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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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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출산율이 9년 만에 반등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SNS를 통해서 아이들을 볼 때는 랜선 이모, 삼촌들로서 귀여워하며 많은 관심을 표현하지만 정작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무관심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선으로 어린이를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미술관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관내 초중고 학생들과 함께 <쉬운 전시말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을 쉽게 풀어낸 설명글을 함께 전시했다는 점이었다. 전시를 모두 관람한 후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미술관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만 가르쳤지, 정작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모두 한때는 어린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의 눈높이에서만 아이들을 판단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을 계기로 일상 속 어른의 시선으로 지내며 너무 당연하게 지나쳤던 어린이들의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책 편집자로 10년간 일하고, 현재는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 중인 저자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모습은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아이들의 생각을 만나볼 수도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에요


 

"어른은 빨리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선생님이 어른이 되면 신발 끈 묶는 일도 쉬워질 것이라고 하자 한 어린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은 '빨리빨리'의 문화를 가진 나라다. 물론 그 문화로 인해서 단기간에 국가가 성장할 수 있었지만 때로는 그 문화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줄을 서서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 내 차례에서 시간이 오래 흐르면 왠지 모르게 뒷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어른들도 눈치가 보이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더 조급할까. 어린이도 조금 더 기다려주면 해낼 수 있는데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아이들도 빨리빨리 문화에 편승시킨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는 느긋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고, 기다려주는 어른을 경험한 아이들은 또다시 다른 어린이들을 기다려주는 어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사회가 지금보다는 따뜻해지지 않을까.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


 

책에서는 '은규'라는 아이가 선생님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나온다. 은규는 왜 학교에서는 통일에 대한 좋은 점만 가르쳐 주고,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그때는 자신이 어른이 되어있을 텐데 좋은 점만 알고 있다가 대비를 못하면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데 왜 어린이한테는 의견을 안 물어보냐는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아직 어린이가 무슨 저런 생각을 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척도에 맞춰진 세상에 살아가는 약자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운전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손을 들고, 대중교통의 좌석이 높아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약자들의 목소리는 알아채기 쉽지 않다. 지금까지 중요한 결정들을 우리의 관점에서만 판단하고 결정 내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린이를 만나보고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읽을수록 잊고 있었던 우리 주변의 약자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책에는 이러한 문장이 나온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p. 219

 

 

우리 모두 언제 갑자기 약자가 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린이의 의견부터 잊고 있던 약자들의 의견까지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p. 202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의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어린이에 대한 문제를 부모, 교사 혹은 특정 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성장하며 겪는 시기인 만큼 어린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다음 세대에도 계속된다. 책을 읽고 나니 어린이를 너무 작은 존재로만 여겼던, 나와는 상관없다고 선 그었던 지난 태도들이 부끄러워졌다.

 

우리 주변의 어린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건 아닐지 돌아보고,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주변의 약자들에게 관심 가지고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잊고 지냈던 어린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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