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필자가 처음으로 ‘요한 하위징아’라는 학자의 이름을 접하게 된 경위는 교양수업 중 하나인 ‘철학으로 문화읽기’ 수업에서 였다. 하위징아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주차의 수업은 마르크스의 노동의 의미를 주제로 엮어 나갔으며, 네 개의 의미 중 하나인 ‘노동은 사회변혁을 통해 인간 해방을 실현한다.’라는 테제에 뒷받침된 이론이 하위징아의 ‘유희적 인간’이었다.

 

노동과 놀이는 놀이의 수단적 성격을 갖는데, 산업사회 이후 ‘여가=놀이=노동력의 재생산’이 되며, 놀이 이외의 무엇(노동)을 위해서 행해지는 ‘수단’이다. 놀이의 자기목적적 성격으로 역설된 것이 수단적 활동에는 반드시 ‘외적인 동기부여’나 ‘보수’가 동반되나, 놀이의 경우 명령을 받지 않고,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예술, 철학, 재판, 전쟁은 본래 놀이로서 성립, 발전하였다는 것인데, 이 논리에 따른 사례들은 과거의 역사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란 추측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렇기에 책을 읽기 전, 중세의 ‘문화사’를 다룬 『중세의 가을』에서는 인간사를 유희적 인간인 호모루덴스로 바라보는 논조가 가미될 것과 그렇다면 왜 하위징아가 서양의 여러 과거사 중 중세를 택했을 지에 대한 연관 질문이 여러 개 생겨났다. 그 중 주요 질문 3개로 갈음하여 서평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요한 하위징아’는 누구인가


 

하위징아가 많은 사파들 중에서 문화사와 정신사에 몰두했고, 20세기에도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었던 중세를 당대의 역사학의 흐름과 다른 방식으로 연구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선 요한 하위징아라는 인물의 생애부터 알아보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그는 1872년 네덜란드 북부 지방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두 갈래로 위협과 고난을 겪는데, 하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빠르게 불어오던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바람이었고 하나는 그의 집안 내력이었던 매독에 의한 정신적 불안이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던 배경은 시대의 양극단에 서있던 지식인을 표상하기도 했으며, 정신적으로는 니체와 같은 반反신론적 철학과 예술에 대한 탐구로 문화사와 정신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중세의 가을은 1919년 1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돌입하던 시기에 집필되었고 때문에 1차세계대전의 참상과 그의 아내를 떠나보낸 후의 감정 상태에서 써 내려간 네덜란드어 판 서문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쓰면서 저자의 시선은 깊어가는 저녁 하늘을 자주 응시하였다. 그 하늘은 진홍색으로 침윤되었고, 납빛의 구름들 때문에 위협하는 듯이 보였으며, 구리 같은 가짜 광채가 가득하였다. (…) 만약 나의 시선이 그 저녁 하늘에 좀 더 오래 머물렀더라면, 그 침침한 색깔들이 완전한 투명 속으로 용해되지 않았을까? 내가 이제 중세 후기라는 시대에 구체적 윤곽과 색깔을 부여하고 보니, 당초 내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구상했던 것보다 더 음울하고, 덜 평온한 이미지를 그 저녁 하늘에 입힌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늘 이 지상의 것들에 시선을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쉽게 벌어진다. 가령 그가 인식한 것이 금방 무기력해지거나 조락해 버리고, 또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작업에는 늘 깊은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다.” (중세의 가을 24p)
 

 

서문의 한 부분인 이 문장은 문학적이고 저자의 감정이 호소되었는데, 이러한 시대의 전환점에 서있던 이들의 중세후기의 애수와 근대후기의 애수로 공유한다. 단지 페트라르카가 말했듯 자기 이전의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규정하고 시작된 새로운 혁신의 시대가 아닌, 성과 속이 혼재된 과도기의 그것이 하위징아가 서양 문화사적으로 꽃을 피웠다고 하는 르네상스가 아닌 중세 후기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중세, 양극단의 시기에서 유희하는 인간


 

