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부끄러움을 마주할 수 있는 힘 [영화]

영화 <하얼빈>을 관람하고
글 입력 2025.01.2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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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은 관객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모두가 독립적인 개체로서 존재한다. 원래 영화관이 그렇다. 처음 만나는 옆자리 관객과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함께 있어야 하며 팔걸이도 공유하지만 그와는 입장할 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철저한 타인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완벽한 암흑이 시작되면 가장 원초적인 소통 수단이라는 표정마저도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때부터는 오롯이 ‘영화를 관람하는 나’만이 존재한다. 커다란 스크린 속 인물과 나의 온전한 감정에만 몰두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관람하면서 나의 감정에만 몰두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하얼빈>을 관람하며 나는 처음으로 나의 감정을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마주하게 된 나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무언가가 내 안에 툭, 하고 던져진 기분이었다. 나는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부끄러움을 몰아내기 위해 애썼다.

 

일본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가 우리나라 독립군에게 잡힌 시퀀스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경험했다. 단순히 분노라고 명시하기에는 그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감정일 뿐이었으며, 그 당시 나의 복합적인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사형이 되기 직전, 본인은 대일본제국의 명을 따랐을 뿐이며 자신은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대사에서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떠올랐고 순간 그런 나 자신이 미워졌다. 철저히 계산된 컷들 속 장치적인 역할로서 기능하는 그 대사에서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과 마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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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관람하며 한 번이라도 숨이 막힌 듯한 경험을 한 적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작품 속 무슨 장면이냐 묻고 싶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해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하얼빈> 속 김상현의 반전을 보여주는 플래시백 시퀀스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색감이 소멸된 흑백 화면은 마치 관객의 몰입을 경계하는 듯하다.

 

영화는 관객이 섣부른 연민을 느끼기 직전에 장면을 전환하며 감정이 생길 만한 여유를 없애버린다. 모리 다쓰오가 잘라준 고깃덩어리를 한참을 내려다보던 김상현은 한치의 미동도 없다. 그러다 갑자기 고깃덩어리를 손으로 집은 채 야만스럽게 씹어먹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짐승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스테이크를 잘라 먹는 모리 다쓰오와 그가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를 손으로 쥔 채 입안에 욱여넣는 김상현의 모습은 흑백 프레임 안에서 철저하게 대조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김상현의 목이 철사에 묶인 채 고문당하는 장면보다 그들의 스테이크 식사 장면이 보기 더 고통스러웠다.

 

이외에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안중근의 모습을 직부감으로 담은 쇼트도 인상적이었다.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낯선 구도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연출한 점, 특히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안중근의 표정을 극적으로 담아내지 않고 모두를 동등하게 매우 작은 모습으로 촬영한 것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신파를 제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어스름한 저녁,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 영화관에 방문한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과 같다. <하얼빈>을 관람하며 본질은 영화 속 인물보다도 그 영화를 관람하는 ‘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마지막 장면 속 안중근 의사의 내레이션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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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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