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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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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이 개봉했다.

 

‘이제껏 본 적 없었던 독립운동 영화’, ‘새로운 느낌의 감동’과 같은 호평이 잇따르는 가운데, 영화는 관객수 457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앞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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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2024), 연출: 우민호, 출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이동욱 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이 대한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처단하였다.’

 

영화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달려간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즉 안중근의 의거와 만주-연해주 일대 독립군들의 서사를 영웅적 일대기의 문법 아래 평면적으로 가두지 않는다.

 

<하얼빈> 속 안중근(현빈), 최재형(유재명), 우덕순(박정민)은 실존 인물이다.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이창섭(이동욱)은 각각 당대의 실존 인물들을 모티프로 있을 법한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이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역동적인 전투 장면을 덜어내고, 이러한 인물들 각자의/모두의 처절한 고군분투, 이들 간 대화와 대립을 매우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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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의 전투 장면에서부터 감상자들은 <하얼빈>이 독립운동을 다룬 기존 상업 영화들의 클리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실제로는 한겨울이 아닌 7월에 이루어졌던 신아산전투(1908)는 연해주 의병투쟁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승첩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화는 이 전투를 단칼에 적장을 베고 쏘는 멋진 액션 시퀀스가 아닌 진창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던 백병전으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핏발 선 눈과 거친 숨소리로 연출한다. 책 속에 한 줄로 기록된 승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투쟁의 편린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해당 전투 장면은 끝내 이룬 승리이지만, 그 길에는 수많은 희생과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점이 마치 안중근 의사가 의거에 이르는 과정의 축소판과 같다. 안중근은 자신의 신념에 따른 선택으로 수많은 동료들을 잃어 괴로워했음에도, 그들에게 목숨을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아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홀로 걸어 돌아온다.

 

새나간 정보로 모든 계획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그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면서도 먼저 스러져간 동료들을 위해 다시 일어선다. 누구에게나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곧은 신념에 따라 변절한 동료에게도 용기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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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얼빈>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고결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립군이라는 공동의 이름, ‘늙은 늑대를 처단한다’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모였지만, 이들은 각자 다른 신념과 동기를 가졌기에 때로 치열하게 대립한다.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인물도 있는가 하면, 무모할 정도로 깊은 믿음을 지닌 인물도 있다. 그 뿐인가. 그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인물도, 두려움을 느끼고 그저 살고자 하는 인물도 있다.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함께 행동하였기 때문에, 가장 보통의 인간이 가장 고결한 면모를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이러한 지점을 이제까지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중요하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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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만강 너머 연해주와 만주의 대자연과 이국적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배경과 함께 담담하고 유려하게 담아낸다. 풀 샷과 롱 샷의 고정된 화면 속 롱테이크는 대자연 앞에 한낱 미물인 인간의 유약함을 강조한다.

 

유약한 인간이 내면의 곧은 신념에서 오는 흔들림 없는 행동을 행할 때, 감상자들은 고결함을 느끼게 된다. ‘감정 과잉’ 상태로 몰고가는 영웅적 서사, 화려한 액션을 덜어낸 정적인 화면 속에서 우리는 그저 한 인간일 뿐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멀리서 관망하게 되고, 이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순수하고 차가운 감동을 체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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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단 한 번의 의거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첫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열 번을 해야 하며 백 번 꺾여도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 안중근, 동양평화론

  

얼어붙은 시대를 신념으로 밝혀왔던 그의 굳은 심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해당 구절에 ‘빛을 밝혀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덧붙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하얼빈>은 차가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미학적 연출과 함께 계엄의 시대에 던지는 절묘한 메세지가 뛰어났다고 평가받는다.

 

얼어붙은 이 시대의 신념으로 밝힌 촛불들의 고결함을 믿는 마음이 모인 흥행이 계속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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