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데뷔 20주년 축하 공연이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TV 유튜브>에 공개되었다. 20년 동안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온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오랜 기간 그의 연주와 함께해왔을 것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 학교에서 그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실내악이나 비올라 곡의 참조를 위해, 혹은 그저 따뜻한 비올라 소리를 듣고 싶어 그의 연주를 찾곤 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음악가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솔리스트, 타카치 콰르텟, 앙상블 디토 등 여러 형태로 활동해 왔다. 그는 예술의전당 같은 대형 무대에서부터, 코로나 시기에는 병원까지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또한 '인간극장'과 '안녕?! 오케스트라'와 같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고, '하와이 연가'와 '미스터 선샤인' 같은 작품의 OST 작업에도 참여해 왔다.
20년을 연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가 꾸준히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행보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리처드 용재 오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비결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현재'를 중시했다. 어제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를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매 순간에 충실해지려 했다.
또한, 그는 '반복’에서 '새로움'을 찾고자 했다. 아티스트에게 반복은 일상이다. 무대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할 때도 있을뿐더러, 하나의 곡을 몇 시간, 몇 주, 아니 몇 달간 연습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지만, 리처드 용재 오닐은 반복하는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어제의 연주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음악을 계속 들여다보더라도 매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연습과 공부는 '배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매 순간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주는 음악을 온몸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이번 축하 공연은 조준호의 깔끔한 진행하에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피아니스트 문재원이 음악에 대한 자기 생각을 차분히 풀어내며 흘러갔다. 물론, 중간중간 아티스트의 연주가 이어졌다. 공연이 개최되었던 크레디아 스튜디오는 연주자 시야에서는 관객들의 얼굴이 보이고, 관객은 연주자의 악보까지 보일 정도로 작은 장소였다. 큰 홀에서 연주하려면, 악기의 소리를 홀 전체에 퍼지게 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지만, 이러한 스튜디오에서는 마치 연습실에서 연습하듯 편안하게 자신의 소리를 느껴가며 연주할 수 있다. 공연 프로그램 중 슈베르트의 곡들은 특히 장소랑 걸맞은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소규모 음악회 '슈베르티아데’를 종종 열어 애정하는 동료 음악가와 음악을 나누고자 했던 슈베르트처럼,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장소에서, 편안한 방법으로 내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이 연주자에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공연이 절정으로 향하고, 리처드 용재 오닐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공유했다. 그의 주옥같은 메시지를 하기에 공유해보고자 한다.
Music is so special and so important. There's no wrong way to hear it and there’s no underlying message. It’s just pure communication.
음악은 매우 특별하고 중요하다. 음악을 듣는 데 있어 틀린 방법은 없으며, 숨겨진 의미도 없다. 음악은 그저 순수한 소통이다.
The music deserves to be in a tower, but truly music lives in everyone of you and me. It’s a living art and we need to do our best to keep it living. We can’t lock it away in judgements.
음악은 타워 안에 보존할 가치가 있지만, 사실 음악은 우리 모두 안에 있다. 음악은 살아있는 예술이며, 계속 살아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판단 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 리처드 용재 오닐
앞으로 클래식 음악이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은사님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공통으로 입을 모아 했던 이야기는 클래식이 단지 엘리트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주자이자, 좋은 연주와 작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꾼으로서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이 많지만, 때로는 수많은 설명보다도 그 작품과 연주를 직접 경험하게 이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듯하다. 존재만으로도 무언가 울림을 가져다주니까.
이 축하 공연의 마지막 곡은 ‘섬집아기’였다.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의 연주는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많은 혼란 속에서도, 스튜디오의 관객과 유튜브 청취자들을 포근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오늘만큼은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직접 연주를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첨부한 프로그램 노트가 당신의 삶 어느 순간에 다가가 깊은 여운으로 스며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