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의 균열에서,
그들의 시선이 틔우는 다채로운 세상을 마주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이야기를 발견합니다, 북아티스트 MIA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책 작가이자 북 아티스트 MIA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SNS에 그림책을 시작한 이유로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라고 말씀해 주신 것을 보았어요. 미아 작가님께서 그림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하, 정말 그게 다인 것 같아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이야기와 관련된 콘텐츠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어머니께서 도서관에 있는 세계 명작을 꼭 다 읽어야 한다고 미션을 주신 적이 있어요.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세계명작 전집이 있는 코너에서 한 권씩 뽑아 읽었던 기억이 나요. 어떤 책은 재미있고, 어떤 책은 우울하거나 심각한 분위기였고, 어떤 책은 이해가 안 됐어요. 근데 그냥 되는대로 읽었어요. 어렵고 난해해도, 그만큼 이야기를 접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3년 내내 만화 동아리를 하면서 만화책, 애니메이션을 정말 많이 봤고 아무 스트레스 없이 그림을 마음껏 그렸었죠. 코믹 행사에 나가서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굿즈나 회지를 팔기도 했고요. 가족들과는 주말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같이 보곤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왔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드라마, 도서까지 특정한 이야기나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즐기게 되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취향은 변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이야기 장르에 관심이 많아서 타과 수업이었지만 소설 쓰기나 영화 만들기에 관련된 수업을 듣기도 했죠.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도 스스로 여전히 이야기 자체가 좋고 더 관심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당장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순 없잖아요. 고민하다가 그럼 나는 어쨌든 시각 예술을 전공했으니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최선의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책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었어요. 타협의 결과였죠. 사실 일반적으로 그림책 학교에 진학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림책’ 그 자체에 굉장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도 자세하게 꿰고 있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저는 그림책에 대해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정말 무지했어요.
- 제가 느끼기에 작가님의 그림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서점에서 볼 수 있는 그림책과는 다른, 굉장히 특별한 점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작가님의 작품 스타일이 그러한 흐름에서 영향을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책'이 하고 싶어서 그림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림과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그림책을 한 것이니까요.
인상 깊은 말씀이에요. 사실 제가 생각했을 때 저의 그림책은 다른 책과는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그런데 기자님께서는 ‘특별한 그림책’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저에게 새롭게 다가오네요.
물론 제가 제작하는 그림책이 일반적인 기성 그림책과는 그 형식이 확실히 다른 것이 사실이에요. 현재 제가 연구 중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은 분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죠. 저의 그림책을 어떠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거나 정의를 내린다면 ‘그림책과 아트북 사이’에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처음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그림책 학교에 있을 당시 서사가 있는 그림책, 장면 중심의 그림책, 추상적인 도형으로만 이야기를 만든 그림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며 정말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저에게 적합한 그림책의 형식은 무엇인지 많이 연구해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는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적고, 그 이야기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어쩐지 그런 성격의 작업에서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해서 저와 잘 맞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찾았던 탈출구가 바로 장면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만든 것이 저의 첫 그림책이자 단색 시리즈의 도서 [The blue: bench]였습니다.
MIA가 세상에 처음 보여준, 그림책 [The blue: bench]와 [The red: table]
- 작가님의 첫 그림책, [The blue: bench](이하 벤치)와 [The red: table](이하 테이블)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면.
저의 책, [벤치]와 [테이블]은 제가 기획한 네 권의 단색 시리즈 그림책 중 제작이 완료된 두 권의 책이에요. [테이블]은 사랑을, [벤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큰 주제로 담고 있죠. 프렌치 도어라는 책의 구조로 되어 있어 일반적인 그림책과는 다르게 양쪽으로 도서를 동시에 펼쳐서 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두 도서 모두 인간의 감정을 주제로 만든 그림책이에요. 둘 다 그림책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주제는 있지만, 양쪽 페이지를 어떻게 넘기는지에 따라서 만들 수 있는 장면이 총 121가지가 되기 때문에 독자가 스스로 장면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림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작가님께서는 '121개의 장면을 통해 독자가 만드는 이야기'라고 해주셨어요.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운 표현이에요. 일반적으로 그림책은 어린아이가 주 독자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확실한 이야기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북 페어에 가면 저의 책을 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어떤 분께서는 [테이블]을 통해 몇몇 이야기를 만들어 보시고 ‘이 책이야말로 슬픔을 주제로 담고 있는 것 아니냐’ 말씀해 주신 적도 있어요.
