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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 다시 사춘기


 

김행숙의 사춘기 연작 시리즈는 사춘기의 불안정하고도 열띤 자아들이 힘차게 꿈틀대며 불화하는 매혹적인 시리즈이다.


『사춘기』의 뒤표지글에서 김행숙은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사춘기가 과연 어떤 시기인가,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해가는 불안정한 시기이다.


그 어드메의 경계를 헤매며 혼란스러워하는 자아들의 외침은 2000년대라는 새로운 세기, 새로운 시대에서 불안해하는 모두를 대변하는 시리즈이다.


 

주소록을 만들기로 한 날이었어요.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가 없고 저기에 내가 있고 저기에 내가 없고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정말 시들을 쓰고 있더라구요. 우린 모두 일목요연해지려고 모였다구.

 

우리에겐 특별한 날이잖아.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로 해. 우린 모두 지쳤기 때문에 동의했어요. 무섭게 조용해졌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내가 모임에 빠진 거 애들이 아니? 이해해. 우린 너무 많아졌으니까.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중이야. 지옥행을 시도했거든.

 

네가 대신 아무렇게나 써줘. 폭신한 침대에 내가 누워 있고 지옥문 앞에 내가 있고 다시 약국에 내가 있고 엄마 손에 잡혀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고 꽃잎이 떨어져서…… 그런데 절대 시 쓰지 마. 그냥 아무렇게나 쓰면 돼.

 

걘 멋진 데가 있었어. 우린 모두 조금씩 그래.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얘들아 우린 추억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모레에는 기차를 탈 거야. 가끔 우리는 여기에 있을 거야. 우린 천천히 조용해졌어요.

 

- 김행숙, 친구들 - 사춘기6 전문.

 

 

「친구들-사춘기6」은 사춘기 연작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시답게 사춘기의 끝을 예고하자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는 듯한 내용이다. ‘주소록을 만드는’ 행위는 이름, 주소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성년이 되고서야 주민등록증을 만들 자격이 부여되듯, 주소록을 만드는 행위 또한 ‘어른’의 자격을 갖추는 것을 요한다. ‘우리’로 일컬어지는 사춘기 시절의 청소년 화자들은 ‘모두 일목요연해지려고’ 모였다.

 

일목요연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다.-이다. 2000년대라는 새로운 또 다른 격변의 시기를 맞은 자들에게 일목요연한 어른으로서의 성장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문학의 종언을 맞닥뜨려 개개인의 발견이 심화된 이후이기 때문에 당시 ‘어른’이어야 했었던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으로 헤맸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시 원점, 그들은 ‘시들을 쓰기’ 시작했다. 일목요연해지기 위해, 어른이 되기 위해 모인 것과는 반대의 결말이다.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 위해 모인 모두지만 이제 개인화된 각자의 자아와 마음은 단일해질 수 없기에 그들은 시를 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시작한 시는 달리 쓰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학이 정치적으로, 장치적으로 어떤 계몽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신뢰가 배반당했기 때문에 시는 더이상 전과 같을 수 없다. 김행숙의 「친구들-사춘기6」 또한 그렇다.


2000년대 미래파의 가장 주목받았던 시인만큼 그는 불안하고 화자와 ‘애들’이 섞이고 같은 톤의 목소리가 섞이는 불연속적인 장면 속에서 ‘사춘기’라는 테마가 극대화된다.

 

이러한 혼돈과 불안 속에서 지옥행을 시도하여 앰뷸런스에 시도하고, 낙오되는 자들도 생긴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개인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에 이젠 그런 낙오조차도 그다지 발견되지 못한다.


그런 불안 속에서 화자와 애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되지 않는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대신 아무렇게나 써줘. 그런데 절대 시 쓰진 마. 그냥 아무렇게나 쓰면 돼. 걘 멋진 데가 있었어. 우린 모두 조금씩 그래.

 

그러나 김행숙은 동시에 2000년대 뉴웨이브를 불러일으킨 사람답게 새로운 해결책과 위로를 전한다.

 

 

문학이 사라지는 곳에서, 문학은 새로운 육체로 또 다른 생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육체의 운명과 더불어 나의 생을 실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흔들리는 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위기’와 ‘죽음’의 징후만을 드러내는 데서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죽음’ 쪽으로 나는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나는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다. ‘주어지지 않은 역사’이므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가 알았던 것에 기댈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다만, 나는 무지의 힘으로 으으으 달릴 뿐이다.


- 김행숙, 『사춘기』 뒤 표지 글 中.

 

 

투명인간이 되어 차라리 사라지고 도망치고 싶어했던 김행숙이었으나, 도망칠 수는 없다. 이미 시를 쓰는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행숙은 무지의 힘으로, 한치 앞길을 알 수 없는 사춘기를 맞은 시인으로서 으으으, 신음하며 달릴 뿐이다.

 

 


2. 메아리의 肖像


 

김행숙의 『에코의 초상』(2014)은 제목 그대로 메아리의 肖像, 수많은 타인의 빈 얼굴과 목소리로 발화하는 시집이다.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신화는 이 시집을 독해하는 데에 있어 큰 실마리가 된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물결처럼


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 「인간의 시간」 전문. 11p

 

 

위는 시집의 첫 수록작 「인간의 시간」의 전문이다. 인간이 소유격으로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살아가는 인생 전체일 것이다. 김행숙은 이 짧은 시 해체시 안에서 세계와 인간, 타인과 개인을 은유한다.


너무도 오만하여 연못에 비친 본인과 사랑에 빠져 결국 연못 속에 빠져 죽는 나르키소스의 신화처럼. 인간은 스스로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어떤 말도 인간에게 ‘인간’의 언어로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은 깊고, 부서지기 쉽고 본인의 시간 속에 영영 유폐되기 때문에 고독한 사랑을 하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개인은 타인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이 시가 ‘우리’라는 수많은 화자이자 단독의 개인으로서 발화가 가능한 것이다. 김행숙은 이러한 방식으로 타인들과 동화하여 ‘에코’로서 시를 쓴다.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중략)… 어던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 「에코의 초상」中, 136p

 

 

시집의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에코의 초상」에서는 앞서 말한 무수한 개인이기에 메아리가 된 타인들에 대해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에코의 초상」이 아니더라도 이 시집에서는 계속해서 불분명하고 무수한 타인의 흔적과 얼굴이 묘사된다.


타인의 입을 빌려서야만 말할 수 있는 에코라는 인물이 김행숙의 시적 자아로 대변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문자도 언어도, 어느 하나 온전히 인간 개인의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 안에 골몰하여 스스로와 사랑에 빠진 수많은 인간이 결국 아, 하고 흩어지는 메아리의 얼굴로 그려지는 시집의 완결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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