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5년에는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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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다가오면 시작되는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신년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일이다. 새해가 되면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고 깐깐한 기준으로 나에게 어울릴만한 다이어리를 찾아본다. 속지부터 표지까지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찾고 나면 구매한다. 하지만 그렇게 깐깐하게 고른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행위는 오래가지 않는다. 아마 공감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인 나는 개강과 동시에 '종강 언제 해?'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흘러 12월이 다가오면 또다시 1년이 지나간 것만 같은 생각에 지난 시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한다. 기록도 매년 되풀이되는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그래서 연말에 1년 중 며칠만 채워진 다이어리를 볼 때면 이번에도 또 종이만 낭비했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매일을 기록한다는 것이 사소하고 당연한 일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하루를 돌아본다는 것이고, 하루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늘 기록은 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 중 마지막으로 밀려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한번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매주 일기장 숙제를 내야 했던 시절을 돌아보니 일기장을 쓸 때 신나게 일을 적었던 기억보다는 숙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매주 진행되던 재미있는 일기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 쫓기듯이 일기를 썼던 기억이 더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핑계라는 것을 안다.
가끔은 휴대폰의 메모장을 펼쳐 그날의 기분이나 나의 생각을 적을 때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이제부터는 '진짜', '본격적으로'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까먹는다.
그래서 책 제목을 읽은 순간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모든 요일의 기록.
책 <모든 요일의 기록>의 저자 김민철은 같은 구절을 수 백번 읽어도 잊어버리는 카피라이터로서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단점을 '기록'을 통해 극복했다. 날카로운 아이디어는 뭉툭한 일상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일상을 어떻게 기록할까.
"한 줄의 문장을 짓기 위해 오늘도 수백 개의 감각과 기억을 사용한다."
책을 통해 성실하게 기록하는 카피라이터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은 개인적으로 지난 몇 달간 가지고 있던 답답함을 해소해 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해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의 몇 가지 부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읽다: 인생의 기록
저자는 스물여덟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를 가기 위해 회사 책상 앞에 파리 지도를 붙였다. 그리고 곧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곧'은 다가오지 않았다. 막상 떠날 용기도 없으면서, 거기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막연한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떠날 용기가 없다는 것과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힘들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떠나기를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지인들에게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책을 읽고 생각해 보니 너무 맞는 말이었다. 떠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여행이 일상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저자 또한 그랬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생활이 일상이 되길 꿈꿨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은 평생에 걸쳐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잠시 짬을 내어 마시는 커피에 한숨을 돌리고, 학원에 가는 길에 새벽이슬에 젖은 나무에 감사해야 한다고.
오늘의 일상을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떠난 어딘가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려고 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떠났을 때 더 행복한 추억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 중국의 시
찍다: 눈의 기록
남들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사진과 비교하며 초라해진다. 어쩜 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 탄복을 하면서 그 실력에 욕심을 낸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로 이 욕심은 더해가기만 할 뿐 줄어들진 않는다. 아마 평생 그렇게 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평생 잘 찍지 못할 것이다. 평생 잘 찍는 누군가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할 것이다.
p.156
많이 공감 가던 부분이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 이후로 초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에디터분들이 기고한 글과 나의 글을 비교했다. 비교가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교한다고 내 글 실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좋은 글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면서도. 손은 이미 다른 에디터분들의 글을 클릭하고 머릿속으로 나의 부족한 점을 떠올렸다.
그래서 유난히 공감이 갔다. 평생 잘 찍지 못할 거라는 것. 그리고 평생 누군가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할 거라는 것.
하지만 저자는 찍는 순간만큼은 나만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안하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글을 쓰며 비교를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제는 지금의 이 기록들이 나만의 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야겠다.
배우다: 몸의 기록
계속했으니까 안 거다.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안 거다. 지치지 않았으니까 그 열매를 맛본 거다. 지쳐도 계속했으니까 그 순간의 단맛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이게 뭐가 될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뭐가 될 거라고 기대를 했다면, 꿈에 부풀었다면, 내 손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p.220
저자는 1년간 도예를 배웠지만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중심 잡기에 매일 실패했다. 하지만 어느 날 드디어 중심 잡기에 성공했다. 그날도 어느 때와 같이 늘 선생님이 하시던 말을 생각하며 흙을 만졌는데 드디어 그 말을 이해한 것이다. 그때 선생님이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더닝 크루거 효과가 떠올랐다. 더닝 크루거 효과란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은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처음 배울 때는 스스로 잘하는 것 같은데 생각하다가도 배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닝 크루거 효과의 절망의 계곡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몇 번이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타다 보니 어느 순간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것처럼.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절망의 계곡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든 절망의 계곡을 넘어서면 깨달음을 맛볼 수 있다. 지금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쌓아온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믿으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모두가 절망의 계곡을 극복하고 깨달음의 오르막을 마주하기를 바라며.
좋은 글을 위해서
책을 읽으며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지만 기록은 왜 하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기록은 내 감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감정을 똑바로 바라본다면 안 좋은 감정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을 정리해야 또 다른 새로운 좋은 감정들이 들어올 수 있다.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2025년에 기록을 꾸준히 하겠다는 장담할 수는 없다. 그건 매년 반복했던 후회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갑자기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글을 기고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처럼 멋지고 좋은 글을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려고 한다.
2025년 다이어리에는 2024년 다이어리보다 더 많은 글이 적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며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임채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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