그림책 독자층 얘기를 해주셔서 생각이 났는데, 저도 처음 이 책을 만들고 나서 ‘어린이들이 이런 책을 잘 볼까’ 걱정하기도 했거든요. 무슨 기승전결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린이 독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 편견이 깨지고 있어요. 아이들도 뚜렷한 서사가 없는 그림책이나 아트북을 잘 본다는 사실을 시간이 갈수록 깨닫고 있거든요.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할 때 [벤치] 책을 소개하곤 하는데, 이 책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보던 어떤 아이가 ‘왠지 슬픈 것 같아요’라고 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땐 정말 기뻤어요. 의도가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반대로 깔깔 웃으며 보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런 반응도 흥미로웠죠.
- 앞서 말씀해 주신, [벤치]와 [테이블]을 장면 중심으로 만들게 된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네요. '장면 중심'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가장 쉽게 설명을 해드리자면, 우선은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는 거예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렸던 그림과 비슷하지만 부분적인 요소를 바꿔서 다른 그림을 여러 장 그려도 좋고, 할 수 있는 한 그림을 길게 이어지게 그려봐도 좋아요. 글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가능한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하면 아마 재밌는 결과가 나올 거예요.
저의 책 [벤치]는 벤치가 있는 풍경은 책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고정되어 있는 대신 그 안에서 특정한 요소들을 바꾸며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작업한 경우예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림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좀 더 내 그림과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책 구조를 찾다가 발견한 게 ‘프렌치 도어’ 구조였어요.
- 굉장히 의외네요. 저는 '프렌치 도어'를 선택한 이유에는 다른, 조금 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했어요. 사실 작가님께서 다른 인터뷰에서 “색다른 형태의 그림책 만들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보았거든요. 그래서 원대한 꿈과 목표가 있을 줄 알았어요.
오해가 조금 있어요. 이 구조를 선택한 건 특정한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업 방식을 고민하다가 선택하게 된 거예요.
저의 책은 독자의 개입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편인데,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벤치]와 [테이블]이 책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그림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지만 그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 책은 어떤 방법으로 그림책을 펼쳐도 그 순간순간이 이야기가 되어요.
그런데 이런 결과까지 예상하고 이 구조를 선택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어떤 의도에서 작업은 출발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최초의 아이디어는 명확히 있고, 모든 작업은 거기에서 시작되죠. 그런데 구체적인 작업 방향이나 결과물까지 순수하게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아요. 그렇게 작업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저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요즘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디어와 제 자신이 분리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단계에서 저는 아이디어 자체를 대상화해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어본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기도 해요. 그 아이디어가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정확한’ 길은 있는 것 같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아요. 그 길을 찾다 보면 이야기는 조금씩 변하기도 해요. 이유가 있다면 변화를 허용하죠. 그래서인지 정말 작업할 때마다 이 책이 어떻게 완성될지 종잡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어떤 형태까지 연결이 된다면 정말 그게 좋은 결과라는 믿음을 포기하기 어렵고, 그래서 가능한 ‘말이 되는’ 형태가 나오기까지 기다려요. 저는 이 과정이 '발견'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벤치]도 비슷한 과정으로 만들어졌어요.
- 이야기도, 그림도 그저 '발견해 내는 것'이라는 표현이 무척 재미있네요.
