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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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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연말 오스트리아에서 처음으로 에곤쉴레를 마주쳤다. 클림트를 보러 온 벨베데레 궁전에서 유독 그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에 대해, 미술사조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계속 눈이 가고 본능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이어 레오폴트 미술관에서도 에곤쉴레의 그림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왜였을까. 아마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장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가이기 때문이었을까.

 

그중에서도 계속 서성이던 그림이 있다. <포옹>은 여성과 남성이 사랑을 나누는 강렬한 포옹이 나체로 표현돼 있던 그림이었다. 당시 같이 보던 관람객들까지도 쓱 훑고 지나가는 그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끌려 사진에까지 담게 되었다. 이보다 사랑을 더 진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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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그린 화가들> 책 표지엔 내가 좋아했던 <포옹>이 앞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사랑이 잘 느껴지는 그림과 '사랑을 그린 화가들'이란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명화를 다루고 있다. 이창용 도슨트의 신간인데, 그는 루브르, 바티칸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했고 미술 작품에 대한 다양하고 재밌는 관점과 해설을 들려준다.

 

작가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림 속에 담긴 숨겨진 사연을 소개하여 작품너머 작가의 마음과 그림의 비밀들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내가 그림에 끌렸던 이유를 찾을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사랑을 그린 화가들>은 때로는 비밀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자신의 분신 같은 작품에 화가들이 담아 둔 마음의 흔적을 들여다본다. 라파엘로, 렘브란트, 클림트, 뭉크, 에곤 실레, 프리다 칼로, 이중섭 7인의 화가가 남긴 사랑에 대한 걸작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다 : 에곤 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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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쉴레는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호불호가 강한데, 작품 속 등장하는 성적인 장면이 누군가에게 예술이 아닌 포르노처럼 다가가기 때문이다. 에곤실레는 그 누구보다 많은 누드화를 그렸고 강박적으로 에로틱한 장면들을 많이 담아내었다.

 

그는 고대의 정숙한 누드화가 아니라 성기를 드러내 보이고 불편해 보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드를 그린다. 클림트의 상징주의적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표현주의적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무의식'엔 모든 행동의 기저에 관여하는 성적 충동과 내면의 본능처럼 감춰져 있는 성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전까지 회화에서는 의식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이상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에곤 실레는 대상의 내부에 있는 무의식적 욕망을 표현하려 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대상을 새롭게 해부했다. 에곤의 그림을 다양한 표정, 불편해 보이는 자세, 말라 비틀어져 있는 육체로 그리고, 특정부위를 생략하거나 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현실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몇몇 이들에게 거부감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곤 실레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성욕을 감추지 않고 표출하려고 노력했다. 무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큰 욕망인 성욕은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성적인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성욕은 절제하고 고풍스럽게 그리는 것이 당연시한 사회였다. 예술에서도 이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끄럽고 추악한 것이었다.

 

에곤실레는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된 시선에 반발했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당당히 그렸고, 당시 병리학적인 관점에서 병으로 취급했던 자위행위까지 작품에 담아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렜던 그는 '발레리 노이질'이란 뮤즈를 만나 한층 성숙해진다.

 

클림트의 작업실에서 알게 된 둘은 서로에게 푹 빠져들어 동거를 시작한다. 그녀와 함께 지낸 4년은 에곤 실레가 가장 많은 작품을 그렸던 시기다.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어주었고 <추기경과 수녀>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수녀 또한 그녀가 모델이었다. 발레리는 연인 이상의 의미였다. 그녀는 실레의 뮤즈이자 전속 모델이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분도 도맡는다. 그가 창작활동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작품 관리와 판매를 하고 훗날 에곤 실레에게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도 구명에 큰 역할을 한다.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소도시 '크루마우'에 머무는데, 당시 미성년자였던 발레리 노이질과 동거를 하고 누드화를 그리던 에곤 실레는 마을사람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쫓겨난다. 그 이후 조용한 시골마을 노이렌바흐에 정착하지만 논란이 일게 된다. 에곤실레는 어린 소녀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번에도 거리의 소녀들을 작업실에 초대해 성적인 모습을 그리곤 했다. 소녀들이 작업실에 자주 찾아가게 되자 마을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결국 1912년 4월 13일 에곤실레는 미성년자 납치 및 음란 행위로 재판을 받게 된다. 발레리가 이때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후원자 아르투어 뢰슬러를 찾아갔고, 최상찰을 사이에 두고 위로를 하며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었다. 또한 불리한 증언이 나오지 않도록 소녀들에게도 찾아간다. 20년 이상의 중형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판사의 재량으로 실레는 가장 논란이 되는 작품 1점이 불태워지고 3일간의 추가 징역형이 선고된다. 이에 실레는 "예술적 독특함이 있다면 그 작품은 외설이 아니다. 외설적인 감상자가 볼 때 그렇게 된다."는 말을 일기에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에곤 실레는 이전보다 더 유명해지고 명성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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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연습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듯 에곤 실레는 중산층 에디트와 결혼을 하기로 한다. 결혼을 위해 발레리와는 이별한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직후 <죽음과 소녀>를 그리는데, 밀어내며 관계가 끝났음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도 오스트리아에서 관람하며 마음 한쪽이 아려오는 작품이었다. 작품 속에서 발레리의 손은 너무나 얇고 병약해 보이다. 손가락 하나로 안고 있는 위태로워 보이는 포옹은 곧 끊어질 것만 같다. 에곤은 텅 빈 눈으로 그녀를 안고있다. 다정한 듯 보이지만 한 손으로는 그녀를 밀어내고 있다. 또한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제목을 <남자와 소녀>에서 <죽음과 소녀>로 변경했는데, 슬픈 감정과 실레가 그녀에게 가졌을 미안함이 겹쳐지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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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레는 결국 에디트와 결혼을 하게 되고 <포옹>이라는 작품을 그린다. 시기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결혼 4일 만에 입대를 하게 되지만 화가라는 직업이 인정되어 후방 행정병으로 배치됐고, 상관의 배려로 여유시간에는 그림까지 그릴 수 있었다. 안정된 가정과 여유로운 환경이 갖춰지자 그의 그림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포옹>은 가로 1.7m에 인체 실물 크기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전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톤이 화사해졌고, 선은 부드러워졌다. 연인은 서로를 강렬히 끌어안으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가 에디트와 결혼생활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 전해진다.

 

<죽음과 소녀>와 달리 이제는 불편해 보이는 자세에서 안정적이고 편한 자세, 부드럽고 보기 좋게 통통하게 사람을 그렸다. 에곤 실레에게서 볼 수 없었던, 처음 보여주는 포근한 사랑의 모습이었기에 더욱 진심으로 와닿는 작품이었다.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이면서 고통이고 어렵고 아프고 외로운 감정이다. 거장들도 같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도 역시 사랑에 빠지고, 설레고, 행복한다. 또 때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외롭고, 아프고, 방황한다.

 

<사랑을 그린 화가들>은 세계적 화가들이 남긴 작품에서 사랑의 일대기를 찾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사랑이 불행하고 힘들고 비난받아 마땅한 감정이었을지라도, 마음속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행복해질 것이다. 서투른 사랑을 추억으로 남기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사랑을 할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진솔하게 다룬 가장 아름다운 책이었다. <사랑을 그린 화가들>로 거장 7인의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진심을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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