 

이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Quando, Quando, Quando’이다. 이 곡은 원래 Michael Bublé가 부른 곡이었지만, 나는 이 곡이 당연하게 Winterplay의 곡인 줄만 알았다. 시간이 지나 원곡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최고의 버전은 Winterplay의 버전이다.

 

네덜란드 교환학생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Jason Mraz의 < Mr. A-Z > 

 

엄마가 자주 보던 인테리어 디자인 블로그가 있었는데, 그 블로그의 BGM으로 Jason Mraz의 ‘Bella Luna’가 흘러나왔다.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인테리어 블로그를 보고 계시는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가 워낙 좋아하던 노래라, 아빠가 앨범을 통째로 CD로 구워 차에서 듣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내 인생 첫 팝송은 Jason Mraz의 곡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Jason Mraz 하면 ‘Lucky’나 ‘I’m Yours’를 떠올리지만, 나는 ‘Bella Luna’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하던 젊은 날의 엄마 얼굴이 두번째로 떠오른다.

 

 

검정치마의 < Don’t You Worry Baby > 

 

이 앨범은 앞의 두 앨범보다는 비교적 최신 앨범이지만, 나에게는 거의 10년 가까이 들은 추억의 앨범이다. 나는 검정치마라는 가수를 엄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나보다 음악 디깅을 더 좋아하던 엄마 덕분에 좋은 음악을 어린 나이부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곡은 ‘Love Shine’이었고,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는 이 노래로 늘 시작되었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15살 중학교 2학년의 여름 방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한 덕분에 오늘날 나는 편식 없이 모든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그렇지만 쏟아지는 알고리즘과 음악적 풍요로움이 넘치는 시대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어릴 적 플레이리스트를 가장 사랑한다.

 

살다가 가끔 힘이 들 때, 이 앨범들을 들으며 그 시절의 사랑스러운 기억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다시 현재를 살아갈 기운을 얻곤 한다.

 

이 앨범들은 나에게 마치 정류장같은 존재다. 흘러가는 인생 속에서 잠시 멈춰 과거의 따뜻한 기억들을 되새기게 해주는 곳.

 

이 글을 보며 공감하고 웃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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