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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검은 수녀들>이 누적 관객수 136만 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단순히 오컬트로서의 의미를 넘어, 존재를 부정받는 이들의 처절한 생존기. 가장 미약한 존재가 다른 미약한 존재를 구하는 영화. 가장 순결한 욕망이 순결한 존재를 지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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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검은 수녀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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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감독이 연출한 영화 <검은 수녀들>은 알 수 없는 증세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희준(문우진)을 구하려는 유니아(송혜교)와 미카엘라(전여빈)의 분투를 담은 오컬트물로, 544만 관객을 동원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 이후 10년 만에 나오는 스핀오프 작품이다.

 

장 감독이 <검은 사제들>을 비롯해 <사바하>(2019), <파묘>(2024) 등으로 팬층을 쌓았기에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 영화를 선보이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극장의 혹한기에도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여느 오컬트물과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지점인 '탄탄한 캐릭터와 서사'가 있다.

 

* 스핀오프: 기존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만들어낸 새로운 작품

 

 

 

가장 신성한 공동체 속 가장 낮은 존재


 

히브리 성경에 따르면 고대로부터 겸손은 인간이 자기 본연의 자리의 미덕과와 한계를 알아보게 하는 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덕을 반영한 이가 '가장 낮춰진 이', '모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검은 수녀들> 속의 신부들을 보면 그들이 '낮춰진 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공동체로 여겨지는 종교 집단,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가장 낮은 계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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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이 김 신부(김윤석)와 최 부제(강동원)가 주축이 되었다면 <검은 수녀들>은 수녀 유니아와 미카엘라, 두 인물이 이야기를 극을 주도한다. 구마 의식의 주체가 사제에서 수녀로 바뀌었다는 소재부터 새롭다. 하지만 단순히 '수녀가 주인공이라 신선한 영화'가 아니다. 이 지점이 다른 오컬트 영화와의 차별점을 만드는 영화의 '킥'이다.

 

두 주인공이 사제가 아닌 수녀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며,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수행하면서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 믿는 집단에서조차 잔재하는 계급을 비춘다. 결국 끊임 없이 욕망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계급은 어디서든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세상의 법칙을 여실히 비추는 지점이다.

 

유니아는 부마를 믿지 않는 바오로 신부(이진욱)에게서 "서품도 못 받는 수녀가 구마를 하느냐"는 말을 듣는다. 수녀에게 구마를 허락할 수 없다는 교구의 불호령은 물론, 구마에 필요한 물품 조차 직접 전달 받을 수 없다. 장미수도회의 수녀로서 자신의 신념을 수행하는데도 세상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막는다. 하지만, 유니아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미카엘라의 질문에 "사람을 살리는 데 무슨 명분이 필요하냐"며 반문한다.

 

* 부마: 귀신이 들리는 현상

 

 

 

누군가의 생존에는 증명과 투쟁이 필요하다 


 
서품은 교회의 신도들 가운데 특별히 가려낸 사람들에게 교직을 수여하는 의식이다. 신도 나름의 판단을 거친단다. 그렇게 나름의 판단을 거쳐 누군가에게 특별한 권리를 수여했다. 돈과 명예, 지위 같은 것들. 특별한 권리를 수여 받은 이들에게, 이것들은 이미 충분한 것들이며 사실 알고 보면 그들에게는 있어도, 혹은 없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생존이 걸린 것 마냥 끊임 없이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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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특권을 수여받지 못한 존재들의 생존은 '운'에 맡겨진다. 그 존재들은 주로 계급의 최하위에 속한 여성, 미성년자, 장애인이다. 그들에게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생존을 걸고 쟁취해야할 만큼 간절한 것이 된다. 그들은 존재만으로 의심을 받고, 너무 미약해 무시 당하며 그렇기에 끊임없이 자신이 생존해야 마땅하다는 점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 과정은 다시 생명을 걸어야 할만큼 처절하다. 직접 성물을 전달받을 수도 없는 수녀. 학교 폭력을 당하는 너무 약했던 학생, 말 더듬이에 소위 '용빨'까지 딸린다는 막내 무당도 그렇다. 그들은 희준을 살리기 위해 목숨과 종교를 걸고 투쟁하지만, 마지막 구마 날까지 그들을 돕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국회위원들의 총선을 위한 굿을 벌여야하기 때문이다.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악령을 희준의 몸에서 쫓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바오로 신부 몰래 희준을 병원 밖으로 빼돌리고 의식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공수한다. 심지어는 수녀 출신의 무당과 손을 잡거나 타로로 점괘를 보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모두 부정한 것들로 취급받는 것들이지만, 모든 것이 '신의 한수'인 그녀들을 막을 수는 없다. 더욱이 희준을 구하는 마지막 구마날, 쓰러지는 전봇대와 부서지는 건물 앞에서도 자신의 굿을 포기하지 않는 막내 무당의 처절함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포인트다. 아무도 큰 일을 해내리라 생각하지 못한다고 지나쳐온 존재들이, 처절함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해보인다.

 

 

 

가장 순결한 욕망


 

여성에게 가장 순결한 욕망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단순히 아이가 아닌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이라 생각한다.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정의 되기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은 아이가 될 수도, 직업이 될 수도, 가정 혹은 명예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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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말을 좇아 예수의 생활과 성모 마리아의 생활을 본받아 정결과 청빈과 순명을 서약한 여성들로서, 일반사회를 등지고 수도생활을 한다.* 그리고 극 중 유니아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그에 따른 자신의 욕망에 가장 진취적으로 다가가는 사람이다. 영화에는 수녀이지만 희준을 지킨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진 유니아와 반대로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을 도구적 인간으로 보고 한계를 제한했을 때 생기는 파멸적 결과를 예상 가능하게 한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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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여성을 넘어 인간에게 순결한 욕망이 있다면, 자기 자체로 '긍정'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긍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다'이다. 미카엘라는 자신의 영적 기운을 부정한 채 지내던 사람이다. 자신의 영적 기운을 부정해야만 자신이 믿는 교리와 종교의 완결성과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긍정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거짓된 자신의 존재가 인정 받을 때마다, 미카엘라의 자아는 매 순간 더 또렷해진다.

 

부정하고 싶지만 또렷해지는 자신의 자아는 매 순간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과 반항심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극 초반 미카엘라는 자신의 다짐을 뒤흔드는 유니아에게 적대적이지만 언제나 숨어서 타로를 봤던 자신에게 '아는게 많다'며 그녀를 인정해주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가장 밝은 곳으로 끌어내주는 유니아에게 곧 마음을 열게 될 수 밖에 없다. 미비한 의심을 딛고 선다면 믿음은 더욱 굳건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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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내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는 수녀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욕망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신성함을 볼 수 있다. 순결과 긍정이 결국 승리할 수 밖에 없음을 믿고 싶어질 때. 그런 믿음의 힘이 필요할 때 이 영화를 시청하기를 추천한다. 관람등급은 15세. 러닝타임은 1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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