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시는 금쪽이 상담소, 다들 잘 아시죠? 영상을 보면 정말로 선천적으로 아이가 나쁜 경우는 많이 없었고, 대다수는 부모의 문제가 큰 편입니다. 부모는 절대 나쁜 마음으로 대한 게 아닌데도 그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 어디 하나 100% 완벽한 게 없다고, 부모님이 계시지 않지만 정말 올곧고 바르게 자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 멀쩡하신 부모님 밑인데도 막장으로 자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제 자신을 생각해 봐도 저는 부모님 두 분 다 계시면서 밖에서는 잘 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그다지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전 부모의 존재 유무로 인해 그 사람의 행동이 변화된다기보다는(완전히 영향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 사람은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막장 부모 밑에서도 잘 자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고요. 바로 네이버웹툰의 <다육이는 잘 자란다>의 주인공 ‘다육이’처럼요.
STORY
평범한 모범생 '다육이'는 선도부 활동 중, 복장 불량인 선배를 적었단 이유로 일진 무리의 리더 '이선경'과 엮이게 된다.
'이선경'의 협박으로 일탈한 행동에 참여하게 되며 계속 엮이게 되는 두 사람에게 기묘한 관계가 생기게 되는데...
본작의 주인공 다육이는 뒤로 질끈 묶은 머리와 큰 안경을 끼고 반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입니다. 학생부를 위해 선도부 활동도 겸하고 있었는데, 복장 불량의 3학년 양아치 선배 이름을 적었다가 그대로 찍히게 됩니다.
이에 같은 반의 일진 무리의 리더인 이선경이 이를 들먹이며, 해당 사건에 대해서 커버를 쳐줄 테니 자신의 담배를 숨겨달라 부탁해요. 선도부 위원이었던 다육이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선경의 담배를 숨겨줍니다. 그 모습이 꽤 맘에 들었던 선경은 다육이를 자신의 일진 무리에 끼워줍니다.
집과 학교, 공부 밖에 몰랐던 다육이는 선경을 만나 화장도 해보고, 일진 무리에게 껴서 같이 노래방도 가고 게임방도 가는 등 친구들과 노는 것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경이 체육 시간에 달리면서 담배를 흘리게 되고, 같이 주워주던 다육이는 결국 선생님에게 들키고 맙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자 선경은 이 담배는 다육이 거라고 거짓 고발을 해버려요.
선경은 다육이에게 “친구 사이에”라는 말로 독박을 써달라 회유하지만, 다육이는 딱 잘라 선을 그어버립니다. 결국 담배 이야기가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크게 혼나고 용돈이 끊긴 선경은 그 옆을 지나가던 다육이에게 시비를 겁니다. 그런데 다육이를 보자마자 심하게 당황해요. 얼굴이 말도 못 할 정도로 심한 몰골을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다육이는,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 밑에서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얼마나 그 정도가 심했냐면 술담배는 일절 하지 않았는데, 공부하지 않고 일진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집 비밀번호를 바꿔버리고, 심지어 휴대폰 요금까지 끊어버립니다. 물론 당연히 돈 한 푼 쥐어주지 않았고요. 정말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게 된 다육이는 공중 화장실이나 문이 열린 교회에서 노숙하고, 이전에 같이 놀았던 일진에게서 소개받은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뛰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게 돼요.
그런데 하필 전단지를 돌린 가게가 단란주점이었다 보니, 다육이가 성매매 또는 알선을 하는 걸로 소문이 와전되어버리고, 담임은 다육이에게 퇴학당하고 싶지 않으면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합니다. 이에 하지도 않은 일을 순응하고 싶지 않았던 다육이는 직접 자퇴를 선언하고, 머리를 분홍색-사실은 탈색하지 않아서 갈색-으로 염색하고 ‘밖’으로 나서게 됩니다.