많은 전문가들은 ‘이야기는 새로 쓰는 것이 아닌 찾는 것’이라 말하기도 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도서관과 공공교육기관에서 그림책 만드는 강의를 계속 진행해 왔는데, 제가 그렇게 수업하면서도 느낀 것이 있어요. 사람마다 각자의 맞는 이야기 형식이 있다는 것이죠. 누군가에게는 서사가 탄탄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가 잘 맞고,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서사 없이 그림으로만 전개하는 이야기가 맞을 수 있어요. 저의 경우엔 이런 형식의 이야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 [벤치]와 [테이블]은 동판화로 그림이 그려졌다는 점도 함께 주목하고 싶어요. 동판화를 그림책에서 볼 수 있어 무척 색다르게 다가왔는데. 동판화를 그리게 된 이유도 함께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림책 학교에서 정말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보았거든요. 색연필, 수채화, 아크릴, 유화까지 써보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마음에 꼭 드는 결과물을 내지 못했어요. 꼭 재료 탓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어떤 기법은 관성에 따라 그려지던 그림의 한계랄까 그 벽을 한 번에 넘게 해주기도 하거든요. 저에게는 동판화가 그런 의미의 기법이었죠.
동판화를 하기 전까지 이런저런 재료를 쓰며 방황했고 그림책 학교 졸업 전시를 앞두고서는 그 압박감이 심해져서 매일 폴더를 만들어서 다양한 작가님들의 작업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우선 시각적으로 제가 원하는 그림을 찾아야 스스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캡션을 보니까 ‘애쿼틴트’라고 되어있는 거예요. 찾아보니 동판화 기법의 한 종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내려면 동판화를 직접 하는 방법밖엔 없었죠. 이후에는 판화 공방에서 동판화 기법을 배우며 그곳에서 처음으로 에칭과 애쿼틴트를 시도하게 되었어요.
- 유독 동판화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동판화에서 가장 크게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엄청난 압력으로 눌러서 색을 뽑아내는 것이다 보니 명암의 단계도 무척이나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고, 선도 1mm보다도 더 얇은 선으로 표현이 가능하거든요.
애쿼틴트는 판에 송진 가루를 분사하고 가루가 묻지 않은 부분만 작업용 염산으로 부식시켜 표면에 작고 고른 점각을 남기는 기법이에요. 염산에 판을 담가두면 시간 차이로 부식되는 정도가 다른 점을 활용해서 명암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런 원리가 간결하고도 시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물론 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요.
어떤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지가 이야기의 주제와 소재, 그리고 그림책의 전체적인 의미와 긴밀하게 관련되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저의 경우 특정한 주제와 관련 있는 재료를 일부러 찾은 건 아니었어요. 재료를 선택할 땐 완전히 시각적인 이유밖에 없었죠. 그저 동판화의 느낌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그림과 어울리는 책 구조를 찾았고, 더미북이 거의 완성되었을 즈음에 적합한 주제는 나중에 붙이게 된 거예요.
- 모든 제작 과정이 작가님의 '의도'보다는 '흐름'의 과정이었네요. 그렇다면 작가님께서도 작품을 만드시는 중간까지는, 이 책이 어떻게 완성될지에 대한 확신을 갖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전혀 몰랐죠. 하하.
특히 저는 그림책을 만들면서, ‘책을 혼자서 완성하는 것은 정말 어렵구나’를 느끼고 있어요. 출판사 대표님의 조언, 동료 작가의 조언, 작가 지원 프로그램, 몇 번의 전시 경험까지 포함해서 [벤치]와 [테이블] 책은 특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 충분한 작업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방향성을 다져나갔고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치]와 [테이블]이 ‘단색 시리즈’로 제작된 이유에는 작가님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색상이 해당 시리즈의 핵심이니까요.
아니요, 색깔도 마찬가지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찾은 방향성이었어요. 의도는 나중에 담게 되었죠.
