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울살이 3년, 다시 경기도민으로 돌아가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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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다시 경기도민이 된 사람의 이야기.
최근 <나의 해방일지>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산포’라는 가상의 수도권 지역에서 서울까지 힘들게 출퇴근하는 3남매의 고충이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그려져 본투비 경기도인인 나는 너무나도 공감하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참 재밌다. 드라마의 결말부에 결국 주인공들은 서울로 진입한다. 그런데 나는 서울에서 반대로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왔다. 역시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일까. 나의 고생길은 지금부터 시작인 걸까. 가령, 서울 사는 친구들과 약속장소를 잡을 때 바짝 긴장하게 되지 않을 수 없고,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이 버스로 40분은 달려야 나오는 현실을 다시 마주하기에는 조금은 걱정도 된다.
아직 이삿짐을 4분의 1정도 서울집에 남겨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3년간 서울살이를 하며 느꼈던,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털어보고자 한다. 간단하게, 서울에 살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으로 나눠서.
서울살이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심에 ‘직장’이 있음은 분명하다. 번듯한 회사를 찾아서, 자신의 사업을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서 서울에 터를 잡는다.
나도 그랬다. 첫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며 회사 근처에 위치한 지하철역에서 바로 두 정거장 떨어진 잠실동 인근에 세를 구해 살았다. 덕분에 출근지옥은 남의 얘기. 집에서 회사까지 도어 투 도어 (Door to door)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주고 긴장하며 일했던 인턴 기간동안, 적어도 출퇴근만은 부담 없었기에 피로를 덜 수 있었다.
평일에는 출퇴근 수혜를 입었다면 주말에는 문화생활 수혜가 있었다. 지하철로 2-30분 내외의 거리에 그렇게 핫하다는 카페, 음식점, 전시, 팝업스토어가 즐비했다. 하다못해 내가 살던 잠실동에서는 산책하듯 20분 걸어만 가면 롯데월드가 훤히 보이는 석촌호수가 있었다. 경기도에 살던 예전 같으면 하루 전체를 할애해 놀러 왔을 곳이지만, 편한 차림으로 저녁 산책하러 걸어갈 때 서울 사는 것이 가장 실감 나곤 했다.
여느 때보다 ‘고민없이’ 그런 장소들을 찾아가고, 즐거운 기억을 쌓고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했다. 서울에 살았기에 쉽게 활동할 수 있었던 노래 소모임, 작곡, 악기 학원의 추억도 지난 3년간 카메라 앨범에 저장한 즐거운 사진과 기억들의 8할을 차지한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또 언제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그렇게 나도 모르던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꺼낼 수 있었다.
서울살이를 하며 내가 잊었던 것들 - 끼니, 계절, 가족
서울에 살면서는 끼니다운 끼니를 먹기 힘들었다. 좁디좁은 1인용 주방과 냉장고가 있는 환경에서 요리를 한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밥은 주로 즉석밥으로 대체했는데,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이 곧잘 질려 먹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3년을 즉석밥을 먹으니 ‘갓 지은 밥’의 향과 질감이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가끔은 제대로 된 끼니를 서울 집에서도 먹고 싶은 마음에 ‘엄마반찬’ 서너 가지를 모셔 와서 비슷한 기분을 내려하기도 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식탁에 들인 적 없지만 늘 놓여있었던 ‘혼자’라는 반찬이 그리 밥맛을 떨어뜨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울에 살면서 또, 계절을 잊었다. 서울의 주택가, 또 원룸이 집약한 곳에는 의외로 ‘나무’가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서울에 살며 처음 맞는 봄에 이상하리만치 벚꽃이 보이질 않아 막연히 ‘올해는 늦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이미 벚꽃이 만개할 시즌이었는데 말이다. 경기도 본집에 살 때에는 가로등과 나란히 놓인 계절 나무들을 보며 집을 나서고, 계절의 향을 간직한 채 집에 돌아오곤 했다. 굳이 계절을 찾아 나설 필요 없이, 벚꽃 명소 같은 곳에 갈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계절을 묻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었는지를 서울에 살며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가족’이다. 서울에 살면서 좋았던 모든 것들을 나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아주 작은 방 하나에 월세 65만 원. 집 값은 말하기도 입이 아프기에 실현 불가능하다. 서울에 살면서 가족이 그리워졌다. 사실 함께 살 때에도 왁자지껄 매일매일 화기애애한 가족 사이도 아니었는데. 문득 혼자 3년을 살면서 이렇게 앞으로 쭉 – 지내게 된다면 가족과는 일 년에 많아도 스무 번, 다 해도 한 달의 시간을 채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얘기 하지 않아도 함께 먹는 밥, 동네 뒷산을 함께 오르며 나누는 시시콜콜한 얘기, 무심한 듯 건네는 아침인사들 모두가 내게는 비타민 같은 것들이었다. 안 먹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있으면 더 기운이 나는 것들. 없으면 그제야 필요성을 느끼는 것들.
다시, 경기도 사람
아직 전입신고 전이지만 생각만 해도 즐겁다. 폭설이 와서, 그날따라 사람이 폭주하는 혼잡한 만원 지하철에서 빠져나온 평온한 기분이 든다. 약간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 살면서 아쉬웠던 점들을 적어놓고 보니 이다지 많다.
하지만 지하철 시간을 계산해 보곤 느지막이 집을 나섰던 서울살이 시절과는 달리, 앞으로 무조건 일찍 집을 나서는 게 습관이 되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오히려 그때의 여유만큼이나 나는 더욱 몸이 처지고 느려졌기에, 앞으로 부지런함을 떠는 만큼 더 바짝 열심히 살 수 있겠지 하고.
오늘은 오래간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단지 내 한적한 산책로에서 인근 음식점과 카페가 모여있는 중심상가, 그리고 널찍한 호수공원에 발도장을 찍었다. 내가 서울에 사는 3년 간 구석구석 조금씩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뭐랄까, 안심이 되었다.
사람 살기 좋은 곳이구나. 앞으로 여기서 뛰어놀면서 행복하면 되겠구나.
[채혜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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