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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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좋은 단편을 소개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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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끝이라는 근사한 판타지


 

연말을 앞둔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뜨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한 해가 끝난다는 뒤숭숭함은 잠시, 화려한 트리와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장식된 거리, 길거리를 울리는 캐롤, 추운 날씨에도 환하게 웃으며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들뜨기 마련이다. 이 많은 사람이 끝을 기념하고 있구나, 하고. 또한 연말에는 연말이라는 이유로 간간이 연락만 하던 누군가, 혹은 연락이 끊 누군가와 만나기도 한다. 연말 모임, 시상식, 축제 등등. 어렸을 적 산타(로 가장한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았던 기억까지 떠올리면 이 기간은 정말 근사한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12월은 참으로 기묘하게 지나간다. 하루하루 지나간다기보다는 4~5일씩 뭉텅이로 지나가는 것 같다(특히나 올해는 12월 초부터 큰일이 생겨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와 1월 1일이 일주일 차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연말'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1년 12개월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지금은 어떻게 지나갔을까.


끝은 형식일 뿐이다. 형식이 마치 그 내용인 것처럼 생활에, 삶에, 문화에 굳어진 게 연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형식이 무언가를 끝맺게 하고 무언갈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장 구분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책이라면, 사람들은 애초에 읽기를(혹은 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끝을 생각하고 감각함으로서 무언갈 마무리할 힘(추진력)을 얻는다. 늘어지게 해오던 무언가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거나 아예 놓아두었던 무언갈 다시 붙잡는다(마감도 그런 의미다). 끝은 무언갈 끝낼 수 있게 하며, 사람을 여전하지 않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무언갈 끝맺지 못한 채로, 그 무언갈 지지부진하게 끌고 오기도 한다.

 

 

 

연말, 다른 말로 신춘문예의 시즌


 

조수경의 단편 <크리스마스이브 이틀 전>*은 나에게 기묘하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신춘문예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춘문예는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응모를 받고 12월 중순에 개별 연락이 간다. 그러고 새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작품이 발표된다. 시작의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는 신춘문예는 몇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문학 등용문이다. 어디선가는 신춘문예용 글이 있다느니, 신춘문예는 작가 지망생들의 지옥이라느니 말하지만, 좋은 글을 발굴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통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도 올해 신춘문예를 응모했다. 될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아서 잊고 있다. 그 상태로 연말에 이 소설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소설의 주인공 '미림'은 신춘문예에 벌써 세 번째로 응모했고 당선될 거라는 확신과 되지 않을 거라는 불신 사이에서, 핸드폰이 먹통이 돼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괜스레 초조해하며 카페에 앉아 12월 22일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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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 앞에는 '상지'가 앉아 있다. 상지는 몇 년 전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이자 먼 친척 사이로, 알고 지낸 지도 몇십 년은 되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진 카페에 앉아 있다. 연말이라고 모인 걸까? 그렇긴 한데, 아니기도 하다. 연말이라서, 라기보다는 신춘문예 시즌이라 모인 것이다. 미림에게 연말의 설렘은 온데간데없다. 미림은 초조할 뿐이다. 반면 미림을 바라보는 상지는 지겹다.


 

 

상지가 보기에 미림은


 

상지가 보기에 미림은 무례한 사람이다. 자신을 이렇게 불러내고서는 테이블에 놓인 샐러드를 마구 뒤적이는 것이며, ‘인사할 때, 눈이 마주쳤을 때…… 그럴 때만 잠시 웃고,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무표정으로 바뀌는‘, ’웃는 게 아니라 웃음을 사용하는’(176)** 표정도 그렇고, 언니, 하고 부른 뒤 침묵해서 불편하게 하는 것도 그렇고.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들지? 생각하면서 상지는 미림과 지냈던 시간을 회상한다. 외할아버지의 칠순 잔칫날, 의사 집안인 외가와 다르게 친가 사람들이 식사 예절도 모르고, 말투도 다르고,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재빨리 가방 안에 넣는 것'을 못 견뎌 '아버지 쪽 식구들 근처에는 가지고 않'고 '외가 쪽 사촌들'(173)과 어울렸던 그날, '미림 역시 상지가 앉아 있는 쪽에 오지 않았'던 그날을 떠올리며 '저게 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래'하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다 미림과 대화를 나눌 때 묘하게 불쾌했던 원인을 찾는다.

 

 

그런 애가, 자꾸 자신을 따라하는 것이 기분 나쁜 건지도 몰랐다. (172-173)

 

 

상지는 작가가 되고 싶어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소설가가 되었다. 그렇게 상지가 등단하자 글쓰기와는 완전히 먼 삶을 살고 있던 미림이 소설을 쓰겠다고 하고서는 소설을 들고 와 피드백을 부탁했던 것이다. 상지는 '풍선처럼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미림을 바늘로 쿡 찔러 터뜨리고 싶은 심정'(174)으로 미림의 소설을 미림이 말한 대로 '솔직'하게 평가한다. 미림은 상처받은 것 같으면서도 꿋꿋이 소설을 고치고 신춘문예에 내고 언제쯤 연락이 오냐고 상지에게 물어본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미림은 '한동안 예민하게 굴'(175)었고, 마음이 가라앉은 뒤로는 신춘문예와 등단, 문단을 비꼬는 말을 서슴 않는다. 그것도 당사자 앞에서. 그러다 다시 11월이 오면 '문학앓이'(176)를 하며 소설을 쓰고, 상지에게 연락을 해오는 것이다. 그게 벌써 세 번째다.