사실 처음 제가 이 그림책을 기획할 때는 당연히 검은색으로 인쇄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검은색이 넓은 범위의 명암을 표현하기 좋은 색이거든요. 예를 들어 검은색과 파란색을 같은 농도 100%로 표현했을 때, 더 어두운 건 검은색이에요. 이런 원리 때문에도 풍부한 표현을 위해서는 당연히 검은색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시 [벤치]와 [테이블]을 지도해 주시던 멘토님께서 그림책에 대한 경험치가 굉장히 풍부하신 분이었어요. 그분께서 저의 작업 과정을 보시며 문득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을 시도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죠. 그 말을 듣고 저도 정말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상을 활용하여 다양하게 시도해 보다가 붉은색과 파란색을 사용하게 된 것이었어요.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고 어느 매체에서 멘토님과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멘토님께서 저에 대해 남겨주셨던 코멘트가 무척 인상 깊어요. ‘이 친구는 자신의 작업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인들이 어떠한 것을 제안하면 그것이 설령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바와 다른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기꺼이 수용하고 도전한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런 성향 덕에 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앞으로의 단색 시리즈에 대해 조금 스포일러를 해주신다면.
‘기쁨’과 ‘생과 사’를 주제로 하여 제작할 예정입니다. 여기까지만 말씀 드릴게요. 하하.
옅은 구름 사이에서 마주하는 짙은 내면, 그림책 [나는, 이제]
- [벤치]와 [테이블] 이후 2년 만에 나온 신간 [나는, 이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해당 도서를 소개해 주신다면.
[나는, 이제]를 요약하면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에요. ‘Ça va(잘 지내?) - 나는 - 이제 - Ça va(잘 지내)’로 이어지는 문장이 앞, 뒤표지를 감싸고 있는 구조입니다. 내지에는 흘러가는 구름과 편지를 읽는 사람의 모습을 담았어요. 실내 그림은 다섯 가지 색상의 리소 인쇄로 아주 화려한 반면, 바깥의 풍경은 회색 모노톤으로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중앙에는 스탬핑 해서 만든 편지가 끼워져 있는데, 편지의 화자는 자신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고백해요. 이 고백과 시시각각 바뀌는 구름의 풍경은 ‘변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로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봉투 바깥에는 편지와 같은 내용이 프랑스어로 인쇄되어 있고요. 표지 및 간지에 특수지를 활용해서 서서히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가 서서히 빠져나오는 감각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 이번 신작도 무척이나 재미있네요. 어쩌다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나요?
이 작업이 시작된 최초의 아이디어는 구름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미지였어요. 평소에도 하늘을 자주 보는 편인데, 어느 날은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구름은 자신의 모습이 변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득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 것 같은데, 저는 바로 그 당연함이 이상하게 여겨졌던 거예요.
아무래도 당시에 제가 겪은 어떤 일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감당하기 힘든 변화가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삶에는 달갑지 않은 변화가 많아요. 가령 주변 사람들이 병이나 사고로 떠나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던 신념이나 가치관이 바뀌는 일들이요. 정확히는 그런 일들의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이 싫더라고요. 이유가 없다는 건 이해할 단서가 없다는 거니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거든요.
그런데 구름은 왜 하루 한시도 같은 날 없이 변화무쌍한 모습이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한지, 자유로울 수 있는지 신기했고, 저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름이 보여주는 물성을 바탕으로 어떤 찰나와 헛됨을 말하는 동시에, 그 헛됨도 자연스러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책이 [나는, 이제]예요.
- [벤치]와 [테이블] 과는 또 다른 구조의 책인데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이 작업도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생각을 정리한 상태에서 진행한 건 아니였어요. 작업 초반에는 사람과 풍경을 그저 그리기만 했거든요. 책 구조도 프렌치 도어로 작업하고 있었죠. 왼쪽에는 실내의 풍경이 계속 변하는 모습을, 오른쪽에는 바깥의 풍경이 계속 변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의 면적도 같았죠.
그런데 원래 하늘이 더 넓지 않으냐는 편집자분의 피드백을 듣고 지금처럼 실내 이미지는 작게, 안에 들어오는 구조로 수정하게 되었어요.
