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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면,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나리오부터 개별 쇼트에 이르기까지 감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돌프 아른하임이 <영화와 현실(1932/1957)>에서 밝힌 영화 이미지의 특성을 살펴보고 있자면, 어쩌면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 자체가 감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교한 감각과 미묘한 감수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른하임은 '영화가 현실에 대한 기계적인 재생산에 불과하다'는 입장에 대한 논박으로서, ‘영화’가 이미지를 담아내는 과정이 우리가 '현실'에서 이미지를 지각하는 과정과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하고, 그러한 차이들이 오히려 영화에 예술적 자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영화 이미지는 현실에 대한 기계적 재생산이 아니며, 그것의 고유한 특징들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부분적 환영을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의 예술성을 형성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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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매체의 기본 요소들과 현실의 지각에 해당하는 특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영화 이미지의 특성들을 설명한다. 먼저 현실 이미지를 바라보는 우리 눈의 시점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카메라가 피사체를 기록할 때, 우리 눈과는 달리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입체적인 사물을 투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확하게 사물을 투영할 수 있는 특정한 시점을 선택할 수 있는 법칙 같은 건 없다. 그저 ‘느낌’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러므로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에 현실의 이미지를 담아낼 때 피사체의 본성에 관한 감각이 필요하며 이것은 단순한 기계적 작용을 훨씬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이미지에서는 실생활에서와 다르게 크기와 형태의 불변성이 파괴되면서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현실에서는 우리의 두 눈 사이의 거리가 만들어낸 깊이감으로 인해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삼차원의 인상이 만들어지지만, 영화 이미지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깊이감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현실의 이미지가 가지는 삼차원성이 영화에서는 축소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 이미지가 가진 양면적인 특징은 감독에게 보다 많은 선택권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는데,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이미지의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을 부각할 것인지, 혹은 최대한 입체적이고 현실에 가까운 이미지로 표현할 것인지가 정해지고 이로 인해 관객이 느끼는 이미지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색채의 부재와 조명 역시 영화와 현실 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영화 이미지의 삼차원성을 축소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색채가 부재한 영화, 즉 흑백영화의 경우, 자연 세계에서의 색들이 가지는 서로 간의 연관성과는 전혀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현실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색들이 회색 음영의 차이만 있을 뿐 유사하거나 완전히 같은 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가 애초에 흑백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전제 하에서는) 그 영화 이미지가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자연세계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색들간의 새로운 관계가 영화 이미지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컬러 영화의 시대에서도 영화 이미지에 예술적 자원을 부여하는 특징으로서 색채의 부재가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할 듯 하다. 더 이상은 컬러를 구현할 수 없어서가 아닌, 컬러 이미지의 채도나 대비 등을 조정함으로써 색들 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감독의 역량 하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조명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이미지에서 사물의 분명한 식별을 위해 중요하다. 영화에서 조명의 사용에는 일종의 규칙이 있는데, 배경의 일부를 사물의 일부인 것처럼 보여주거나 사물의 일부를 배경의 일부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과 같이 사물의 분명한 식별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조명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촬영에서 조명을 사용하기가 까다롭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사물이 실제처럼 보이는가, 혹은 현실 이미지와 전혀 다른 어떤 것처럼 보이는가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조명의 컨트롤 역시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제 이미지는 한계가 없다. 물론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계(視界)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눈과 머리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이미지를 볼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경계를 느낄 수 있다. 촬영된 공간 너머를 잘라버리는 가장자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오히려 영화라는 매체가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더해준다. 카메라로 촬영된 공간은 그 이미지의 경계로 인해 대상의 공간적 위치나 크기를 파악할 만한 비교 기준이 드러나기 어렵다. 따라서 이미지의 경계 안에 제시된 시각적 상황만을 오로지 보이는 대로 판단해야 하므로 시각 외에 다른 감각에 영향을 받기 어렵다. 이는 곧 영화 이미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연출하는가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 특정한 시각적 판단이 유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연출된 영화 이미지는 스크린에 특정한 크기로 영사되도록 만들어진다. 