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 상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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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상담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상담을 한 지 어언 5개월이 되어간다. 상담에 있어서 내담자의 근본문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근본 문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저마다의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일반적으로 5개월은 그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한다. 상담을 하게 된지 두 달 즈음이 지났을 때, 상담 선생님은 내가 나를 '비난하는 자아'가강한 것 같다고 하셨다.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막상 듣고나서 나의 내면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런 마음이 내 안에 많이 있었다는 것이 실감되기 시작했다. 이후 계속된 상담에서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내 마음이 왜 그런 양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잘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 지난 주에 상담을 갔을 때 나의 마음 상태가 조금 나아졌음을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내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선생님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저를 수용해주고 인정해주는 자아가 크기보다는 비판하는 자아가 더 큰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사실 제가 저를 비난 혹은 비판하는 자아가 없어지면 제가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요." 아마 선생님은 여기서 나의 근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유빈씨는 제가 말씀드린,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의 의미를 굉장히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유빈씨는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의 생각을 극단적으로 무조건 다 받아들이면서,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는 또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이제껏 자주 느꼈던, 어쩔 때는 내가 내 자신으로 너무나 굳건하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또 다른 때에는 내가 타인의 말에 잠식되어 내가 바라보는 나는 소멸되고 남이 보는 나만 남게 된 그런 느낌을 왜 그렇게 자주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유였다. 선생님이 진단한 나의 사고방식이 정답은 아니었겠지만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나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러한 사고방식을 무의식 중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원에 다녔던 몇 년 전 필자는 대학원 동기와 같이 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던 내용은 그 동기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였다. 그 친구는 분석철학을 전공했고, 필자는 어쩌면 그와 대척점에 서 있을 수도 있는 독일철학(자세히는 아도르노라는 철학자)을 전공했다. 두 전공이 지향하는 바는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분석철학에서는 여러가지 논리법칙이 그 분야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지향해야 할 것이지만, 필자가 해석한 아도르노는 오히려 그 논리법칙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칙일뿐, 그것을 넘어설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온 결론은, 우리 둘 다 전공한 분야와는 반대의 사고방식으로 실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기는 나에게 "너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아도르노를 공부하면서 실제 사는 삶은 분석철학에서의 논리들로 가득 찬 것 같아."라고 말해준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2. 연극 <저수지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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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2월 11일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람했던 <저수지의 인어>라는 연극에 대한 감상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개인적인 상담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했느냐, 그것은 위의 에피소드가 이 연극에서 다뤄지는 내용과 맞닿아 있다는 직감이 공연을 보던중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오징어 게임>의 메타포와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고, <오징어게임>에서도 영희와 철수가 등장하는 것도 우연 치고는 꽤나 신기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오징어 게임>도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느냐면, 그 시리즈 속에서도 삶의 중용은 없이 오로지 사느냐 혹은 생존하지 못해 죽느냐 하는 그 양극단만이 게임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이 저마다의 삶의 극단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과도 꽤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영희와 철수라는 이름은 이 연극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보편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감상이 들었다.


다른 여러 대사들도 마음에 콕콕 박히는 대사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영희(영희는 그 여주인공의 본명이 아니다)가 한껏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철수에게 드러내면서 말한 대사가 뇌리에 박혔다. "난 내가 있는 것 같다가도 나는 없는 것 같아."라는 대사였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마음이 울렁였다. 영희는 호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여러 가지 눈치와 행동들을 겉으로는 하고 다니지만, 속은 공허하고 외롭다고 철수에게 말한다(메세지로 보낸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희 역을 맡은 이기현 배우의 음성과 연기를 통해 영희가 철수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극에서 철수와 영희는 대면하지 않고 서로 메신저를 통해 문자를 통해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그러나 문자가 주는 무미건조함 속에서 오히려 영희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역설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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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저수지에서 일하면서, 집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는 청년이다. 같은 저수지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친구 경태가 철수네 집에 놀러갔을 때 그는 철수에 대해 화도 안 내고 감정이 없는 친구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 철수는 마음 속에 그 누구보다 단단한 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철수의 아버지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극에서 철수의 아버지는 자신이 앉아있는 소파 밖 반경에서 전혀 나가지 않으며, 근처 이웃의 남 이야기를 철수에게 꺼내며 자꾸만 자신의 문제로부터는 회피하는 사람이다. 철수는 그런 아버지에게 저수지 근처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움직여야 살 수 있고 햇빛을 보고 살아야 하지 않냐며 아버지를 종용한다. 철수의 아버지는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서 뭘 먹거나 (주로 라면을 먹는다) 인간극장 같은 TV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 그리고 철수가 매일같이 밖에 좀 나가라고 얘기해도 그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연극은 나에게 참 모든 등장인물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연극이 아닌가 싶다. 영희의 모습에서도 나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철수의 아버지에게서도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내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다. 매년 그렇겠지만 작년은 유달리 바쁘고 숨찬 한 해였다. 작년 상반기에는 집 이사와 직장에 일이 몰리기 시작하며, 석사 논문 시험을 병행하며 겨우 겨우 버텼으나,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몸이 아프더니 나중엔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상담도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좀 쉬면 되지만, 마음이 아프면 가만히 쉬는 것도 말 그대로 마음이 힘들다. 그렇지만 또 마음이 힘들기 때문에 그 침대 밖을 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이내 내 자신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있다는 사실이 또 나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정말 말 그대로 내가 내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철수의 아버지가 그 소파 밖도 나가지 못하는게 이해되지 않고 답답한 일일 수 있지만, 그걸 경험해본 사람은 내가 내 의지로 그렇게 삶을 회피하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집 근처 저수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철수의 상황은, 저수지처럼 물이 고여있는 상황에 놓인 철수와 철수의 아버지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철수는 영희와 대화하며, 경태와 대화하며, 아빠와 대화하며 자신의 삶이 그리고 아빠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철수는 영희의 아이디어로 '인어 부자(父子)'에 대한 이야기를 습작하기 시작한다. 인어 부자의 이야기는 인어다움이 아닌 인간 세상에서 그저 현 상태로도 살아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인어와 그럼에도 인어답게 살고 싶어 새로운 바다로 가고 싶다는 아들인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문장을 읽게 되는 순간 당신은 이 인어부자의 이야기가 철수와 철수의 아버지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인어는 한결같이 인간답게 말고 인어답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말을 듣자마자 인어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은 우리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관통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들인어는 인어다움에 대해 자신의 운명에 따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내가 생각한 인간다움은 아들인어가 말한 인어다움과도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예전에 어떤 드라마를 보며 문득 인간다움에 묻는 주인공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의 현재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을 때 인간다움은 존재할 수 있다." 철수가 작성해 놓은 인어 부자의 이야기를 철수의 노트북에서 우연히 읽게 된 철수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말한 인간다움은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발현된다. 아버지가 그렇게 일하라고 부추긴 수박농장에 일하기로 한 철수가 집을 나서려고 하자, 비가 온다며 우산을 챙겨주고는 "데리러 나갈게."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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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노후 이슈로 인해 카메라 화질이 좋지 않다.)

 

 

 

3. 공연장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잠시 또 공연장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대학로예술극장은 또 처음 가보게 되었고, 외관을 보니 수리중인지 모르겠으나 마치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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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섰는데 복도에는 마치 미술작품이 걸려 있는 것처럼 벽면에 연극 포스터가 걸려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남겨 보았다. 또한 공연장은 보통 지상에 있는데, 점점 내려가서 지하 2층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또 하나의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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