이 작업을 할 때 특히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텍스트에 한창 감명을 받은 때였어요.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두꺼운’ 세계에 관한 카뮈의 생각이 담겨 있는 책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지금껏 줄곧 생각하곤 했던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거예요. 어떤 구절은 ‘내가 쓴 건가’ 생각할 정도로 공감하며 줄을 죽죽 그으며 보기도 했어요. 고백하자면 저에게는 원래 삶 자체가 좀 납득할 수 없는 대상이거든요. 태어난 이유가 없는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저는 때때로 이해가 잘 안돼요. 하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려고 하진 않아요. 애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여기기도 하고,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면 속이는 행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카뮈가 건드리는 부분도 정확히 그 지점이었어요. 카뮈에게 “산다는 것은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이에요. 카뮈는 부조리한 상태를 그대로 지탱하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계속해서 얘기해요.
[나는, 이제]에 그런 부조리에 관한 개념을 직접적으로 담으려 했던 건 아니지만, 통하는 맥락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독자는 실내의 이미지와 실외의 이미지를 따로따로 넘길 수 있어요. 나와 세계는 붙어 있지만, 흐름은 상관이 없죠. 이런 구조나 장면은 부조리한 상태를 어느 정도는 비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오늘 너무 괴로운데, 아침에 어김없이 태양은 뜨고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아름답잖아요. 같은 원리로 생각해 보자고요. 아주아주 소중했던 신념을 버리는 일을 구름이 변하는 것과 같은 무게로 말하는 시도는, 그렇게 무모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느끼는 것과 별개로 모든 변화는 평범한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이야기예요.
처음엔 편지의 화자가 부조리를 체화한 사람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냥 인생의 큰 사건도 억지로 ‘그렇구나’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어요. 희망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이 화자는 자신의 변화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더 멀리 가겠다고 얘기하기 때문이에요. 그 과정이 쉽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가장 중요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희망 자체는 아니에요. 저는 카뮈를 좋아하니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가 가장 경계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이런 건 책을 만들 때는 몰랐어요. 다 만들고 나니까 보이게 된 부분들이에요.
- 작가님께서는 앞서 해당 도서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말씀해 주셨고, SNS에서도 해당 도서를 소개하며 ‘이야기가 개인적이지 않으면 말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 도서라는 것이 읽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이번 도서는 무척이나 사적인 도서라는 뜻이죠. 작가님께 ‘그림책’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작가님의 '일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도 이 생각을 딱 지난주에 했어요. 누군가가 저에게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물어본다면 ‘나는 그림책이 일기라고 대답할 것 같다’고 말이에요.
사실 저는 예전에 일기 같은 작업을 하게 되는 걸 경계하는 편이었어요. 누군가 인터뷰에서 작업의 의미를 ‘일기’라고 말하는 걸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 표현은 덜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고, 저에게 일기는 일종의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이미지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림책이든 일기든 제 시선에서 바라본 무엇을 저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결과는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쨌든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작가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구나, 이 부분은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이렇게 사적인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도서 [나는, 이제]의 궁극적인 대외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도 여기에 대해 굉장히 고민했는데, 결국 제가 그림책 [나는, 이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내용보다는 의외로 책 구조인 것 같아요. 이 안에 담긴 이야기는 저의 사적인 경험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오롯이, 완전하게 독자들에게 전달이 될 필요는 없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지금 이 도서의 구조에 담겼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는 책으로 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 일반적으로 책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구조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니 무척 흥미로워요.
