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LUST
오래전 나는 폭탄을 심었다. 물컹하고 서러운 그것을
나무 상자에 담아 깊이 묻었다.
태양의 긴 인계철선을 달아 부비트랩을 만들었다.
물컹하고 서러운 그것을
쑥부쟁이 개망초 치듯
바람이 건드리고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터져 나가는 푸른 파편들,
공중에 박히는 검은 가지들
상처들, 연기로 찢기는 새벽과 한 발씩 꺾이는 물의 무릎과 사방으로 흩어진
저
부재를, 상한 상춧잎에 매달린 달팽이와 고슴도치의 슬픔으로 뿌리며
여전히 쓰러지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 목숨을,
보여주려고
내가 죽인 가을이 하얀 겨울에 덮여 있다.
들추지 마, 염도 안 한 고인을 보면 영원히 꿈속을 걷게 된다.
고인과 얼굴이 뒤바뀐 채 꿈 밖에 도착한다.
그러면 알게 되지, 꿈속의 얼굴이 거울 속에 있어,
매일 자신의 죽은 얼굴을 달고 아침이 시작된다는 것.
오래전 나는 폭탄을 품었다. 물컹하고 서러운 이것을
어디에 터뜨려야 할지 몰라
걸었는데, 누구도 나를 피하지 않았다. 눈 속에 타는 심지를,
화약으로 꽉 찬 머리를, 순식간 사방으로 뿜어질 피가
사지를 다 돌고 마침내 맺혀 있는 내 뺨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텔레비전은 전쟁의 뉴스 다음에
사랑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사이에 화장품 광고를.
가가호호
한꺼번에 등장하는 얼굴과 한꺼번에 시작하는 사랑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사람들 다음에
가가호호
살았는데, 공기처럼 허공처럼 투명한 이 유리창은 뭘까,
나를 가둔 딱딱한 공기 속에서
나를 잠근 매끈한 허공 속에서
생각한다, 어쩌면 내 인생은 오래전 폭발하여 수만 년
먹구름 아래 곤죽의 눈이 쌓이고, 어느 날 도마뱀 맑은 알로
가신 화석의 잠 속에서 잠시 꿈으로만 살아가는 건 아닐까.
사방으로 터져 나간 생각의 조각들
거기 찔린 물컹하고 서러운 이야기가 끝없이 폭발하는
아침과 저녁을 마음으로 심어놓아서
그마저
터지며, 사방으로 흩어진 내 생각이 꼭 한 사람씩
시체가 되어 내 얼굴로 깨어난다.
- 신용목, 미래중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