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무엇보다도 어렵고 깊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형제자매, 배우자, 자식, 조부모... 때로는 고모, 이모, 삼촌까지. 우리가 흔히 배우는 가족은 우리 삶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보금자리 같은 존재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힘을 합쳐 닥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가족들이 짠 하고 나타나 도움을 주는 모습들을. 나의 삶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을.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가장 큰 어려움 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의 엄마가 문동은을 방해하는 가장 어려운 존재였듯, 가족이라는 단어에 묶여 떨쳐내지 못하고 엮여 있는 관계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21년 tvn에서 방영한 60분짜리 단막극, <덕구이즈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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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관한 스포일러와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센 물살에 떠밀려 5년 동안 실종 상태였던 덕구네 집 장남 천덕구. 그는 5년 만에 겨우 살아 돌아와 가족들 앞에 모습을 보인다. 덕구의 생존을 확인한 가족들이 그를 끌어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퍽 감동적으로 보인다. 덕구는 자신이 없어진 사이에 집이 부자가 되었다며, 으리으리한 모습으로 새단장한 ‘복남장어’ 가게와 동생의 외제차 등을 보고 깜짝 놀란다. 덕구의 아내는 다섯 살 된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기까지 했다. 하루아침에 아들도, 식당도 생기게 된 복 받은 덕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자신에게 들어 있던 생명 보험금 10억이 가족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는 잔인한 진실을 깨달은 덕구다. 한마디로 덕구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모두 허상으로 돌아갈 것들이다. 가족들은 이때 딜레마를 겪게 된다. 덕구를 산 사람으로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주저앉을 것인지, 덕구를 죽은 사람으로 계속 두어 가족들이 행복할 것인지.
“가족들을 위해서 계속 죽은 사람으로 있어줘야겠다.”
가족들의 선택에는 고민이 없었다. 그들은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덕구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생업을 이어 나가기로 결심한다. 실종되기 전에는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백수였던 덕구에게는 할 말이 없다. 덕구는 작은 창고에 자물쇠가 달린 채 갇힌다. 화장실은 하루 한 번, 밥은 넣어주고, 외부 활동을 하거나 외부인을 만날 수 없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환경이다.
덕구가 가만히 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불알 친구였던 동형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뛰쳐나간다. 하지만 잔인한 진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사라졌던 사이, 아내와 동형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아들 또한 동형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덕구는 내심 생각했겠다.
아내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이니까. 나는 해 준 게 없는 남편이니까 그런 거야. 다른 가족들은 피가 이어진 “가족” 이니까.
가족들 중 어머니만은 덕구를 불쌍하게 여겨 그를 돕는다.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덕구를 정신병원에 가두기 전 생일상을 으리으리하게 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상, 덕구를 옹호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핏줄’의 정은 거기까지였다.
남은 가족들은 덕구에게 소리친다.
“죽어서 가족들에게 해 준 게 살아서 해준 것보다 더 많은 놈!”
덕구는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가족들에게 배신당했어도, 그는 목숨이나마 건지기 위해 도망친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이 실종되었던 방파제에서 가로막힌 덕구. 자신이 죽는 게 가족들에게는 더 나은 상황인 것을 뼈저리게 느낀 덕구는 절규한다. 내가 죽는 게 낫겠다고. 차라리 내가 죽겠다고...
동생은 답한다. “뒈지지도 못할 거면서. 빨리 나와.”
“가족이 그리웠는데.... 내 편 좀 들어주지 그랬슈.”
그 말을 남기고 스스로 물살에 뛰어들길 선택하는 덕구의 모습은 절망적이다. 아들이 막상 죽는 것을 보자 그를 붙잡으려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 하지만, 경찰이 와서 실종자 신고를 하라고 하자 더 이상의 실종자는 없다고 하는... 그대로 덕구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길 선택하는 가족들. <덕구이즈백> 은 덕구의 귀환을 완전하게 절망으로 만들며 끝을 낸다.
드라마가 담고 있는 내용은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질문을 남긴다. 단막극의 장점은 짧은 시간 동안 몰입해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할 수 있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61분 동안 진행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비로소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내 가족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반대로, 내가 덕구의 가족이라면 덕구를 반길 수 있었을까? 내 죽음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살아갈 기회가 된다면 나는 ‘살고 싶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가족들은 나를 희생해서라도 지켜야 할 존재들인가.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 ‘가족’ 이란 단어 안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고 어디까지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실에서 가족의 기능을 깨닫게 되는 장치가 된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험한 존재. 사랑해 머지않지만 사랑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존재.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관계. 그게 바로 가족이라 생각한다.
현실과 과장 사이. 블랙 코미디 장르로 가족의 이중성과 씁쓸함에 대해 풀어낸 <덕구이즈백>이 보여주는 아쉬움은 가족의 비극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가족에 대해 사색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덕구이즈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