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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리 집 바로 앞에는 고등학교 하나가 있다. 어느 날, 집 밖을 나왔다가 학교를 마치고 하교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았다. ‘아직 방학일 텐데 왜 학교에 왔지?‘하고 생각하며 쓱 훑어보니 교문 앞에 “졸업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행사 날짜는 딱 그날로부터 이틀 뒤였다. 돌이켜 보니 운동회, 축제처럼 졸업식에도 리허설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이 리허설이구나, 싶었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 인천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나왔다. 계속 한 동네에서만 살아왔고 아직도 그 동네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집 밖을 조금만 나가면 내 모교들을 볼 수 있다. 다양하게 걸린 현수막들을 보니 졸업 시즌임이 체감됐다.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야 하는 학생들을 상상해 본다.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과거의 나를 상기해 본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가 나온 초, 중, 고등학교는 신기하게도 지리상 일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초등학교 바로 위로 한 블록 올라가면 중학교가, 중학교 바로 위로 한 블록 올라가면 고등학교가 있어서 많은 친구들이 마치 정해진 루트처럼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땐 친구들과 신나게 “우리 중학교에서 만나자~”라고 이야기하며 한 블록 위로의 모험을 설레어 했다. 중학교 졸업 때도 마찬가지로 친구들은 고등학교에서 만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의 특이점이 있었다면, 깊게 정든 선생님들과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땐 친구들과 사진을 정말 많이 남겼다. 친했던 친구들, 안 친했던 친구들 가릴 것 없이 모두 사진을 찍자며 모여들었고, 모두가 서로의 갤러리 속 풍성한 추억이 되었다. 나름 성인이 되었답시고 형형색색으로 염색한 친구들 덕분인지 그날의 사진들을 다시 훑어보면 마치 꽃다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의 특이점은, 이제 더 이상 친구들을 위 블록에서 만날 수 없다는 씁쓸함과 낯설고 먼 대학이 주는 두려움 정도가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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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졸업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대학교 졸업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졸업식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사진이라도 먼저 찍고자 가족들과 함께 학교를 찾았다. 학교와 집 사이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졸업식 당일엔 (빌리기 굉장히 치열한) 학위복을 입기 어려울 것 같아 생각한 나름의 묘안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위복은 여유 있게 빌릴 수 있었고, 학교 곳곳에 있는 포토 스팟은 한적해 우리 가족만이 평화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관에서도 뒤 타임 예약이 없어 가족사진까지 프리패스로 찍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에 발자취를 남기고 집에 돌아왔다.


졸업을 한다는 게 후련하게 느껴졌다. 편도로 두 시간이 넘는 지긋지긋했던 통학 생활도 더는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 앞에서 “이제 끝이구나!”를 외치기도 했다. 사진도 마음에 들게 나온 것 같아 갤러리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학사모를 쓴 나로 가득하다.


문득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사진 속에서 친구라는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에 쿡, 하고 들어왔다. 이번 졸업엔 깊게 정든 선생님 덕분에 눈물을 흘리는 일도,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아쉬움도 없었다. 한 번 찾아낸 결점은 또 다른 결점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전염병의 창궐로 흘려보낸 약 2년 반의 대학 생활, 친해지고 싶었지만 나의 용기가 부족해 인연이 되지 못했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간다.


게다가 ‘마지막' 졸업이라는 사실은 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안정감마저 빼앗아 갔다. 졸업이 후련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닌 순간이었다.


나에게 졸업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해왔다. 3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나를 어딘가로 입학시켜 주었던, 있어야 할 곳에 데려다주었던 것이 졸업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나에게 입학할 곳은 없다.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해졌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질의 시간일 것 같다. <졸업>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들의 표정 변화가 마치 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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