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크기변환]anastasia-zhenina-O41heLslP58-unsplash.jpg

 

 

우리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로 태어나지만, 그 이후 모든 순간에 걸쳐 반드시 손에 무언가를 쥐고 살아간다. 보드라운 옷소매와 딸랑이, 첫 생일이면 스스로 선택해 쥐는 연필과 실, 돈을 거쳐 온갖 꽃과 인형까지. 작고 큰 그것들은 곧 한 사람의 인생을 엮는 실이 된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마치 볼드모트의 호크룩스같이 내 분신이 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물건만 봐도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생각보다 영원하지 않고 내 손에 들리는 것들은 계속해서 매분 매초 바뀌어간다.

 

 

[크기변환]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_표1.jpg

 

 

마이라 칼만은 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이 그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 면밀하게 탐구하고 기록했다. 그건 곧 우리들의 삶이었고, 일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 삶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을 쥐고 살아가고 있는가.

 

쥔다는 건 상당히 압력이 센 언어다. 단순히 손으로 집어 들어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쥐어야 쥔다는 행위가 된다. 마지막으로 손에 쥔 게 무엇이었나, 펜이나 컵의 손잡이, 그리고 그 잔 안에 담긴 커피까지도 내가 쥔 것이 되나? 그러나 그 어떤 걸 쥐더라도 그것의 질량과는 관계없이 가끔은 내 손에 들어온 무게가 공기보다 가볍게 느껴지기도, 혹은 그 어느 때보다도 버거워 땅에 떨어질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그 물건의 물리적 무게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손바닥 안에 쥐인 것들은 각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같은 책, 같은 그림이지만 사람마다 느낄 것이 전혀 다른 것들이 각각의 손안에서 각각의 무게를 지니며 힘을 실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사진을 손에 쥘 때 충만한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마구잡이로 잡동사니가 든 가방을 들 때 무료함과 귀찮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의 손에 쥐어진 건 그 감정까지다.

 

그렇게 그 행위는 시간을 동반하고, 공간과 관계를 동반하며 또 인생을 직조해 간다. 책 속의 수많은 화가와 작가들처럼, 마이라 칼만의 할머니와 이모들이 그러했듯이.

 

 

[크기변환]KakaoTalk_20250129_225824304.jpg

 

 

그래서 마이라 칼만이 그려낸 모든 장면에서는 기분 좋은 산뜻함과 이유 모를 묵직함이 공존했다. 어제는 곡괭이를 쥐었던 사람이 오늘은 붓을 쥘 수도 있고, 내일은 또 무엇을 쥘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풍선을 쥔 사람이 그 손에 든 모든 풍선을 날려 보내고 작은 화분을 손에 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

 

이를 극대화하는 건 마이라 칼만의 과감하고 비비드한 화풍이다. 마이라 칼만은 모든 인물과 장면을 시원시원하고 명확하게 그려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인물의 속내나 표정을 읽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이 사람은 왜 이걸 쥐고 있을까. 왜 이런 표정일까, 어떤 마음일까. 눈에 보이는 이 장면이 별것 아닐지 몰라도 괜히 의미 부여를 해본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탐독해 본다.

 

그 장면 사이사이 스며든 마이라 칼만의 이야기는 시시콜콜한 매력으로 묘한 흥미를 자아낸다. 굳이 많은 걸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게 있다는 듯이 시선 끝에 툭 와닿는다. 그 짧달막한 글과 함께 그림을 찬찬히 감상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눈에 이미 보이던 것들은 더 마음에 깊게 들어온다.

 

또 하나 칼만의 그림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만의 딸인 룰루가 그의 딸들을 위해 케이크를 든 것처럼 우리는 언제든지 양손에 타인을 위한 것들을 쥘 수 있다. 이타심, 사랑, 우정, 신뢰, 그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느낄 수는 있는 가치들이 우리의 삶을 같이 가꿔왔다. 앞으로도 많이 쥐어가야지, 느끼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아주 다양한 의미를 가진 이 단어 하나가 어떤 단어와 결합하여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수없이 많은 나날과 사람을 거치고 그 마지막의 마지막에 손에 쥐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을 쥐기 위해 나는 무엇을 쥐어가야 할까. 쥐어야 할 건 많지만 쥐고 싶지만 쥐지 못하는 것들도 많을 테다. 그 속에서 삶은 선택의 연속일 테고, 그렇게 뭐든 쥐며 버텨가는 게 인생일 테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것을 쥐며 살아갈까. 스스로 설 수 없을 때는 무엇을 쥐고 중심을 잡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129_225824304_01.jpg

 

 

수십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긴 여정의 끝에서 던지는 칼만의 메세지가 마음에 깊이 박힌다. ‘꼭 버티란’ 그 말이 왜 이리 쉬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지. 그래도 그 옆의 아이처럼 알 수 없는 분노가 생겨날 때면 한 손을 귀여운 것으로 가득 채우고 버티고만 싶다. 그리고 그 분노가 사라지면 아쉬움 없이 그것들을 놓고 싶다.

 

 

우리 주변의 것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다.

 

모든 걸 갖는 건

힘든 일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것을 가졌다가 기진맥진하고

낙담할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이 차오를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누구든 어떤 날에든 그럴 수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면 다음 순간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리고...

 

 

 

컬쳐리스트_김민정.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