결국 저에게 이야기는 이제 구조 그 자체가 된 것 같아요. 다른 매체의 어떤 칼럼에 쓴 문구이기도 한데, 동일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아요. “이야기는 물질(형식) 자체다. 종이를 접거나 자르고 구기면 이야기도 그런 형태로 존재한다.” 언젠가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도달한 결론이에요. 작품이 가진 물질적인 형태와 형식, 그러니까 저의 경우에는 책이 될 텐데, 그 책이 가진 질감, 크기, 구조 이 물질 자체가 곧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물론 안에 담긴 내용이나 철학을 보려고 노력하는 독자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돼요. 우선은 이 작품이 가진 물질적인 무엇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보일 거예요. 이것도 페어에 참여하고 독자분들을 직접 만나며 알게 된 건데, 이 책을 보는 어떤 분들은 정말 빠르게 빠져들더라고요. 보자마자, 종이를 만지고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냥 좋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내용이 뭐냐고, 무얼 그린 건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저에게 따로 묻지도 않죠. 그냥 볼 수 있는 사람에겐 보이는 거예요.
- 그렇다면 이러한 구성을 일 순위로 생각했을 때, 그 안에 담길 이야기로 작가님의 사적인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구성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다기보다는, 그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 그렇다면 독자들은 해당 도서를 읽고 어떻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나요?
작년 11월에 북 페어에 참여하며 느꼈던 사실이 있어요. 저는 독자들을 믿는 작가라는 거예요. 제가 어떤 도서를 만들어도,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실 분들은 분명히 계실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제 안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유롭게 보시면 좋겠어요.
[나는, 이제]를 작업할 땐 잘 몰랐는데, 제가 편지글에 알게 모르게 애정을 많이 담았다는 걸 북 페어 현장에서 깨달았어요. 행사 특성도 있고 저도 이 책을 마음껏 보게 해드리고 싶어서 사진 촬영을 허용했는데, 유독 사람들이 편지를 찍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픈 거예요. 속이 쓰렸어요. ‘저 글이 저렇게 소비되면 안 되는 거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에 스스로도 놀랐던 기억이 나요. 웃긴 게 제가 허락한 거잖아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리적인 문제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 편지에 담긴 저의 마음이 그만큼 컸구나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조금 모순된 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 글은 누군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도 같아요. 저도 이 부분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꽁꽁 감추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 드러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해요. 아름다운 부분이 되기도 하고요. 예전에 그림을 잘 모를 땐 작가가 자신 있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그림으로, 시각 예술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작가는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면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더, 독자들을 믿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의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아름답게 봐주시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들고요. 무엇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안에서 자유롭게 이 책을 즐겨 보시면 좋겠어요.
지속에 존재하는 순간, 전시 [틔움]
- 작가님께 이번 전시 [틔움]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이번 전시 [틔움]은 제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틔운다’는 것 자체가 어떠한 한순간을 의미하잖아요. 그런데 이야기의 연장선이 있어야 그 사이 순간이 틔워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전시 [틔움]을 특별하게 새로운 것으로 말씀드리기보다는, 지금까지 제가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나아가는 길, 그 연장선 속의 순간으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새로운 독자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주제로 만날 수 있는 그 순간이요.
- 이번 전시에서 소개해 주실 작품은 어떤 작품들일까요?
저의 도서의 장면들을 원화로 소개해 드릴 예정이에요.
사실 책에 담긴 그림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그림과 함께 연결하여 볼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시퀀스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전 장면과 다음 장면 사이에서 의미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림을 본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무의식중에서 다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죠. 그 사이에서 이해되는 맥락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 속의 그림은 책을 덮는 그 순간부터는 다시 책을 펼치는 그 순간까지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전시에서 책이라는 제한된 구조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림 그 자체로 바라볼 기회를 드리고자 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저의 그림을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하나의 작품으로 살펴보며 공간, 묘사, 색감 등 함께 바라볼 수 있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책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 작가님께서 관람객들에게, 이번 전시에서 집중했으면 하는 키포인트가 있다면.
색상에 집중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이제]의 그림이 굉장히 화려하고 알록달록 한데, 그 알록달록함이 모두 계산되고 배치되어 있거든요.