COMMENT
솔직히, 이 웹툰은 마냥 웃으면서 볼 만하진 않아요. 보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는(정신 나갈 것 같은) 베스트 댓글들이 가장 많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작품 내에 나름 유머 코드도 많이 들어가 있고, 주인공 다육이 주위로 따듯한 친구들도 있어 설정에 비한 것보다는 조금 덜 무겁고, 덜 어둡기는 해요. 그래도 웹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충분히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하다 보니, 소름이 돋긴 합니다.
다육이는 정말 누가 봐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입니다. 오죽하면 내쫓겼던 집에 다시 돌아왔더니, 모친이 사망 보험을 들어놨었거든요.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말을 따라야만 해”라는, 정말 요즘 시대에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다육이를 붙들고, 때리고, 가스라이팅을 일삼았고, 다육이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내에서 막장 모친에게서 자란 다육이는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회에서 쓰이는 은어를 잘 모르기도 하고(’밤일’을 정말로 야간 근무로만 생각하는 등), 돌려서 비꼬는 말임에도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 보니 전혀 타격이 없거든요. 또,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던 선경이 청소년 보호 쉼터라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니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합니다. 어딘가 약간 이상해 보이죠? 가정 내에서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기 위한 자기 방어로 인한 모습이겠죠.
하지만 반어적이면서도 정확한 제목답게, 다육이는 앞서 INTRO에서 제가 얘기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중 [막장 부모 밑에서도 잘 자란 아이]에 속해요. 보통 일진 무리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게, 그들이 행하는 안 좋은 영향들이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끼칠 수 있어서 잖아요? 하지만 다육이는 ‘스스로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일진 친구들에게 휩쓸려 교회 헌금을 훔치는 등 일부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도덕적이나 윤리적 관념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옳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요. 헌금도 다시 돌려놓고, 노숙자의 돈을 빼앗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인가 하면서 고뇌하기도 하고요.
다육이는 상황에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 아닐까 해요. 그럼에도 다육이는, 인생의 모든 잘못이 자신이라고 탓하는 엄마에게서 더 이상 순응하지 않고 결국 독립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또, 집에서 눈칫밥을 워낙 많이 먹었다 보니 아르바이트 일도 꽤나 순조롭게 잘 적응하고요. 참 잘 자란 것 같지 않으세요?
이렇게 너무나도 심각한 악조건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다육이를 보면, 우리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다육이는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그럼에도 일반 사람들도 살기 힘들다는 고시원에 들어가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하고, 악명 높은 물류 아르바이트까지 열심히 해내요. ‘수의사’라는 목표를 위해서 말이죠. 꿈이 있다는 게 사람에게 참 긍정적인 영향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주는구나 싶어요.
또, 다육이를 통해 극한의 상황이더라도 인간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해요. 다육이가 자신의 머리가 갈색임에도 분홍색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나를 위한 자기 암시라도 걸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자고 말예요.
‘다육이’하면 누구나 식물 다육이를 떠올릴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다육이에 대해 찾아보니, 다육식물은 어떠한 특정 종이 아닌, 잎이나 줄기, 뿌리에 물을 저장하는 구조를 지닌 식물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요. 그래서 둥글둥글한 외형이 많은 편인가 봅니다. 또, 대다수의 종이 햇빛을 꽤 오래 보게 해주어야 하지만, 이 기후만 잘 맞으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잘 자란다고 해요. 대신 성장이 좀 느린 편이고요.
왠지 척박한 세상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주인공 다육이가 생각나는 게, 작가님께서 이 다육 식물을 기르시고 계셔서 이 특징들을 기반으로 웹툰을 만드신 게 아닐까 하고 합리적 의심을 살짝 해봅니다. 다육이는 어디까지 잘 자라날까요?
OUTRO
이 웹툰은 연재 중인 작품이라,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정말 궁금한 작품이에요. 또, 정확히 무엇을 얘기하고 싶으신 건지도 결말까지는 가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독자들이 작품을 보며 종종 하는 말들이 있죠, “작가님 부럽다. 다음 이야기 알고 있어서.” 저도 작가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다육이가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싶어요. 작가님이 염세주의자가 아니시길 살짝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