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이에게 앙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고스트캣 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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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다 좋지만 굳이 하나만 고르자면 나는 고양이파다. 지나가는 길고양이들을 보면 귀여워서 어디로가나 눈으로 쫓기도 하고, 주변에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기를 생각은 없다.
털 문제도 있고항상 우리보다 먼저 떠나버리는 그 작은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떠나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해줄 고양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고양이 요괴라 죽지 않거든
영화 <고스트캣 앙주>는 주인공 ‘카린’과 고양이 요괴 ‘앙주’의 힐링 애니메이션 영화다. 3년 전 엄마를 여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채업자에게 쫓겨 아버지의 고향 소세지절로 거처를 옮기게 된 카린. 와중에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면서 딸을 절에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이 곳에는 어딘가 좀, 아니 많이 이상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다니고, 오토바이를 몰고, 사람 말을 할 줄 안다. 그 고양이는 유창하게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양이 요괴 앙주라고.
카린의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 논밭에서 울고 있는 자그마한 고양이를 한 마리를 구하게 되고 앙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보통 10~15년인데 반해 앙주는 20년, 더 나아가 30년을 넘긴 37살(!)임에도 고양이 별로 떠나질 않았다. 오히려 점점 사람처럼 변해갔다. 앙주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함께 소세지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분명 저 이상한 고양이에게 시선이 집중될 법도 한데, 너무 이른 나이에 사춘기가 온 카린은 그마저도 다 싫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 카린과 앙주는 가난신과 함께 엄마를 찾아 지옥으로 향하게 된다.
초반에 카린은 앙주를 탐탁치 않아 한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고 슬픈데, 아무 걱정 없어보이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앙주가 꼴보기 싫었던 것이다. 특히나 자신에게 가까운 아빠와 할아버지와 관련된 인?묘?물이니 더 그랬을 것이다. 틱틱대는 것은 예사, 앙주가 쓰는 자전거를 다리 밑 강가에 던져 버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고양이임에도 카린보다 20년은 더 산 앙주는 그런 카린을 다그치지 않았다.(물론 범인이 누구인지 모를 땐 용서할 수 없다며 식칼로 언월도를 만들어 허공에 휘두르긴 했지만..) 느긋하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앙주이지만 기운이 없는 카린에게 수박을 주기도 하고, 카린에게 빌붙으려는 가난신을 떨어뜨리려고 노력도 한다. 또,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던 [지옥 가서 엄마 찾기]에도 동행해주고, 끝까지 자신의 옆을 지켜주기도 했다. 그런 앙주가 소중해지는 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이런 앙주의 행동은 아직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어른’의 면모라 느껴졌다. 나와 앙주의 나이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내가 오히려 앙주에게 무언가 배운 느낌이었다.
작중에선 고양이가 이륜기를 몰고,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심(도쿄) 사람들도 거대한 고양이가 걸어다니고, 사람 음식을 먹고, 사람 말을 하는데 단순하게 “큰 고양이다.”라고 생각할 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마치 그냥 평범한 길고양이 취급을 할 뿐이다. 아마 이런 생명체가 있을 경우 사회적인 파급이 엄청날 것이기에 그렇게 설정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고양이가 어떤 모습이던 간에 인간들과 사회에서 어우러지길 바랐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 영화, 전체 이용가임에도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지옥에서 탈출한 카린의 엄마를 잡기 위해 지옥 도깨비와 염라가 따라 나서는데, 도깨비들이 앙주와 또 다른 영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것이다(..) 단순히 가볍게 때리는 장면이 아니라, 단단해 보이는 방망이로 힘껏 두드려 패 앙주의 얼굴에 혹이 계속 생겨나는 모습은 생각보다 보기 어려웠다.
또한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탓일까. 카린과 엄마의 감동적인 재회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데, 염라가 카린의 엄마에게 말한 대화-지옥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떤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아느냐는 뉘앙스의-가 너무 뇌리에 강하게 박혀 딸의 치기 어린 행동 때문에(..) 엄마가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카린의 엄마는 카린을 위로하고 웃으면서 지옥으로 떠났지만, 지옥에 도착한 이후의 엄마의 신변이 걱정되기만 한다.
고스트캣 앙주를 보면서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이 생각났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종족이지만 함께했던 과거를 간직하고,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불멸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 <장송의 프리렌>. 반면 <고스트캣 앙주>는 앞으로 영원히 불멸자로 살아가게 되면서 필멸자인 카린과 현재를 그려나갈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애틋해질 관계이다 보니 자꾸 떠올랐던 듯 싶다.
비록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고, 어쩌면 그보다도 더 가까운 시일에 카린은 절을 떠나 도시로 나가게 되면서 앙주와 헤어질 지도 모르지만, 앙주는 아마 그 곳에서 계속 카린의 돌아올 곳으로 남아있어 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카린이 더 커서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식을 낳게 되면 그 자식에게도 똑같이 언제든 돌아올 곳이 되어줄지도.
나에게도 저런 고양이 요괴 한 마리가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랜선 집사로 활동하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배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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