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각자에게 중요한 가치를 선택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씨 인사이드>의 주인공 ‘라몬’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감각조차 없는 몸을 가진 채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라몬’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그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원하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라몬’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는 죽음이다. 그가 젊었을 적 전 세계를 여행 했다는 점과 글과 음악에 조예가 무척이나 깊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지금의 그를 구성하는 과거의 삶은 다채로운 경험과 새로운 체험으로 가득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사지마비자가 된 후 26년 간 그 어떤 새로움도 없는 삶을 살며, 가족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보았을 때 죽음에 기대를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를 찾아온 ‘로사’나 ‘줄리아’가 그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되어 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들과의 관계가 ‘라몬’에게 다시금 삶의 의지를 심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실제로 ‘줄리아’를 사랑했던 ‘라몬’은 ‘줄리아’가 그에게 책을 가지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죽음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라몬’은 이미 자신의 존재가 주변인에게 어떤 버거움을 주는 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갈망하는 자의 관계 맺기는 어떠한가. 사실상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서로의 처절함을 이해할 때 진정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라몬’이 죽음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를 찾아온 두 명의 여인이 있다. ‘로사’는 ‘라몬’에게 삶의 의지를 주고 싶어 했다고는 하지만, 죽고 싶어 하는 ‘라몬’의 마음에 공감했던 측면도 있다고 본다. ‘로사’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두 아들을 힘겹게 홀로 키우고, 심지어는 공장에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자리를 잃게 된다. ‘로사’야 말로 어쩌면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고, 그런 그녀가 ‘라몬’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해서라도 삶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이 그녀의 처절함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줄리아’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변호사로서, 그녀 자신도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그래서 ‘라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한 죽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몬’을 돌보는 형수인 ‘마누엘라’도 역시 몇 십 년간 시동생을 돌보며 좋든 싫든 그에게 얽매인 삶을 살아왔을 테고, 그래서 더욱이 ‘라몬’의 처절함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줄리아’가 ‘마누엘라’에게 ‘당신의 생각은 어떻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마누엘라’가 ‘라몬’의 죽음을 누구보다 응원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그를 진심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그러한 ‘라몬’의 처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라몬’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곧 죽음임을 인정하지 않는 신부는 오히려 ‘라몬’과 가족들에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미지는 바다이다. 비록 현재의 ‘라몬’은 바다를 마음껏 누빌 수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라몬’이 누워 있는 침실의 이미지와 더욱 대조적인 풍경을 이루기도 한다. 바다는 ‘라몬’이 젊었을 적 꿈과 열정을 키우던 공간이자, ‘라몬’을 사지마비자로 만든 공간이자, ‘라몬’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풍경이기도 하다. ‘라몬’이 자신의 몸이 자유로워진 것을 상상하며 하늘을 날아 도착한 공간도 역시 바닷가이다. 영화의 화면 비율 자체도 바다의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강조하기 위한 비율로 되어 있다. 즉 이 영화에서 바다는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라몬’이 갈망하는 자유를 바다의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써 끝내 ‘라몬’이 선택한 죽음을 ‘Sea Inside’, ‘바다 속’에 은유한 것은 아닐까 싶다. 결국 ‘라몬’은 죽음 안으로, 바다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자유를 위해 존엄한 죽음을 갈구하는 ‘라몬’의 생을, 그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던 바다를 통해 은유함으로써 탁월함을 보여준 아름다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