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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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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내 플레이리스트의 절반 이상을 점령한 밴드가 있다.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의 음악과 가사를 사랑한다. 보통의 하루를 긍정하고,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고, 하찮은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랑의 가능성을 포착하려는 그들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든다고 느꼈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노래가 괜찮아서 거의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이 바뀌곤 한다. 봄에는 ‘I LOVE…’를 반복 재생하며 불규칙하고 예기치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들을 떠올렸고, 여름에는 ‘이단적인 스타’의 가사를 곱씹으며 나만의 고유한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또 ‘Get back to 人生’를 즐겨 듣던 가을에는 작은 것에도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해가 끝나가던 겨울, ‘50%’라는 곡을 만났다. 50%를 듣기 시작한 지는 채 두 달이 다 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 노래가 줄곧 나를 일으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 항상 100%의 힘으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가사에서, 나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50% 혹은 저마다의 삶에 알맞은 %를 기준점으로 정해둔 채, 일상에 쏟는 에너지를 조절하면서, 적당히 숨을 고르면서, 몸과 마음을 보살피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100이 아니라 150의 힘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 번뿐인 삶이니까 대단한 걸 이루고 떠나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옅은 밑그림을 그렸다. 죽기 전에, 아니 가능하면 빨리, 원하는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많은 이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 삶이라면 분명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매일 성실하게 살다 보면, 대단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다 보면, 좋아하는 것들도 잠시 제쳐두고 몰두하다 보면, 마땅히 꿈을 이룰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건, 목표로 가는 과정과 속도에 대한 의문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내가 왜 매일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지. 내가 왜 미래의 성취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지. 내가 왜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노력해야 하지. 내가 왜 두통과, 갑갑함과, 스트레스를 억지로 견뎌가면서까지 애써야 하지. 괴로웠다. 천천히, 적당히, 요령 있게 살면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일단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나는 딱히 의미가 없는 일이라도 즐거워 보이면 한 번은 해봐야 하고, 재미만 있으면 마냥 좋다고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느긋하고 진득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고, 오늘 본 영화나 공연에 대해 생각하며 종일 웃기와 울기만 반복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며칠 동안 온 힘 다해 살았다면 다른 며칠은 혼자 집에 틀어박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어쩌면 조금 한심한 사람이고, 속도가 느려서 답답하더라도 무엇이든 신중하게 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호기롭게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전력으로 내달려서 이른 나이에 꿈을 이루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런 삶이 내 길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만남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면서, 굳이 100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의 내가 그저 100의 삶을 살 능력이 없는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저 100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버거운 나약한 사람인 것뿐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향해 빠르게 내달리기보다는 방향성만 정해 놓은 채,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천천히 꿈을 쌓아 올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되는대로 또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잠시 열정을 불태웠다가도 다시 사그라드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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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이런 고민을 지속해 온 입장에서 50%라는 곡을 사랑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가사를 듣는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 내 마음을 그대로 읊는 것만 같은 노래를 만난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이 곡을 만난 건 운명이라고 느끼고 있다.

 

가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후회가 없도록 전력을 다하는 마음은 좋다. 그러나 기력이 소진되고 스트레스가 쌓여도 그저 참고 있다면, 한숨 돌려보는 건 어떨까. 물론 살아가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80%를 상한선으로 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남들과 경쟁해야 할 의무는 없고, 기록을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 내려놓고 살아야만 얻을 수 있는 작거나 큰 행복들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네가 너무 많은 걸 떠안고 있다면, 지쳐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쉬어 가도 아무 문제 없다. ‘50%를 정위치로’ 살아가자. 그렇게 숨을 고르면서, 일상과 휴식을 즐기면서, 에너지를 차근차근 축적해 가면서, 100%의 힘을 발산해야 할 때만 너의 모든 걸 쏟아내 봐.-

 

그래서 나에게 행복한 삶이란 완급과 강도를 조절해 가며 사는 삶이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세기로,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삶. 이 노래를 듣고 현재의 내가 내린 답이다. 대부분의 순간을 50%로 살다가 온 힘을 쏟아내야 할 때, 바로 이때다 싶을 때, 100%의 에너지를 분출하려 한다.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에 대한 큰 힌트를 건네준 50%라는 곡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그러면 내일도 어김없이 50% 정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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