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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왜 나는 이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게 이렇게도 없을까?" 배리 로페즈가 자문하며 던진 이 질문은, 그의 마지막 대작 <호라이즌>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문명의 진보를 자부하는 서구 지식인이 토착 문화 앞에서 느낀 이 겸허한 자각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지혜를 찾아 나서는 그의 대장정의 시작점이 된다.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은 30년에 걸친 지적 탐험의 결실이다. 928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저서는 단순한 여행기나 환경 에세이의 범주를 넘어선다. 인류학, 역사, 자연과학,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 문명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이 시도는, 현대 문명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파헤치고 새로운 희망의 단초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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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개의 렌즈로 본 인류의 과거와 현재


 

<호라이즌>은 세계의 여섯 장소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오레곤 케이프 푸로의 고고학 발굴현장, 남극의 과학기지,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캐나다 북극권의 스키드게이트, 오스트레일리아의 내륙 사막, 그리고 갈라파고스 제도가 그것이다. 각각의 장소는 인류 문명의 중대한 전환점을 상징하는 프리즘이자,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거울이 된다.


로페즈는 제임스 쿡 선장의 발자취를 따라 케이프 푸로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는 이곳에서 알시안족, 틸라묵족, 치누크족의 역사와 생태계를 관찰하며, 원주민들의 세계관과 서구의 관점 사이의 차이를 탐구했다. 벌목된 지역에서 캠핑하며 태평양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서구의 교육에서 배제된 원주민들의 통찰과 지식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원주민들의 문화적 전통은 단순한 구전을 넘어 그들의 정체성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었다. 로페즈의 이러한 관찰은 자연과 역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남극에서의 체험은 특히 인상적이다. 맥머도 기지에 국립과학재단의 초청으로 머물던 로페즈는 기지 밖으로 5분만 걸어가도 "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듯한" 압도적인 광경과 마주쳤다고 회상한다. 빅토리아 랜드의 라이트 밸리와 반다 호수를 찾아 얼음 아래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했던 그는, 그 경험을 "물에 잠긴 대성당의 내부"에 비유했다. 남극의 건조한 계곡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무관심"은 자연의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 지식과 이해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페즈는 이곳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경험을 했고, 그것은 마치 원시의 지구와 우주 공간을 잇는 고리를 발견하는 순간과도 같았다고 전한다.

 

 

1979년, 알래스카 브룩스산맥의 아닙투룩패스라는 곳에서 에스키모인 누나미우트족의 작은 마을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진동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그중에는 이런 당연한 의문도 있었다.


'왜 나는 이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게 이렇게도 없을까?' 이는 단순히 물질 문화나 사냥기술, 또는 그들이 선택한 독특한 땅에서 살아남게 해줄 생존 기술에 관한 지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지식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이 수수께끼 같지만 그래도 온전한 주위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대상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그들은 그걸 그대로 두었을까 아니면 분석적으로 파고들었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내가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 책, <호라이즌> 중

 

 

 

# 지식의 경계를 넘어서


 

<호라이즌>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독특한 서술 방식에 있다. 로페즈는 전통적인 여행문학의 선형적 서사를 과감히 탈피한다. 각 장은 현재의 여행 경험, 과거 탐험가들의 기록, 저자의 어린 시절 회상이라는 세 개의 시간층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실험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침묵'의 활용이다. 로페즈는 중요한 순간에 설명을 멈추고 여백을 둔다.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오로지 세계에 대한 유럽식 이해 방식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는 그의 지적 뒤에 찾아오는 침묵은, 서구 문명의 폭력성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서술 전략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일에서 나는 사람이 물질적 부를 추구할 때 어떻게 일마나 쉽게 그 사람의 노력을 타락시킬 수 있는지 상기하기 위해 내 책상에 꼴 데일카네기 스페인 은화를 놓아두었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이를 행하면서 얻게 되는 냉엄한 교훈 중 하나는, 그 은화가 상징하는 주류의 착취와 근본적 불의를 향한 인간의 충동이, 예컨대 노블적인 도덕원칙 연금이 충분한 돈 많은 범죄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 행태, 제품 홍보에서 나타나는 거짓 선전을 묵인해 주는 경향 등이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두드러진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 미국 문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무법성과 부도덕으로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는 다른 문화권들에서 예상되는 수준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수시로 목격되는 전반적 은폐와 발뺌도 뿌리 뽑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 그렇듯, 급증하는 불평등과 부정의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 파올로네리로부터, 활발한 해양의 현장인 이 대양 앞마당을 오가는 여객선들과 짐을 가득 실은 화물선들과 컨테이너선들의 추이를 눈으로 좇으며 한 번에 머릿속 바다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파된 노스트라세노라도의 잔해에서 전해 울린 팔레알제리 등진의 기억이 이따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동진은 인류 역사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밀도 높게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중 얼마나 많은 문화가 그 풍부함이 제대로 기록되기도 전에 대부분 흔적도 없이 지워졌는지, 누가 원시적이며 누가 진짜 야만인인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인간의 문화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 책, <호라이즌> 중

