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혹은 말할 기회가 없던 비밀을 안은 채 재생되는 이야기들.
백수린의 소설 속에는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외롭고 참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렁이는 눈부신 빛들, 그 사이로 고요하게 헤매는 이방인들로 가득한 소설집에서, 유독 쌍둥이처럼 눈에 들어오는 두 단편이 있었다.
바로 「시차」와 「중국인 할머니」이다.

1. 중국인 할머니
「중국인 할머니」는 언젠가 합일의 가능성을 엿봤던, 해결되지 않은 가족 서사의 작품이다. 죽음이 슬픈 이유는 잊히기 때문이 아니라 대체되기 때문이라고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재혼을 통해 깨달았다.
재혼으로 새할머니와 가족이 되며 할아버지의 가족들과 새할머니의 가족들은 수면 아래에서 갈등한다. 한 가족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끝끝내 섞이지 못하고 심지어 새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상속 문제로 시작된 갈등은 수면 위로 드러나, 그 여파로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완벽하게 섞일 수 없던 건 아니다. 주인공은 할머니와 너무 다른 사람인, 화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새할머니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결국 인연이란 좋고 싫고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것이다.
새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애사를 물으며 주인공은 처음으로 새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이 분단된 가족들에서 자신과 대칭점에 있던 사촌 진운과도 처음으로 한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아름답게 끝나지 않는다. 달 앞에서 잠시 한 궤도에 있었던 그들은 그렇게 옷깃만을 스치고 각자의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며 끝을 맺는다.
그들이 함께이길 바랐던 독자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삶이라는 현실을 재현해낸 소설이라는 무대에서 어쩔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2. 시차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가끔 무섭지 않아?
그는 대꾸가 없었다.
난 가끔 우주를 생각하면 무섭더라고.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던데, 그 끝엔 과연 뭐가 있을까, 하고.
- 54p.
「시차」는 다채로운 색채의 소품들과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해주는 장면들이 독자들에게 하여금 지루할 수 없게 만드는 통통 튀는, 그러나 그 이면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소설이다. 주인공과 그의 가족은 완벽해 보이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아픔으로부터 끈끈한 공동체이다. 주인공의 죄의식은 이모의 숨겨진 자식, 빈센트의 등장으로 자극된다.
생모를 만나러 왔다는 그에게 생모가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해야 하는, 생모를 찾을 누군가를 만들어버린 주인공의 상황은 굉장히 복잡하다. 네덜란드라는 낯선 나라에서 온 자신의 잃어버린 동생과도 같은 빈센트를 만나고, 그에게 한국을 소개해주는 과정은 한국인 독자들이 심심할 틈 없도록 만든다.
주인공과 빈센트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끼어 있는 많은 메타포와 소품들은 소설을 풍부하게 만드는 동시에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 일축한다. 잊으려 했던 과거의 기억은 빈센트로 인해 다시 상기되지만, 주인공은 결국 빈센트에게 위로를 받고 빈센트와의 만남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그가 전세계를 떠돌면서, 수많은 국경을 넘으면서,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도시들을 횡단하면서 사진 속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찰나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며칠 있으면 그가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편서풍을 거슬러 대륙으로 날아갈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가로지르는 것이 위도와 경도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 그가 살아왔던 서른여덟 해가 천천히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반대로 흘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방 속에 색색의 콩을 한 움큼씩 넣어다니는 그의 마음을 영원히 헤아릴 수 없으리란 것을 알았다.
- 62~63p.
언제나 이방인일 「시차」의 빈센트와 「중국인 할머니」의 새할머니.
그러나 과연 이들을 지켜보는 주인공들과, 우리는 다를까?
3. 나아가, 감자의 실종
「감자의 실종」은 앞 소설들과는 조금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위의 소설들이 비밀을 간직하느냐, 간직한 비밀로부터 나아가느냐에 따라 나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수린의 첫 소설집 『폴링 인 폴』에 수록된 이 소설은 세계의, 인간과 인간이 소통한다고 믿고 있는 그 밑에 전제된 거대한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타인에게 말을 정확히 전하고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올까. 「감자의 실종」은 단어의 뜻을 착각하고 있다는 작은 상상력을 통해 서로의 말을 오독할 수밖에 없다는 세계의 비밀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어느 순간 ‘개’를 ‘감자’로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화자는 그 작은 단어의 틈에서 시작하여 세계로부터 유리되는 굉장히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모국어를 익히고 그 모국어로 상대방과 소통한다는 것은 ‘개’를 ‘감자’로 아는 것과 같이 오독이 있을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화자가 세계와 자신의 틈을 깨달은 이후에도 자신의 사유를 계속 전달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어쩐지 그 밖에 있는 작가를 상기시킨다.
소설이라는 매체 또한 전달할 수 없는 사유를 전달하기 위해 꾸려진 세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