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자주 읽지 않아도 시인들의 산문은 종종 찾아 읽는다. 사물의 이면까지 들여다보는 시인들의 다정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손쉽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완독한 책도 이 년 전 『쓰는 기분』으로 좋아하게 된 박연준 시인의 또 다른 산문집이었다. 바로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역시나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과 생각이 많았는데, 흥미로웠던 점은 나와 내 주변 상황에 시의적절한 글이 유난히 많았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즈음부터 〈스테이지 파이터〉를 통해서 무용수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마침 작가가 취미로 발레를 배워서 무용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고. 또 좋아하는 무용수를 따라 생전 안 하던 요가를 시작했는데, 책 속에 요가의 ‘사바아사나’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또 서교동에 살았던 작가가 동네의 애정하는 가게를 소개하는 글이 실려있는데, 서교동은 지난여름 내가 인턴 근무를 하러 3개월간 출근하던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랐던 것은, 대통령 탄핵에 관한 이야기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2019년에 출간한 책이라 그런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공교로운 시기에 읽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그 외에도 새해 인사나 이별에 관한 글 등 타이밍이 절묘한 글이 많아서 몰입하며 읽었다.
나의 몸을 감각하는 일
"시 쓰기(쓰기)란 대체 불가능한 대상을 대체 불가능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박연준 시인은 시 쓰기가 곧 대상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신형철 평론가가 말했던 것처럼, 대상을 보고 또 보며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자 노력하는 행위일 테다. 시인들은 오감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유하는 게 업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나도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내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슬프지 않더군요. 슬픔보다 조금 더 묽은 감정이 마음 바깥을 서성이는 것 같았어요. 선뜻 들어오지도 못하고.”와 같은 표현을 읽고 ‘슬픔보다 묽은 감정은 어떤 느낌이지. 몸속 피가 조금 묽어질 정도로 눈물이 찼지만 왈칵 쏟아질 정도는 아닌 느낌일까?’ 하며 상상해본 것이다. 지금 여기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어떤 슬픔일지, 혹은 어떤 식으로 슬픔이 아닐지 속을 곰곰 쓸어보기도 했다. 시인이 몸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쓴 문장들을 읽으면서, 평소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던 것들, 그래서 내게 존재하는지도 모를 만큼 흐리멍덩했던 감각을 선명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자세히 관찰하고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행위이므로, 결국 그의 문장들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데 일조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를 조금씩 감각해보는 일은 스스로를 전혀 모른다는 생각에서 찾아드는 불안을 덜어냈고, 나에 대해 차츰 알아가고 믿을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했다.
안구와 마음을 다정히 씻겨주기
"혼자서는 무엇을 주장하지도, 부피를 차지하지도, 형태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이토록 이타적인 사물이 있을까?"
이 문장들은 다름 아닌 보자기를 수식하기 위해 쓰인 표현들이다. 시인의 사랑이 담긴 시선은 당연히 자신의 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다정하게 관찰한다. “아, 악의 없는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음식을 담은 보자기 안이리라!”고 찬탄하는 박연준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의 산문집이야말로 악의 없는 세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것이 겨우인 보자기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이타적이라며 치켜세워주는 마음,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에도 온기를 불어넣는 상상력이라니. 그래서 나는 마음이 녹초가 될 때면 시인들의 산문을 읽는다. 〈파친코〉 속 선자의 엄마가 딸을 정성껏 씻겨주던 것처럼, 그들의 사유와 문장이 내 마음을 조심조심히 씻겨주는 것 같달까. 영혼에 때처럼 껴있던 미움, 악의, 조소 같은 것들을 싹. 덕분에 좀 더 말끔해진 마음으로 세계를 다정하게 보고 싶어진다. 삶의 만족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보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자주 좌우되므로, 나는 이런 문장들 덕분에 더 즐겁고 감미롭게 살아낼 수 있다.
다만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문학은 언제나 삶의 속도를 늦추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브레이크는 당신의 연필, 우리들의 연필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깊은 밤, 잠 못 들고 연필을 쥐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세상은 느려질 것입니다. 쓰는 사람은 결코 목표를 향해 돌진하듯 써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쓰고 싶은 대상 앞에서 망설이고, 자주 기다립니다. 매일 겪어온 아침을 처음 겪는 아침인 듯 다시 생각합니다. (...) 당신이 한밤중에 깨어 연필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믿으세요. 자신이 얼마나 시간을 느리게 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삶의 결을 꼼꼼히 그리고 만져볼 수 있게 만드는지, 자신을 믿기 바랍니다."
내 삶에 특히 생기를 불어넣었던 대목을 뽑으라면 이 문장들이다. 패닉에 빠져서 한 발자국 내딛는 것조차 망설이던 내게 걸음마 떼듯 천천히 움직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가 젊은 시인에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시 쓰기는 진한 농도로 삶을 사는 방법에 다름 아닐 것이기에 삶에 대한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목표를 향해 내달리기는커녕 지리멸렬하게 겉돌며 자괴하던 나에게, 느린 속도로 망설이고, 기다리고, 두리번거리며 다만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큰 위안이 되었다. 사랑과 느린 망설임은 아무리 나약한 사람이더라도 삶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더디더라도 내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울 수 있겠구나, 잘 사는 것이 요원하지만은 않구나 싶어 잘 살고 싶은 의지와 희망, 용기 같은 것이 샘솟았다. 마음이 형편없이 허물어져 있던 때, 새롭게 마음을 다져야 하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책장을 덮고 명확한 새해 다짐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새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삶의 결을 쓸고, 꼼꼼히 사랑하기.’ 그리하여 삶을 생기와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을 올해 목표로 세웠다. 나는 게으르고 어리석어 이렇게 먹은 마음도 금방 퇴색될 것이기에 앞으로도 이런 산문집을 자주 읽을 생각이다. 내친김에 전에 읽다 만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섬세하고 똑똑한 이의 깊은 사유와 탁월한 표현을 살뜰히 씹어먹어야지. 올해는 나를 더 믿고 사랑할 수 있기를, 어느새 스물일곱이나 먹어버렸지만 더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