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저만 믿으소서‘
최근 인기를 얻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백강혁의 대사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의사의 간절한 기도다 싶으면서도 신에게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어색하다.
극 중 백강혁은 ’신의 손‘으로 위급한 환자를 살려내는 먼치킨 주인공의 정석적인 인물이다. 적당한 유머러스함과 스토리가 전개되며 발생하는 여러 현실적인 장벽, 방해공작에도 드라마적 허용과 의사로서의 직업윤리, 열정으로 이겨내며 여러 사람들을 구한다.
‘난 가졌기 때문에 우월한 게 아니라, 가졌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아무 노력 없이 많은 걸 가졌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이치에 맞다.‘
위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드라마 ‘옥씨부인전’ 중 진짜 옥태영의 대사이다. 비록 노비 구덕이가 가짜 양반 옥태영이 되어 외지부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지만, 진짜 옥태영의 뜻을 따른 주인공이기에 이 대사는 주인공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극 중 옥태영은 억울하게 토지를 빼앗기거나, 살인누명을 쓰거나 하는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을 돕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가치관을 사랑과 배려, 베풂으로 실현시키는 인물이다. 노비가 양반행세를 한다는 점, 꽤 순정적인 러브라인 서사를 지녔다는 점도 이 드라마의 인기요인이지만 외지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며 여러 감동을 선사하는 것 또한 ‘옥씨부인전’과 가짜 옥태영이 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랑받은 이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최근 다수를 돕는 ‘영웅’이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많이 사랑받고 있다. 능력이 출중한 주인공이 개인의 이득보다는 자신의 직업윤리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장벽들과 부딪혀가며 당장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해가는 이야기는 속이 시원해지면서도 마음을 울린다.
현실에서도 이들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영웅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스포트라이트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큰 이슈와 관련되어 숨겨진 영웅들이 잠시 다수의 관심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잠시뿐이다. 게다가 드라마와 달리, 우리를 비롯한 현실 속 영웅들은 방해물, 장벽을 깨기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 속 영웅들이 어떻게든 곤경을 이겨내고, 그들의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사랑과 이해, 배려를 쌓아가는 모습은 이상적일 뿐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속이 시원해지기도, 대리 만족을 주기도 한다. 팍팍한 현실보다 조금 더 이상적인 요소가 들어가니 몰입이 되면서도 영웅들이 악한 캐릭터를 교화시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더더욱 도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이 이야기들이 재미와 감동을 다 잡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영웅들은 누군가의 상상에서 태어났음에도 반갑다. 이 영웅들 또한 우리 현실 속 누군가를 모티브로 하였을 것이고, 이들로 하여금 우리도, 또 다른 누군가도 슈퍼히어로는 아니더라도 당장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자신의 능력껏 도울 수 있는 작은 용기 정도는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당장 나 살기도 바쁜 시대라지만, 콘텐츠 속 영웅들의 우리의 마음에 조금의 틈을 만들어 자리잡아줬음 하는 바램이다. 마음 속 작은 틈에 차지한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조금 더 남을 보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이미 영웅인 누군가를 응원하고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이것이 콘텐츠의 순기능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