  

 

로페즈의 글쓰기는 과학자의 정확성과 시인의 감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남극의 얼음을 설명할 때, 그는 결정체의 물리적 구조를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빛의 산란 현상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얼음 결정이 만들어내는 프리즘 효과는 마치 우주의 탄생을 재현하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은, 과학적 관찰과 미학적 경험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로페즈는 지식의 다양한 형태들을 평등하게 대우한다. 투르카나 호수의 고고학자들이 사용하는 최신 연대측정 기술도, 현지 부족들이 대대로 전해온 구전 전통도 그에게는 동등하게 중요한 지식의 원천이다. "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관심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지혜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더 알고자 하는 욕망, 감지하고 측정하는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히 알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비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끝이 없는 추구다. 툴레 유적지에 왔을 때 한쪽 눈으로밖에 볼 수 없는 그 엷은울음참매와 남극 간섭계의 관측 기록이 다시 떠올랐다. 왜냐하면 규모는 다르지만 여기서도 툴레 문화가 후기 도싯문화를 몰아내거나 흡수하는 동안, 아니 어쩌면 두 문화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일어난 변화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의 본성과 역사를 포함하는 더 큰 범주로서 자연이 결코 정지해 있지 않음을 너무도 명백히 드러내주는 환경에서 마주한,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끝이 없는 설계이며, 그 제목은 적응과 변화이고, 그 명령은 '적응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다.

 

- 책, <호라이즌> 중

 

 

 

# 새로운 문명을 향한 지도 그리기


 

로페즈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연결된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환경 보호나 지속가능성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인류가 자연과, 그리고 서로와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의 윤리학을 모색한다.


로페즈가 제시하는 해답은 역설적으로 단순하다. 우리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현대 문명의 기술적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원주민들의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의 조화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는 서구 문명과 원주민 문화, 과학과 전통 지식을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로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특히 그는 문화적 다양성의 보존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인류학적 관심이나 박물관식 보존을 넘어선다. 다양한 문화들이 가진 지혜야말로 인류가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문화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발견한 고유한 해결책"이라는 그의 말은, 문화적 다양성이 단순한 이상이 아닌 생존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인간 세계의 문명을 인간 이외 존재들의 세계와 분리하려 애쓰며 나아가던 우리는 바로 그 위험들 앞에서 변인간 범위 서게 되고, 비로소 생물학적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바로 자연은 우리 없이도 잘 지내리라는 현실을 우리가 되새겨야 할 때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연결된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내려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여러 해 전부터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영웅적 노력 - 본질적으로 이방인들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려는 노력 - 이 요구되고 있었다. 나는 경제 강대국들이 구리와 철, 보크사이트, 기타 광석들의 마지막 남은 대규모 매장지를 찾아 세상의 가장 외딴 지역들로 허둥지둥 몰려가는 것을 보면서, 또는 한때는 믿을 수 없던 원양어업의 실태에 관해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냉소적 술책에 관해 읽으면서, 이 계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상황을 우리와 다르게 바라보는 방식들에 전례 없이 마음을 여는 것이 오늘날 인류의 마지막 구명 뗏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의 생애는 이방인들과의 협력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책, <호라이즌> 중

 

 

 

# 글을 마치며,


 

로페즈의 시각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비현실적이지 않다. 그는 현대 문명의 성취를 부정하지 않으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우리는 과거의 지혜와 현대의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양자택일이 아닌 통합의 비전이다.

 

이 책은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사유의 문법을 제시한다. 자연과 인간, 과학과 전통,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된 세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는 이 책은, 현대 문명의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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