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또래 친구들이 도라에몽, 코난, 꿈빛 파티시엘 등의 어린이 만화를 시청할 때 나는 또래보다 일찍 드라마와 예능을 접했다. 엄마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세상을 예능으로 배웠다는 점이다. 육아에 있어서 미디어 노출은 안 좋다는 얘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스스로가 세상을 예능으로 배운 좋은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예능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찾아볼 정도로 방영 당시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레전드 예능이다. 나는 무도 키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방영 당시 매주 열심히 본방사수했던 시청자였다. 다시 돌려봐도 여전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회차가 몇 가지 있다.
바로 '가요제' 회차이다. 가요제 회차는 출연하는 아티스트들과 무도 멤버들 간의 케미도 좋았지만 하나의 창작물이 만들어지고,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연습 과정 그리고 그 창작물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모든 프로듀싱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시청하는 회차이다. 지속적으로 가요제 에피소드를 찾아보는 것처럼 가요제에서 발매된 노래도 꾸준히 즐겨듣는다.
가요제 노래를 들을 때면 해당 에피소드를 방영했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나면서 추억여행에 빠지게 된다. 그중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명곡이라고 느끼는 노래가 있다.
<말하는 대로>는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노래다. 가요제가 끝나고 텅 빈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른 연출을 통해서도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국민 MC라고 불릴 정도로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유재석의 힘들었던 무명시절의 이야기가 가사에 담겨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가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노래를 듣다가 말하는 대로가 흘러나왔다. 말하는 대로가 세상에 공개된 이후로 수없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뭔가 이상하게도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는 그저 '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의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듣다 보니 '한 사람의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너무 깊게 공감되었다.
난 왜 안 되지 왜 난 안 되지
가사의 순서만 살짝 바꿨을 뿐인데. 힘들었던 그 시절의 간절함이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힘든 순간을 마주하면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남들은 다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제자리일까라는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내가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결국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기 힘들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오고, 그 순간의 끝에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속 작은 이야기
시간이 흘러 노래를 들을 때는 담담하게 읊조리는 유재석의 랩 파트을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결국 그 시절의 자신을 힘들게 했던 건 주변 사람도 아닌, 환경도 아닌. 그 시절의 나였다고 말해준다. 주변의 말보다 내 마음속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따뜻한 조언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말하는 대로가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성공한 연예인의 가장 초라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1절에서는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고 하지만 2절에서는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다고 가사의 분위기가 전환된다.
가사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은 마치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의 심경 변화를 담아낸 듯하다. 이 노래를 듣기 전에는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노래를 다 듣고 나면 할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2024년의 연말은 유난히도 힘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내년에는 부디 모든 이들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이하는 첫 곡으로 말하는 대로를 추천한다.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