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인간이 살아가면서 전유하는 공간은 지구의 대지면적 중 몇 퍼센트나 차지할까? 분명 지구 위로 아주 작게 찍힌 점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바다처럼 드넓은 세상에서도 우리는 그저 어항에 갇힌 물고기처럼 살아가기 급급하다.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 안쪽을 맴돌며 살아가기에도 호흡이 벅찬 탓이다.
기껏해야 십여 킬로미터 남짓하는 생활반경 안에서도 여유를 누릴 틈이 없다. 세상의 발전상이 우상향 곡선을 그릴수록, 우리 삶의 범위가 도리어 좁아지는 이유는 오히려 최신 기술의 발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공의 기술은 인간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는 동시에, 편리함이라는 대안으로 도리어 그 잠재력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집안에서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가능해져 버린 시대다.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기보단 AI 챗봇에 접속하고, 각종 민원 서비스를 이용할 때에도 복지센터가 아닌 웹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접수한다. 게다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와이파이만 연결된다면 화상회의로 함께 업무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 편의가 도구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뒷받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습관에도 은연 중에 영향을 미쳐온 것은 아닐까? 그 탓에 현실의 보완책에 의존하며 신체적 경험의 가능성을 비효율로 치부해 버리지는 않았을까? 그 질문마저도 잊어버린 채 기술의 안온함에 젖어들 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라는 이 행성의 근원적 경이를 새삼스럽게 인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진 출처 - Unsplash, Adriel Kloppenburg
하지만 자연사와 환경에 대한 저술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작가 배리 로페즈의 삶은 그 정반대에 가까웠다. 그는 1945년 뉴욕에서 태어나 노터데임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사진, 연극을 공부하고 1960년대부터 자연과 인간을 소재 삼은 픽션과 논픽션을 발표하며, 사진이나 음악, 연극, 환경운동, 과학 등의 영역을 풍부히 넘나들며 활동했던 작가다.
그의 삶은 우리 시대에는 생소해진 가장 원초적인 방식, 곧 몸을 직접 부딪혀 세상을 경험하는 ‘모험’의 여정들로 가득했다. 그는 평생 70여 개국을 여행하며 20여 권의 책을 펴냈으며,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저술한 책 『호라이즌』은 무려 900여 페이지에 걸쳐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아프리카 케냐, 호주, 남극 등 세계 각지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문학적인 문체로 총망라한다. 정치학, 역사학, 인류학적인 견해가 고루 녹아든 그의 시야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고찰할 수 있는 최대치의 영역을 치열하게 실험한다.
[차례]
작가의 말
프롤로그
들어가며: 배를 찾아서
파울웨더곶
- 북아메리카 서부 북태평양 동부 연안 오리건주 해안
스크랠링섬
-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 엘즈미어섬 동해안 알렉산드라피오르 입구
푸에르토아요라
- 적도 태평양 동부 콜론 제도 산타크루스섬
자칼 캠프
- 동부 적도 아프리카 투르카나 호수 서부 고지 투르크웰강 유역
포트아서에서 보타니베이까지
-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남극해 북쪽 해안 태즈메이니아주
-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남태평양 서쪽 해안 뉴사우스웨일스주
그레이브스누나탁스에서 포트패민 도로까지
- 남극 대륙 남극 고원 북쪽 가장자리 남극횡단산맥 중앙 퀸모드산맥
- 칠레 남부 마젤란 해협 연안 브런즈윅반도
주
참고 문헌
학명
지도
감사의 말
“여기서 방향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빛도 맥을 못 춘다. 햇빛이 약해 희미한 그림자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거기 있는 게 무엇이든 규모도 거리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산 정상처럼 멀리 있는 대상들만은 윤곽이 또렷이 보인다. 공기 자체는 최고 품질의 다이아몬드만큼 투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들은 보이는 것처럼 가깝지 않다. 기온은 섭씨 영하 24도 정도, 비교적 잔잔한 바람이 뛰어다니는 한 마리 동물처럼 눈 위를 산만하게 움직인다.”
p.723, 그레이브스누나탁스에서 포트패민 도로까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행의 기록을 열람한다기보다는 저자의 모험에 동행하는 기분이다. 저자의 문장은 모험의 현장에서 내디딘 걸음마다 체감한 소리와 공기, 광경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또한 그곳에서 동시적으로 받았던 인상과 그에 후술되는 고찰들을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매끄럽게 오가며 자연스럽게 서술한다. 문장을 쫓아가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영상은 마치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과도 같이 광대하지만, 안전성이나 상업성이라곤 배제된 그의 순수한 탐험은 그 무엇도 갈음할 수 없다.
