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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른을 위한 아이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괴물>,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들>. 이 영화들에서 아이들은 어리지만 어리숙한 존재가 아니다. 매사 솔직하고 감정적이지만, 그만큼 용감하고 진실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꼭 그들만큼 작고, 충실하다.

 

좀 덜 솔직하고 조금 더 비겁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밀 수 있을까. 이들의 세상은 얼마나 어렵고 거대할까. 나름의 고민을 나름의 고통으로 견뎌내고 온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까.


윤가은 감독의 아이들에 대한 영화에는, 이런 작고 귀한 고뇌가 카메라를 삼아 존재한다.


아이들의 감수성을 조심히 들어 살피는 따뜻함과, 섣부르게 누군가의 이야기로 환원하지 않고 ’우리들‘의 이야기로 걸쳐놓는 넉넉함이 작고 귀한 영화를 만들었다.

 

 


잔혹한 피구게임



영화가 시작하면 피구 게임 장면을 비추어 준다. 학급 내 왕따인 주인공 ‘이선’은 이내 아웃된다.


실망이 들고 화가 나지만 선이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없다. 선 밖에 나간 선이에게는 누구도 공을 주지 않으니까. 이 작은 사회에서(학급에서) 왕따란 그런 존재다. 가장 먼저 비난 받고, 누구도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사각형의 선 안에 있는 사람은 공을 피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고, 공을 맞은 사람은 선 밖에 나가 던져야 한다. 맞은 방식 그대로 누군가를 때려야 하는 피구처럼,  이들의 학급생활은 숨가쁘게 돌아간다.


아이들의 미숙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는 법이 없다. 뒤틀리기 시작한 관계는 다른 관계를 뒤집고 흔든다. 네모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들의 동족상잔이 참 잔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곳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질책하고 비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질책당할 테니까. 맞지 않으려면 때려야 하니까.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그런 살벌한 얼음장을 벗어난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새로 만난 선이와 지아는 새로이 친구가 된다. 집에서 같이 잠도 자고, 김치볶음밥도 해 먹고, 비밀 이야기도 한다. 꼭 맞는 우정팔찌를 만들고 봉숭아 물을 들이기도 한다. 그렇게 여름을 함께 지낸 그들. 곧 서로가 서로의 전부가 된다. 선이네 할아버지와 아빠의 불화도, 지아네 부모님의 이혼도 둘 사이를 망칠 수 없다. 그저 눙쳐 웃고 넘기면 그만이다.

 

개학을 하고 나니 이들의 관계는 이리 저리 주변 관계들의 방향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선이를 왕따시키는 보라 무리와 지아가 친해지면서, 둘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선이는 지아에게 다가가보려 노력하고, 지아는 그런 선이를 외면한다.

 

미숙한 관계를 가두어놓은 작은 네모 안에서 서로만 바라보기에는 버겁다. 관계들의 파도가 너무 거세다.

 

게다가 여름날 공유했던 서로의 비밀 이야기들은 이제 서로가 쥐고 있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반 아이들이 알게 되면 왕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꼭 맞게 조인듯 했던 이들의 팔찌는 어느새 족쇄같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관계는 늘 예상치 못한 일로 흔들린다. 공부를 잘 하는 지아가 눈에 밟힌 보라는 이내 지아를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지아는 선이와의 관계 때문에 보라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지아는 이내 선이를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선이는 그런 지아가 황당하고 밉다. 여름에 맞춘 팔찌도 커터칼로 끊어버리고, 보라에게 지아에 대해 알고 있는 일을 모두 말해버린다. 나아가지 못하고 빙빙 돌던 이들의 관계는 먼저 나가 떨어지지 않으려는 버티기 싸움이 되었다가, 상대를 먼저 떨어뜨리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지아는 선이의 약점을 반 아이들에게 떠벌렸고, 선이는 그런 지아의 비밀을 화가 나 모두에게 밝혀버린다. 더 할 말이 없자 이들은 서로를 밀치고, 때린다. 한바탕 싸우고 나니 이들은 모두 반에서 왕따가 되어 있다. 상처만 남긴 이들의 관계에 승자는 없다. 칼로 뜯어낸 팔찌 처럼, 관계란 느슨해지기도, 조여지기도 하지만 결코 끊어내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선이와 지아의 관계는 그리도 아프게 망가졌다.

 

선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빈자리를 보며 눈물을 훔친다. 선이는 싫어하기만 하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는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아버지의 뒷모습을 뭐가 묻기라도 한 듯,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

 

망가진 관계라고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다 무너진 관계엔 무엇이 남을까. 할아버지의 장례 차 찾은 바다를 보면서 선이는 생각에 잠긴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선이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지난여름 손끝에 들인 봉숭아 물처럼


 

그 여름부터 참 긴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서로를 아껴 내어주었던 그 여름은, '나'의 생존을 위해 방패가 되기도, 창이 되기도 했다. 미숙한 관계는 폭력으로 뒤틀리고 뒤집힌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그 여름이 밉지 않음을 확인한 선은 당혹스럽다. 당혹감을 마주한 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미 탈락한 게임이기에 선에게 생존은 별로 중요치 않다. 비로소 선은 솔직할 수 있다.


다시 피구 게임이 시작된다. 선은 가장 먼저 아웃된다. 지아는 선을 밟았다는 모함을 받는다. 이내 아웃 될 상황에 처한다. '선'이 지아의 편을 들어주고, 잠시 뒤 지아는 공을 맞아 아웃된다. 그렇게 둘은 선 밖에서 나란히 서 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선 밖에서 서 있게 된 둘은 이제 어딜 보아야 할까. 다 무너져가는 관계는, 그것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카메라는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기다린다.

 

뒤집힌 관계라고 함께 족했던 기억도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건 처세이지만, 관계를 지지하는 건 여전히, 아련히 찾아오는 순간임을 믿는다. 우리는 지난여름 손끝에 들인 봉숭아 물처럼, 아스라이 사라질 듯 걸쳐진 존재감만 손에 쥔다면.그럼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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