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춘대유희. ‘웃음이 만발하는 무대’라는 의미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협률사에서 처음 올린 공연이다. 서양식 극장에 전통 연희물들이 처음 올려진 사례로, 극장이 아닌 야외에서 판이 벌어지던 한국 공연예술의 근대적 기점이라 할 수 있다. 소춘대유희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기생, 재인, 광대 등이 참여했으며 판소리, 잡가, 탈춤, 무동놀이, 땅재주, 쌍줄타기, 기생의 춤 등이 실연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잊힌 과거의 전통연희를, 국립정동극장이 전통 연희극 <광대>를 통해 재현해 냈다. 작품은 ‘2025 소춘대유희’ 공연을 준비하던 예술단원들 앞에 갑자기 100년간 공연장을 지키며 살아온 백년광대와 오방신(극장신)이 나타나며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신명과 유희, 광대 정신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리허설 도중 발생한 이상한 사태 속 예술감독 이순백과 무용수 모두리만이 무대 위에 남아있다가 이상한 기류에 휘말리게 된다. 이들은 100년 전 소춘대유희를 했던 백년 광대들과 만나게 되고, 오방신은 이순백과 모두리, 그리고 백년 광대들을 인도한다. 그중 그들의 지도인 것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아이와 이순백, 모두리는 마주하게 된다. 이순백은 아이에게 판소리를 지도받고, 모두리는 무용수들과 춤 대결을 벌이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극은 ‘2025 소춘대유희’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만큼, 춘앵무를 비롯하여 무당춤, 검무, 한량무 등 다양한 한국 무용이 등장하고, 사물놀이패 등이 전개되며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본 작품은 이야기의 전개, 대사나 특정 노래가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희가 단편적인 형태로 진행되며 총체적으로 합쳐지는 구조이다. 더불어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국에 내재한 전통 신앙을 차용했다. 집안을 평온하게 보살펴 주는 가택신을, 극장을 지키며 연희자들을 수호하는 오방신으로 각색한다. ‘100년 전 광대와 현재 광대들의 한판 놀음’. 이것이 바로 이 공연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이다. ‘광대를 올려야 광대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거와 현재의 예인이 함께 부르는 ‘광대가’를 통해 서양과 다른 한국의 ‘광대’는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광대는 어떤 의미였고, 광대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광대>의 하이라이트는 아이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다. 백년 광대와 이순백, 모두리를 연결하며, 이들을 이끌었던 아이는 소리꾼 이동백 선생이었다. 이동백 선생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되며, 그가 불렀던 적벽가 중 새타령의 녹음본이 흘러나온다. 이동백은 조선 말기 판소리 5명창 중 한 사람으로 1900년 고종 황제 앞에서 판소리를 불러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특히 <새타령>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순백과 모두리는 자신들의 선배, 과거 예인에 대한 예를 취하며, 지금까지 전통 연희를 보존·계승해 온 수많은 광대의 사진(역사적 사료)이 나온다. 관객은 다양한 전통연희가 섞여 하나의 극을 이룬 <광대>를 통해서 우리의 전통 연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혹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의 전통 연희에 낯선 사람들에게 상당히 좋은 입문 공연이다. 극의 전개뿐 아니라 극장에 배치된 자막이 이를 더욱 강조한다. 국립정동극장에서는 무대 양쪽에 스크린을 설치해 판소리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사설을 띄웠는데, 이때 사설이 현대인에게 낯설지 않은 옛날 언어와 한자어로 구성된 만큼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이에 극장은 그들에 대한 배려로, 현재 한국어로 풀이한 해석과 영어 해석을 병기하여 관객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사전에 배제했다.
최근 드라마 <정년이>의 인기로 국악과 전통 공연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다. <광대>도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은 기승전결 전개 구조를 기반으로 한 극에 익숙하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여러 연희가 나열되는 구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즐거움에서 멈추지 않고, 즐거움을 통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