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는 슬프다. 그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사랑해버린 한 사람의 마음은 나날이 피폐해져간다.
시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이해할 줄 아는 그녀를 우연히 마주친 어느날,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는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영혼의 온도가 비슷한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려하지만 그는 그녀의 약혼자인 ‘알테르트’를 마주하고 만다. 사랑이 좌절된 그는 멀리 떠나고 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녀를 잊을 수 없던 그는 다시 발하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비극으로 치닫을 뿐이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불행하게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독일의 문학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뮤지컬로 옮겨오면서는 제목에 ‘젊은’과 ‘슬픔’을 빼버렸다. 전자는 그가 느끼는 감정을 젊은이의 치기어림으로 여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후자는 베르테르가 느끼는 감정을 슬픔이라 확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 그녀에게 이미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알고 사랑이 좌절된 베르테르가 진탕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술집 주인 오르카는 고민이 있다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건 고민이 아니라 고통이죠.” 그 대사처럼 베르테르가 겪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뮤지컬 제작진이 그저 ‘베르테르’라고 칭했듯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는 젊은이의 것만이 아닌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불가해하고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서사가 그토록 오래 사랑받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금기의 사랑이라는 모티프는 고전적이고 강력하다.
실제로 원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는 이 작품으로 24살에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다. 또한 이 작품은 괴테가 본인과 주변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최고법원이 있던 베츨라에서 변호사 일을 한 괴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자에게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요한 케스트너’라는 그의 친구의 약혼인이었고 괴테는 그녀를 짝사랑하다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둘은 결국 결혼했다고 한다.
게다가 친구 ‘빌헬름 예루살렘’이 상관의 부인을 사랑했다가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두 이야기가 그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변모한 것이다. 비극이란 어쩌면 우리 일상 도처에 존재하는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피터 첼섬 감독의 영화 ‘쉘 위 댄스’에는 “누구나 인생의 목격자가 필요하다”는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베르테르가 로떼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잊을 수 없었듯, 사랑은 언제나 불가해하고 비이성적이이다.
그리고 인생 역시 언제나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자꾸만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의 작품을 자꾸만 찾아 보는 것을 그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도 좋을까. 그렇지 않다고 한들 이 작품은 아름답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5년 1월 17일부터 오는 3월 16일까지 공연되는 베르테르는 올해 25주년을 맞는 창작 뮤지컬이다. 서울 구로구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165분 가량의 공연(인터미션 20분 포함)은 관객들에게 안정적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준다.
고전으로 불리는 원작과 그를 기반으로 25주년을 맞는 창작 뮤지컬의 노하우, 그간 흥행을 이끌어온 배우 엄기준, 전미도, 이지혜 라인업에 새로 합류한 배우 양요섭, 김민석, 류인아까지 작품을 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수많은 작품이 막을 올리지만 뮤지컬 베르테르는 호불호 없이 누구나 뮤지컬이 주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만한 작품이다. 서사와 연출, 라인업과 무대장치까지 놓칠 것이 없다. 나는 뮤지컬을 처음 경험해보고 싶다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작품을 추천할 것이다. 뮤지컬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지점들을 배신없이 누려볼 수 있다.
누구나 사랑하는 뮤지컬의 스탠다드, 베르테르 25주년 공연이 관객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