실제로 ‘왜 실내는 화려하고 구름은 모노톤인가’에 대한 질문을 들은 적도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둘 다 비슷한 색감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막상 시도해 보니 색상이 부딪치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구름만 모노톤으로 표현했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화려한 실내가 오히려 외롭게 느껴진다는 편집자분의 피드백도 좋아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바인딩에 사용된 실도 두 가지 색인데요, 단순하지만은 않은 마음의 엉킴을 은유해요. 이와 같이 실내의 화려함과 외부의 모노톤, 실색과 봉투 색 모두 굉장히 고민하여 결정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전시를 즐기며 함께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지으며
- 작가님의 모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가님께 가장 적합한 이야기가, 작가님을 직접 찾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야기가 작가님을 선택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정말 시적이고 좋은 표현인 것 같아요. 인터뷰에 꼭 함께 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 작가님만의 목표가 있다면.
좋은 작업,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특히 어떤 아이디어나 이야기가 시각적인 형태나 물질적으로 ‘그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을 때 아름다움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도 그런 방향으로 작업하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거예요. 살다가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형태에 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현재 그림책 만들기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강사로서의 목표도 따로 있어요. 요즘 학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그림책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그림책을 통한 감정 읽기나 소통을 위한 수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요. 이런 부분이 작가로서 아쉽더라고요. 그림책을 작업할 때 작가들이 서사뿐만 아니라 책 구조와 그림과 글의 배치, 장면 순서 등 고민을 많이 한단 말이에요. 이런 책들은 이야기와 그림, 책 구조를 종합적으로 봐야 하죠. 그러니 그림책에서 이야기만 빼내어 소통의 툴로만 활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읽는 매체’보다는 ‘보는 매체’로서 대중들도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기획할 예정이에요. 관련해서 칼럼을 쓰고 있기도 하고, 그런 교육을 지향하는 내용의 단행본도 올해 3월쯤 발간을 앞두고 있어요.
- 작가님께서 작가님의 작품이 아트북과 그림책 사이에 있다고 해주셨어요. 앞서 말씀해 주실 때는 '저의 그림책은 평범한 그림책이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해주셨는데, '특별하지는 않지만 아트북과 그림책 사이에 있는 그림책'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일까요?
질문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그렇게 말씀드린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니 자기 검열에 가까운 것 같아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아트북 페어에 나가보면 독창적이고 기발한 형태의 책들이 아주 많거든요. 제 책은 형태적으로 평범해 보일 정도로 창의적인 작품들이 많죠. 가령 그림이나 글 없이 오직 구조만으로 말하는 책, 천이나 pvc로 만든 책, 조각 형태로 된 책 정말 무궁무진해요. 그래서 저의 책이 아트북 필드에 낄 만 한가 스스로 고민하는 것 같아요.
다만 아직도 제가 한국에서 북 페어를 나가면 제 책을 보고 ‘독특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트북이 대중화된 장르가 아니니까 그럴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국내의 여러 북 페어 현장에서 제 책을 사기 위해 ATM기에 다녀오는 외국인 분들도 몇 번 만났거든요. 그럴 때는 또 ‘아 이 책이 해외를 기준으로도 기성 책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보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특정한 카테고리로 명확히 분류하긴 힘들지만,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있어요. 저는 아직 책의 기본적인 구조 자체를 많이 비틀고 바꾸는 방식보다는, 기본적인 모양은 책 같으면서 내지에는 여전히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살짝’만 새롭길 바라요. 그게 제 취향인 것 같아요. 이런 저의 취향이나 제가 지금 하는 작업의 이런저런 특성을 반영해서 저의 책은 ‘그림책과 아트북 사이에 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지으며 해당 인터뷰를 읽어주실 분들께, 그리고 전시에 찾아와주실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창작’이라는 게 어떤 구렁텅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다시 새로워졌어요. 저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창작하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전보다 더 좋아졌어요.
지금은 조금 더 많은 분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 크게 기대가 되고 있어요. 그림과 이야기를 사랑하시는 분들을 앞으로 더 많이 만나고 싶고,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저 또한 감정적으로 지지 받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번 전시회에서도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저의 그림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전시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