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부터 지하철 요금이 1400원에서 150원이나 오른 1550원으로 확정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150원쯤이야"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나같은 학생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매달 경기패스를 끊어놓은 덕분에 교통비의 30%는 감면된 금액이 내 통장에서 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월에 12만원은 학생인 나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월 6만 5천 원 (청년은 5만 5천 원)에 한 달 교통비를 충당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가 있지만, 경기도민인 나로서는 경기패스도 감지덕지이다.
경기도민으로 살다 보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는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1시간 밖에 안걸린다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약속 장소까지 1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대개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기도민에 1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다 보면 강남, 신촌, 이태원 등 서울 곳곳이 거론된다. 하지만 경기도 남부에 사는 나는 서울 북쪽으로 가는 일이 쉽지 않다. 여의도나 홍대는 특히 피하고 싶다.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고 싶을 때 친구들은 여의도나 뚝섬을 선호하지만, 나는 강력히 반포 한강공원을 추천한다. 반포 한강공원도 집에서 왕복 2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나마 감수할 만하다. 그래서 나는 대체로 강남이나 중구, 종로구 같은 중심지를 선호한다. 강남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어 자주 가게 되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다니다 보니 이제는 강남 지리를 거의 다 외울 정도다.
“서울에만 놀거리가 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얼마 전 수원 행궁동에 간 적이 있는데, 아기자기한 카페와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내 친구들에게 수원은 ‘생각조차 없는’ 장소다. 서울 친구들에게 서울 외에, 내가 사는 동네나, 경기도의 좋은 곳들을 계속 이야기해주곤 하지만, 슬프게도 들을 생각 조차 없어보인다. 그냥 내가 서울로 가는 것이 이 친구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빠를 듯하다.
출퇴근길(등하교길)은 전쟁 그 자체
출근 시간대의 광역버스는 전쟁터이다.
피곤한 눈, 화장기 없는 얼굴(버스에서 화장을 하려는 사람들), 심지어 젖은 머리로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까지—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한두 시간씩 걸리는 출근길에 집에서 화장을 다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나오는 건 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2년부터 광역버스 입석이 금지된 이후로 41~45석 남짓한 좌석을 차지하려면, 아침 일찍 줄을 서야 한다. 내가 타는 정류장은 이용객이 많은 편이라, 적어도 10~15분은 일찍 나와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코너를 돌 때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게 된다. 가끔은 "줄 서는 시스템 대신 대기표처럼 전날 티켓팅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기도 한다.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더 치열하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아직 졸린 눈으로 멍한 상태지만, 퇴근길의 사람들은 집에 가겠다는 의지로 눈빛이 반짝인다. 경기도의 버스 정류장에는 줄을 정리하기 위한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서울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풍경일 것이다. 가끔 팻말이 있음에도 엉뚱한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팻말 앞에 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고 만다.
막차 시간
술자리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아 맞다. 막차!"
막차 시간을 확인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자주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나에겐 그다지 즐겁고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은 막차가 끊겨도 '택시'라는 좋은 선택지가 있지만 나같은 경기도민에게 택시는 매우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밤에 택시를 타면 할증 요금까지 붙어 기본 5~6만원은 나올텐데, 그런 돈을 쓸 여유는 없다. 서울에 살던 시절에는 하루에 세 번씩 택시를 타기도 했지만, 경기도로 이사 온 이후에는 웃프게도 6개월에 한 번 탈까 말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한다.
서울에 살 때는 아파트 주민들과 마주쳐도 눈을 피하기 바빴는데,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따뜻한 눈 인사와 스몰토크가 오가곤 한다. 물론 내가 살았던 서울 동네만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 동네는 중앙공원과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이 마음에 든다. ‘마을’ 단위로 단지가 나뉘어 있어서, 가끔은 마치 ‘동물의 숲’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경기도민으로서 통학 생활을 한 지도 벌써 3년.
힘들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성장했다고 느낀다. 인내심이 생겼고, 아침형 인간이 되었으며, 통학 시간을 활용해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한다.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웬만하면 학교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 오려는 끈기와 열정도 생겼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이번 학기에 기숙사에 들어갈지 고민 중인 나 자신에게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짚어보고, 경기도민으로서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서다.
비록 서울에 사는 친구들보다 이동 거리와 시간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나는 경기도민으로서의 삶도 꽤 괜찮다고 느낀다. 적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어느 곳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이번 학기에 기숙사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내가 경기도민으로서 보낸 이 시간들은 앞으로도 내 삶의 큰 밑바탕이 될 거라는 점이다.
‘경기도민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만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라, 감사함을 배우고 내 삶을 더 효율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