카메라는 피사체를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잡을 수 있다. 이러한 거리의 자유는 스크린에 나타날 피사체의 크기를 결정하고, 이는 곧 완성된 영화가 상영 시에 영사될 크기를 결정한다. 또한 이에 따라 영화 이미지에서 그것의 디테일이 얼마나 분명하게 보이는가도 좌우된다. 따라서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기 위해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를 이용하여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사물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현실과 달리 시공간적 연속성이 파괴될 수 있다. 실생활에서는 모든 경험이 관찰자에게 필연적으로 중단 없이 이루어지는 반면, 영화에서는 촬영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든지 중단되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공간적 연속성의 단절에 있어서도 일정한 논리적인 통일성이 필요하며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 존재한다. 특히 시간의 경우, 과거나 회상, 꿈 등의 시간적 일탈이 도입되는 것이 아닌 한, 하나의 시퀀스 안에서의 장면들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서 배치되어야 하며 개별 장면들 안에서 이어지는 사건들도 시간적 순서대로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간의 논리적 통일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을 동일한 이미지 속에 담지 않고 각각 하나씩 보여주려면 서로 다른 두 사건이 내용상 동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명백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영화감독은 영화의 내용 서술과 등장인물의 행동 진술에 모순이 생기지 않는 한에서 여러 개의 시퀀스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이미지가 가진 이러한 시공간성의 특징은 연극과 스틸사진이라는 두 가지 다른 매체와의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는 연극과 스틸사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매체이다. 공간적 측면에서 영화는 사진과 같이 평평한 이차원적 표면으로 이미지를 제시하지만, 일정한 깊이감의 발생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공간적 인상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한편 그 자체로 행위의 장소가 되는 연극의 무대보다는 약한 삼차원성을 갖는다. 그러나 연극과 달리 실제 환경 속에서 실생활의 인상을 제공할 수 있기에, 가장 강한 현실적 성분을 드러낼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사진과 달리 영화는, 연극 무대 위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그것이 상영되는 동안 시간이 경과한다. 이 시간의 경과는 영화로 하여금 현실적 사건을 재현하게 만든다. 영화는 시간적 단절을 위해 분명한 중단이 요구되는 연극과 달리, 시간의 경과를 파괴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도 그것을 파괴할 수 있다. 이렇듯 영화는 평면적이고 이차원적인 사진의 본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극과 같이 현실적 환영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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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영화가 예술적 지위를 가질 여지가 생겨난다. 영화는 현실의 시공간에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물들을 병치시킬 수 있으며 그것은 순전히 기계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영화가 가진 ‘사진성’은 이미지의 공간적 인상을 축소시킴으로써 다양한 장면으로 이루어진 시퀀스를 자의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 즉 관객은 영화 이미지를 기계적인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조작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몽타주가 예술적 정당성을 갖는 이유이다. 또한 영화는 연극보다 더 생생한 현실감을 가지진 못하지만 카메라의 위치와 거리의 변화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영화가 관객에게 부분적 환영을 제공할 수 있게끔 하는데, 재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강한 인상이 생길 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통해 우리는 사물과 사건을 현실이면서도 가상적인 것으로 지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 예술은 가능한 것이라고 아른하임은 설명한다.

 

앞서 살펴본 영화 이미지의 특성을 통해, 이미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가 이미지를 담아낼 때 얼마나 미세한 규칙과 조작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이를 전적으로 총괄하는 감독은 자신의 창작의도를 영화 이미지를 통해 관철시키기 위해 입체감, 색채와 조명, 피사체의 크기와 거리 등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만 한다. 영화에서는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이 완전히 부재하기 때문에 더욱 이미지의 구현에 총력을 다하게 된다. 그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영화의 스토리를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스크린은 곧 감독이 관객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영화는 매체의 특성 탓에 감독이 그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쏟아내야 하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장르가 더 없이 영화인 것이기도 하다. 연극의 경우, 극이 재현하는 세계가 관객과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재현이 곧 그들의 눈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연출가나 극작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극도로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배우에게 굉장히 많은 것이 달려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작품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배우의 연기도 감독의 연출과 지휘 하에서 컨트롤된다. 이처럼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작품 세계 아래에서 모든 요소가 모여 만들어지는 '영화'라는 장르를 두고 과연 ‘감독의 예술’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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