책의 중점적으로 설정된 배경은 14세기, 15세기 프랑스, 부르고뉴,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등의 서유럽이다. 여러 지역을 연구대상으로 삼았기에 시기적으로 르네상스에 포함되는 설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중세는 스콜라 철학이 태동하며,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격언이 인식처럼 박혔다. 물론 이 격언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신학의 절대성이 아닌 철학과의 상관관계, 중세적 의미의 계급차이(하녀와는 다른 시녀라는 단어)로 해석되며 새로운 학문의 돌파구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중세에서의 일상은 아주 그리스도교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일상 자체가 신앙적인 삶이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면모들은 신성모독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하위징아의 시선대로 톺아본 중세에서의 삶은 ‘열정’, ‘성과 속’, ‘아름다움’이라는 이 세 단어의 사용이 잦았고 이는 20세기 초의 실증주의적 역사학, 즉 이성에서 떨어진 개념들이다. 그가 중세에서의 사료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책의 ‘제 12장 생활 속의 예술: 반에이크의 예술을 중심으로’란 목차에서 그가 인용하고 주석한 출처들로 하여금 중세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일상생활은 불타오르는 열정과 어린애 같은 상상력에 거의 무한정한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의 중세 전공 역사가들은 연대기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로지 공식 문서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가들은 연대기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로지 공식 문서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가들은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가끔 위험한 오류에 빠진다. 공식문서는 중세와 근대를 구분해 주는 저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공식문서는 중세의 저 열정적인 애수를 망각하게 만든다.(…) 이런 열정의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이런 갈등들을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중세라는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이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중세의 가을, 48-49p)
 

 

이러한 주장은 중세 부르고뉴의 궁정시인 샤틀랭이 기록한 내용이 책의 기반이 된다. 그의 기록은 윤리적 환상에 잘 넘어가고, 또 그런 환상 때문에 정치적 순진성에 빠진다. 때문에 기록들은 부르고뉴 궁정생황의 외적 아름다움, 기사도의 용기와 미덕등 귀족의 관습에 따른 관념을 갖고 집필되었지만 네덜란드 부르주아 권력이 점점 커지고 제 3계급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은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로 하여금 중세의 완숙된 문화적 현상과 더불어 찬란함이 펼쳐지는 당대의 상황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있어 ‘호모 사피엔스’에 반대되는 ‘호모 루덴스’라는 인간관은 동명의 책이 집필된 1937년, 마르크스주의와 1차세계대전 이후 급증한 대중적 노동운동으로 생겨난 여가시간이 대폭 늘어난 새로운 노동계급을 바탕으로 생겨났지만 책을 읽고 나면 중세의 인간관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중세인들이 미신, 기사도 환상, 코미디를 장식, 패션, 축제 등으로 ‘현실화’하면서도 그것을 진지하게 믿어 ‘마녀사냥’과 같은 이도교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궁정과 귀족사이에서도 놀이와 진지함이 혼재되는 중세인들의 양극단적인 우유부단함은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매우 다른 양상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반대되었다.

 

 

 

상상력 대신 이미지의 시대


 

하위징아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의 초기 목표는 반에이크의 미술을 좀 더 잘알기 위해서 쓰여졌고 그만큼 14, 15세기 당시의 미술에 대한 궁금증을 더 잘 독파하는 것을 위한 배경설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다음과 같은 배경설명에 대해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예전의 모든 문화에 대해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취미가 독서에서 회화로 바뀐 때부터, 그리고 우리의 역사적 감각이 점점 시각적으로 바뀐 때부터 더욱더 밝고 명랑해졌다. (…) 예술을 통하여 시대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방법은 역사적 비판에서 상당한 오류를 범하기 쉬우므로 수정되어야 한다. (…) 즉 예술과 문학이 문화를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놓치는 오류가 그것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이전에 중세미술은 실용성이 주요한 가치 평가의 척도였고 그만큼 작품들이 교회나 시청, 법정과 같은 공공장소에 걸린다는 것이다. 이에 화려함으로 치장되어 부르주아들의 위풍당당함을 내비치는 르네상스의 그림에 비해 오히려 일상과 유리된 평온함으로 물든 반에이크의 그림이 높이 평가받았다.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가장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은 바로 이 언외(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 때문에 하위징아는 15세기와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들이 만든 문학적 산문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위징아가 이렇게 문학과 회화의 차이를 반복하여 비판하는 이유는 중세의 상징주의가 저물고 그것이 부패하여 사용되는 실태가 중세후기에 나타나며, 이와 함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언외의 것으로 상상력을 초월한 신앙의 연대에 대한 불씨를 봤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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