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000036367.jpg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금요일 저녁에 병원 가기를 미뤘다가 밤새 앓았다. 더 아플 수 없단 마음에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더니 감기 판정을 받았다. 연차도 쓰고 항생제에 절여가며 몸살 기운을 물리쳤다. 지독한 감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기침이 남았다. 새해부터 연차 반차를 쓰기는 아까워서 악명이 자자한 회사 앞 병원에서 기침약만 받아 가며 외부 교육도 다녀오는 2025년도 버전 K-직장인으로 거듭났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엄마가 진료 잘 본다며 아빠까지 끌고 간 동네 가정의학과에 다녀왔다. 여기가 감기 2주 차의 일이다.

 

"의사: 목에 염증이 심한데요? 부비동염 증상도 있어요."

 

악명 높은 회사 앞 내과의 의사는 괜찮다며 기침약만 처방해 준 게 사흘 전인데요... 더불어 시간이 지나 알 수 없지만 독감이었거나 독감이 걸릴 것 같은 상태라고 했다. 열과 오한이 오면 독감이라며 다시 약을 여럿 처방해 주었다.

 

연차를 써가며 갔던 병원은 초등학생 때 엄마 손잡고 갔던 곳이다. 난 선생님을 믿었던 만큼 선생님의 진단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의심 없이... 독감이 독감인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증상이 약해져서 명절 연휴를 앞두고 약을 대거 바꿨고 점점 기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새해 액땜으로 치기로 했던 독감이었던 감기는 음력 24년에 두고 진짜 새해인 구정에 바이러스를 툭툭 털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출근을 앞둔 직장인의 명절 후유증일까 컨디션이 훅 떨어지고 전과 다른 기침소리가 찾아왔다. 퇴근하고 눈길을 뚫고 후다닥 병원에 가서 하루 이틀 전부터 다시 기침이 심해졌다고 하니 다시 진료를 보더니 새로운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과거의 바이러스는 음력 24년 12월에 두고, 새로운 바이러스를 25년 1월에 맞이하였다. 신정과 구정을 모두 챙겼더니 액땜도 두 번 하게 되었다.

 

*

 

새해부터 감기에 걸린 사람은 회사에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아무래도 시무식이라고 점심 회식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은 만병의 근원을 회사로 돌려본다. 일찍이 코감기 증상이 있는 분에게는 콧물 티슈를 드리고 새로 오신 분께는 점심에 병원 가서 수액 맞고 와도 된다고 내보냈다. 그리고 나는 레모나와 용각산 쿨을 받았다. 폐렴이 아니냐며 병원 가보라고 등 떠밀어준 직원도 있었고 기침 많이 해서 힘들겠다는 걱정 어린 말도 들었다. 말이 액땜이지 사실 새해부터 온정을 나누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말은 새 포도주를 오래된 가죽 부대에 넣으면 발효 과정에서 가죽 부대가 터질 수 있으니 질긴 새 가죽 부대에 넣으라는 말이란다. 지금까지 맑은 신체(부대)에 맑은 정신(술)이 깃든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이 말을 글 제목으로 올려놨다가 슬쩍 내렸다. 감기가 글 소재가 되어준 덕분에 이런 것도 알게 된다.

 

새해부터 연달아 감기 2회차는 좀 억울하지만 앞으로 아플 때 갈 병원을 알았으니 다행이고, 잘 아낀 연차는 다음 달 3박 여행에 보탠 셈 치면 되겠다. 안 좋은 일은 액땜이라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좋은 것들을 곱씹으며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올해는 이런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그런 액땜이 되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