“이날 아침 여기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내 옆 북극버들 덤불 속에서 햇빛을 받아 무언가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 반짝임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그 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돌을 부수어 석기를 만들 때 생기는 돌 파편이다. 사람의 흔적. 언젠가 아득한 옛날 다른 누군가가, 지베르니에서의 빛의 작용과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의 이동에 관한 학문적 사색에 몰두하고 있는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일을 앞에 두고 바로 이 자리에 기대 있었던 모양이다.”
pp.238-239, 스크랠링섬
캐나다 북극에 위치한 스크랠링 섬에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 800여 년 전에는 오늘날 툴레족이라고 불리는 에스키모 사람들이 거주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인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자연 그 자체에 가깝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곳의 굴 안에서 인간의 수명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수백 년의 시간을 버텨낸 인간의 흔적과 마주한다. 보존이나 기록을 통해서가 아닌, 실제의 접촉으로 오래 전의 역사와 조응하는 경험은 모험이라는 대담한 행위가 아니라면 손에 넣을 수 없다.
사진 출처 - Unsplash, NOAA
“폐장 시간도 없고, 울타리도, 농경지도, 인간이 건설한 어떤 구조물도 없는 풍경에서 내 눈으로 직접 그런 존재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행운으로 느껴졌다. (중략) 다만 그 경험들은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절망이 덮쳐오지 못하게 막아주었다.”
p.478, 자칼 캠프
그가 자연을 통해 얻는 위로는, 현실 이면을 감각하며 세상의 절망에 등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전 인류가 당면한 국제적 위기 앞에서 취해야 할 자세를 일깨워 주는 곳 역시도 자연이다. 책 전반을 걸쳐 낯선 땅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탐험지에서 긴 시간 머물렀던 부족민들을 향한 조심스러운 태도, 상호 존중의 자세는 그가 논하는 인류의 지향점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인류의 운명을 정부와 세계적 기업들의 의제를 중심으로 계획하는 논의를 들을 때, 너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그 자리에 ‘가장 훌륭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참석하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에 나는 자주 두려움을 느낀다.” - pp.700-701, 포트아서에서 보타니베이까지
“내 경험상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도 언어의 장벽을 우회할 방법은 찾아낼 수 있으며, 나아가 각자의 자아 바깥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상대의 관점에 감정이입하고, 그 관점을 인간의 경험이라는 거대한 현실 속에 통합할 수 있다면 높이 고양되는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그럴 수 있으려면 대화하는 양쪽이 모두 호기심과 존중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누구라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가변적이고 다면적이며 너무 많은 잔가지를 뻗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세계는 원래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p.703-704, 포트아서에서 보타니베이까지
인간 혼자의 존재는 미약하지만, 그 존재가 모여 발산하는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 명의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 자연을 위협하는 존재 역시도 인간이다. 하지만 인류가 인류를 섣불리 대변하는 것은 위험성이 짙다. 그 대변자들의 자격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한 물음 때문이다.
인류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논의의 현장에서, 인류의 자기반성은 선행되지 않고 국제 사회의 강자나 다국적 기업의 이윤이 기준이 되는 현실이다. 저자는 인류의 파급력을 경계하려면, 본래의 속성을 따라 보다 인간적인 방식의 소통을 택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서로 다른 민족 사이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방식을 전한다.
책의 제목과 표지에 담긴 광활한 수평선 앞에서, 저자가 느꼈을 감정들을 되밟아 보면 책이라는 매체로 그 여정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본래의 시야와 상황에서는 감각할 수 없었을 신비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이 담고 있는 방대함에 비하면 사진 같은 시각자료는 전무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인쇄된 이미지로는 원본의 자연을 담아낼 수 없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당연하다는 듯 존재하는 자연 앞에서 결국 우리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수많은 여정 가운데 시야를 넓히며 깨달은 진리다. 어떤 한계도 없는 듯 보이는 인간 사회에서 각자의 몸부림을 잠시 멈추고 자연의 순리를 다시 살필 때, 그 자세는 유약함이 아닌 겸허함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