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누군가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어도 같은 정서를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보는 것은 사실이고 해석하는 것은 주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관의 차이는 성장 배경 및 경험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문자와 말에서도 비롯된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관념을 가지게 되며 기본적으로 다른 사상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대개 문화권에 따라 구분되는 음성과 문자 같은 기호 체계를 일컫지만, 같은 문화권 속 평소 자주 사용하거나 노출되는 구체적인 언어 또한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듯 보인다. 이런 언어는 개성을 부여하기도 하나 때로는 타인을,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외국어를 배우고 독서를 하는 것은 익숙한 언어 환경이 조형하고 제한하는 인식의 틀을 깨기 위함이기도 하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독자에게 익숙한 세상의 비일상적인 면모를 경험하게 해준다. 같은 세상을 보고 같은 정서를 느끼더라도 작가가 해석한 현상이나 사물은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문학을 만나면 작가와 세계관의 차이를 발견하더라도 그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고 그러한 욕구는 독자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문이 된다. 특히 시는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열어주기 위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읽을 때 작가의 시선을 적극 해석하려는 시도를 거쳐 작가의 시선과 자신의 시선이 비로소 포개졌을 때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김이듬 시집『투명한 것과 없는 것』에는 부드러운 낭만이 아니라 동시대 현실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날카로움이 있다.  때문에 비슷한 시선을 공유하는 작품을 만났음에도 그의 세계를 열 때마다 가슴이 선뜩해질 정도로 시린 상쾌함이 느껴진다. 직진해서 다가오는 표현들을 정통으로 맞는 기분이 들지만, 여전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이기에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이 담은 세계는 고작 한 겹 너머에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의 세계와 유리창을 끼고 마주보고 있다는 점을 주지하면서 이러한 세계들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하며 한 번 한 번의 반성으로 조금 더 세상이 나아지기를 기원하는 그의 방식은 기도와 비슷하다. 그러한 고백은 자연스럽게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포개어 보는 의식에 동행하도록 유도하고 비로소 우리는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한 꺼풀을 벗길 수 있게 된다.

 

 

 

공감이라는 세계를 여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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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면 또한 여러 겹이다.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명제다.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은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님을 인지하며 세상의 레이어를 읽겠다는 자세다. 자신의 자리에서 투명한 타인들을 헤아려 보는 일이다. 이 도시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기에 김이듬 시인이 택한 방식은 공감이었다. "1부: 여기 내 살갗의 무늬가 있다" 중 '간절기'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리창을 유리창이 없는 것처럼 닦아놓으면

새가 부딪혀 죽는다

사람의 얼굴이 깨지기도 한다

 

이목구비 안쪽을 닦는

수양이 중요하지

교양 높은 이들이 나에게 팁을 주었다

코뼈 부러지고 뺨이 찢어져봐도 이런 말 할까 

 

- 간절기 中

 

 

'간절기'에서 시인은 잘 닦은 유리창의 이미지를 빌려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투명한 존재들을 인지하려 한다.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 건 새들 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투명한 유리창을 구분하지 못한다. 보기 좋게 투명할 정도로 닦아둔 유리창을 보면 있다는 것 자체를 잊게 되고 부딪혔을 때 비로소 있었느냐고 놀라게 된다. 교양 높은 이들이 말하는 이목구비 안쪽을 닦는 수양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노력 같기도 하지만, 깨끗한 유리창처럼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기만을 자행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기만은 사실 일상적이다. 서울 관광을 홍보할 때 파괴된 산천의 이미지를 삽입하지 않고 번영을 말할 때 슬럼가를 비추지 않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 자체로 치부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투명해진다. 모르게 함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된다. 투명한 이들이 없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시인은 외부 세계를 계속해서 바라보려 한다.

 

'저지대'와 '불을 빌리러 온 사람'은 '간절기'에서보다 시인이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공감하며 느끼는 감정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튀르키예 지진이라는 뉴스가 가난한 이들에게만 찾아오는 불행의 관계에 대한 사색으로 연장되며 우울감을 느끼고, 시인은 모두에게 잊힌 누군가를 외면한 일을 오래 후회하고 있다.  이런 무거운 도덕적 가책감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기를 소원해도 그의 감정은 뭇 소설과 달리 해소되는 결말을 맞지 못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여기저기서 얻은 약간씩의 죄책감을 안고 불편한 맘으로 잠드는 모습은 말 그대로 선한 소시민의 군상 그 자체다. 선하기만 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상이 우리에게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 이곳까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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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계에 대한 높은 공감 능력은 시인이 되기 위해 지녔을 감수성을 통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에서' 속 존재에 대한 고찰에서 엿볼 수 있듯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기 위한 호기심이 이러한 공감의 밑거름일 것이다. 그는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나아가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을 향해 살아간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에서 그는 백 퍼센트의 빵이지만 백 퍼센트의 호밀이 아닌 호밀빵에서 인간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인간인 자신을 발견한다. 호밀빵으로는 허기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그는 인간이지만 계속해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과 철학으로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세기의 비밀을 내면에 품고 인간을 통해 그 해답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호기심은 자연히 발생하고 사회와 구조가 숨기려 하는 어둠을 발견하면서 공감이라는 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얻었을 것이다.

 

그의 시는 그런 면에서 건조한 면은 있을 지언정 결코 냉소적이지 않다. 죽음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귓속말'에서 시인은 죽은 사람의 귀가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추측이 아름답지만 가혹한 일이라며 안타까워한다. 화구로 내쫓기기 싫어할 것이라며 망자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맘과 깊어가는 그리움을 에둘러 표현한다. 들을 수 있어도 대답하지 못할 이의 마음을 상상해 무덤에서 푸르게 자라나는 풀처럼 영원히 건네지 못한 말을 머금고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상황에 따라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시인은 산 자로서의 자신보다 죽은 이를 생각하고 존중한다. 이런 애도가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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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처럼 보인다. 정의를 관철하며 살아가지는 못해도 상처 주지 않는다는 최선인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양심을 지키는 것의 숭고함과 공감의 미학은 김이듬의 언어로 분명히 전달된다. 그는 공감에 공감으로 답한다. '후배에게'에서는 후배가 살아가는 것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에서는 상록의 나무에게 클라이맥스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매 순간이 최선이었노라 말하는 위로를 읽을 수 있다. 불완전한 이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가 완벽하지 않더라도『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읽다 보면 그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투명한 것과 없는 것』은 결핍에 공감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는 외로운 이들의 마음에 공감해준다.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공감이라는 열쇠를 건네는 시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절망과 악으로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닥에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이 도시를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열쇠를 건네받을 것이다. 추악한 진실 아래에도 분명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례지만, 어르신, 안에 계세요?"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어쩌면 엄마는 부르지 말라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구조 신호

 

울면 터져나왔던 시니피앙

 

점점 크게 문을 두드린다

"어머니, 어머니, 문 좀 열어봐주세요!"

 

- 구도시 中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카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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