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andom, 음악을 끼고 뻗어가는 문화의 스펙트럼
지금까지는 생산자인 아이돌을 중심으로 케이팝을 살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케이팝을 소비하는 사람들, 즉 ‘팬’을 중심으로 케이팝의 확장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앞선 다양한 사례들처럼, 고유한 해석이 가미된 케이팝이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문화’가 있다. 가볍게 터지는 소리의 의성어인 ‘팝’은 음악을 넘어 문화에도 적용되는 단어이고, 계속되는 신선한 음악적 시도를 꾸준히 소비하는 팬들이 있기에 케이팝이 하나의 문화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케이팝이란 음악 자체가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통해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수 개인의 개성과 매력이 중시되는 기존의 틀을 탈피해 케이팝 산업은 아이돌 ‘그룹’의 매력과 팬덤의 소속감을 끌어올렸다. 그래, 지금 같이 높은 경제성과 소비자 충성도는 사실 팬덤 문화의 덕이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생성하고 소비하는 마니아층이 케이팝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 탄탄한 팬층을 유지하는가? 팬덤의 구성 요소는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나는 그것이 ‘소속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서 오는 소속감은 생각보다 크다. 오늘날과 같이 사회 구성원 간의 거리가 먼 시대일수록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감상평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는 드물뿐더러 케이팝 문화가 이들의 끈끈함과 소속감을 위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소속 집단에 이름을 부여하고 (팬덤 명), 자신들의 소속을 증명하는 카드 (팬클럽 카드), 팬임을 인증하고 가입하는 팬카페에 더불어 팬덤을 위한 콘서트와 고유한 디자인의 응원용 봉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기까지.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상품화한다”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으나, 나는 사실 이러한 마음의 물질화가 한계 돌파에 크게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이러한 팬덤 문화는 거대한 소비로 이어져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증명하는 숫자가 되었고, 소비층의 확장은 곧 생산자의 확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국적 그룹, 현지화 그룹의 등장은 이러한 ‘글로벌 팬덤’을 다분히 인식한 결과물이다.
다국적 케이팝, 전 세계의 즐길 거리
그렇게 케이팝은 소비자도, 생산자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국적 문화가 되었다. 케이팝의 가사에는 이제 일본어와 중국어, 스페인어 등 기존의 한국어와 영어가 아닌 언어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기존의 한국어 가사를 번역하는 것이 아닌 해당 외국어로 처음부터 쓰인 곡들도 발매되고 있다.
케이팝에서 가시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뮤직비디오의 촬영지 또한 이제 한국, 미국, 유럽의 3대 주류 촬영지에서 벗어나 태국(아이들의 ‘클락션(Klaxon)’), 몽골(티아라의 ‘넘버 나인(No. 9)’) 등 다양한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 혹은 퍼포먼스에서 등장하는 문화적 시청각 요소 또한 보다 다국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필리핀 국적 가수들로 구성된 그룹 ‘호라이즌(Hori7on)’의 데뷔 등을 보았을 때, 앞으로 케이팝 안에서 아시아의 색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무려 1994년부터 정치적 의제로 등장했던 한국의 “세계화”를 케이팝이라는 음악 산업에서 가장 먼저, 자주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신기하다.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지난 학기에 특히 그걸 많이 실감했다. 마트 계산대의 도우미 직원이 내 카드 서명을 보고선 한국에서 왔냐며 대뜸 “BLACKPINK in your area”를 흥얼거렸던 일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있고, 옆집에 살던 독일 교환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스트레이키즈의 로고가 새겨진 배낭을 메고 다녔던 것 또한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전 세계가 즐기는 케이팝, 굳이 한국어 가사일 필요가 있겠는가! 한국어 가사를 강조하는 케이팝 향유자들의 의견과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나, 지금의 케이팝이 보여주는 온갖 정체성의 교차로가 즐겁다.
케이팝이 얼마나 더 뻗어나가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지, 케이팝의 다국적성이 어떤 장단점을 갖는지 조금 더 사고하여 다음 편으로 돌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