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베니뇨와 마르코가 ‘카페 밀러’라는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알모도바르 감독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도 연극과 영화를 삽입함으로써 그것을 작품 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기여하도록 한 바가 있기에, 영화의 시작을 여는 공연은 자연스레 ‘카페 밀러’가 극 중에서 어떤 메타포로 작용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피나 바우쉬의 ‘카페 밀러’ 속에서는 눈을 감은 채 춤을 추는 두 여자가 의자로 가득 차 있는, ‘카페’로 상정된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여자들 중 한 명에게는 여자를 적극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의자를 치워주는 등 그녀를 보호하는 남자가 있는 반면, 또 다른 여자에게는 그녀를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그녀가 의자에 치이거나 넘어져도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해 하는 남자가 있다. 이들이 존재하는 공간인 ‘카페’는 원래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로 활기가 넘쳐야 하는 공간이지만, 이 극에서는 다소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의 맨 첫 장면에 삽입된 이 ‘카페 밀러’씬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베니뇨와 마르코, 알리샤와 리디아의 관계와 이들이 만나는 ‘병원’이라는 폐쇄적 공간에 대한 총체적인 은유라고 여겨진다. 베니뇨는 알리샤에게 (적어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여자를 위해 의자를 치워주는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남자이고, 마르코는 리디야의 고통 앞에 어쩔 줄 몰라하는 방관적인 태도의 남자였던 것이다.
베니뇨와 알리샤의 관계는 처음부터 일방적인 사랑이었다. 베니뇨가 알리샤를 좋아하게 된 과정과 알리샤의 전담 간호사가 된 과정, 그리고 간호사로서 알리샤를 돌보는 모습 등 모든 것은 베니뇨의 일방적인 집착이었다고 생각한다. 베니뇨는 스스로 그것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것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계속해서 일방적인 관계를 추구하며 결국 강간까지 저질러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집착이 만들어낸 행동이라는 ‘결과’가 아닌, 그의 집착(혹은 헌신)을 일으킨 정신적인 ‘동기’를 추적해보자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제대로 된 돌봄과 애정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던 과거를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만이 그가 ‘여성’과의 관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에 알리샤와의 관계에서도 ‘헌신적인 자신’에 유독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가 알리샤를 강간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어떠한 ‘성애적’인 관계가 아니라, 어린 시절 정상적인 발달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잘못된 욕망으로 보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베니뇨가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알리샤의 아버지가 과거에 대해 자세히 묻는 장면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마르코와 리디아의 관계는 언뜻 쌍방의 사랑인 듯 보이지만, 둘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사실 리디아가 식물인간이 되기 전부터 마르코는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불안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마르코는 전 연인인 안젤라와의 관계에서 매우 헌신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마약 중독을 끊어내지 못했으며, 안젤라는 마르코를 떠났다. 이는 마르코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유독 마르코가 영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느끼는 무력감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가 피나 바우쉬의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두 번 등장하는데,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의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동작이나 상황을 극도로 되풀이함으로써 극 속의 인물이 느끼는 고통과 관객이 느끼는 고통을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즉 마르코는 타인의 고통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르코가 식물인간이 된 리디아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리디아의 모습이 주는 고통이 그에게 너무나도 쉽게 전이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루고는 있지만, 중첩된 유사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얽힌 인물들의 관계가 ‘우연’의 작용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다소 현실과 멀어 보이기도 한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전작들도 대부분 그런 특징을 보였던 것 같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들에게 몰입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번갈아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그렇기에 우리는 베니뇨와 마르코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베니뇨의 범죄에 분노하고 마르코의 태도를 비판할 수 있다. 영화는 현실을 조명하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현실 너머에 있는 가치들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