 

미림이 열등감을 느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던 상지는 자신의 열등감을 떠올린다. 등단했지만 활동이 뜸해진 자신과 달리, 같은 해 다른 지면에서 등단한 과 후배 '영인'이는 책까지 내며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상지는 작품을 발표할 길이 없어서 출판사 몇 곳에 메일을 보내고선 기한 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그러고 보면 상지의 처지는 미림의 처지와 그닥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런 상지에게 미림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또 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옆자리 아이가 떨어뜨린 동전의 날카로운 소리 때문에. 상지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이종사촌인 '지나 언니'의 동전을 훔쳐 간 게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일찌감치 떠난 미림이라고 말한 걸 떠올린다.

 

 

상지는 마음이 급해졌다. 허둥거리던 마음속에서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 하나가 곧장 튀어나왔다.

“미림인가 보다.”

지나 언니는 그제야 상지와 눈을 맞추었다. 상지는 전날 지나 언니가 미림의 낡은 옷이나 해진 양말을 보고 몇 번인가 인상을 찡그리는 걸 목격했다. 언니가 원하는 답을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들떴고, 혓바닥이 춤추듯 움직이며 제멋대로 말을 쏟아냈다.

“걔가 훔친 게 분명해. 원래 걔가, 도둑년이거든.” (179-180)

 

 

미림이 훔쳤다는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상지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으며, 그렇게 지나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졌다. 물론 그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지나 언니에게 받아먹은 초콜릿을 게고 말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상지는 생각한다.

 

 

애쓸 필요 없지.

상지는 생각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상지와 미림은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었다. 피곤하게 굳이 맞추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먼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더 가까운 친척도 안 보고 잘 사는데, 그건 정말 아무 상관 없었다. (181)

 

 

 

미림이 보기에 상지는


 

한편 미림이 보기에 상지는 재수 없는 사람이다. 상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미림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미림은 상지나 친척 어른들 앞에서는 상지를 꼬박꼬박 ‘언니’라고 불렀지만, 가까운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걔’라고 칭했고, 가끔 속으로 ‘그 계집애’ 혹은 ‘그년’ 할 때도 있었다. (181)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상지가 어떤 실수를 저지른 타이밍에 상사가 들어왔는데, 미림이 고개를 숙여 사과한 반면 상지는 그 옆에서 애교스럽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한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미림은 생각한다.

 

 
재수 없고 오만한 계집애. 미림은 상지가 앉아 있던 자리를 노려봤다. 빈 의자는 뒤에 세워진 벽면과 맞닿을 만큼 테이블에서부터 한참 밀려 있었다. 미림은 상지의 그 여유로움이 싫었다. 어디에서나 사랑과 관심을 받아온 사람만이 갖고 있는 느긋한 자신감. 그건,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182-183)
 

 

더더욱 재수가 없어진 것은 상지가 등단했을 때였다. 축하의 마음과 약간의 시기심이 뒤섞인 상태로 상지의 소설을 읽은 미림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183)릴 정도로 놀란다. 상지의 소설에 자 삶이 적혀 있었다.

 

 

화가 나고 속이 끓는 한편, 그런 게 소설이라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상지가 가장 무시하는 사람인 자신이 해냄으로써 완벽하게 깨부수고 싶었다. 미림은 아주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지가 미림의 얘기를 함부로 썼던 것처럼, 미림도 상지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184)

 

 

복수의 의미로 시작했던 소설에서 의외로 재미를 느낀 미림은 매년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되었다. 마치 복수를 꿈꾸던 사람이 그 복수의 에너지로 다른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이 아이러니. 아이러니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림이 처음 신춘문예에 도전했을 당시, 상지가 미림의 소설을 보고도 거기에 자신이 삶이 쓰여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형편없는 소설'(174)라고 평가한 부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상지는 미림이 자신을 따라 하고 있다고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미림이 자신의 삶을 소설로 썼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복수의 대상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복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림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엔 상지에게 전화해 카페에서 같이 신춘문예 전화를 기다려달라고 부탁까지 해버린다.

 

그때 카페 스피커에 울리던 음악이 끊긴다. 배경음이 사라지자 들려오는 진짜 배경음에서 미림은 한편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울리는 멜로디를 듣는다. 그 멜로디는 미림에게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상지와 지나 언니와 하룻밤을 보낸 날(앞에서 상지가 회상했던 그날인 듯하다). 지나 언니가 상지에게 선물한 오르골을 한번 만져보려던 미림은 상지로부터 거부당한다.


 

미림이 태엽 쪽으로 슬쩍 손을 뻗었을 때, 상지가 그 손을 밀어냈다. 상지는 입술을 조금 내밀고 단호한 표정으로 잠시 미림을 쳐다봤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미림은 상지의 얼굴에서, 넌 안 돼, 하는 표정을 읽었다. 그 표정을 보고 미림은 상지와 아주 먼 친척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186)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빠져나온 미림은, 맨홀에 이르러서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갈 버린다. 그것은 오르골의 톱니바퀴다. 그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한동안 상지의 집에 가지 못한 미림이지만, 지금 미림은 이런 생각도 한다.


 

그래도…… 내 생애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어. 미림은 생각했다. 어쩌면 톱니바퀴는 아직도 그 맨홀 바닥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몰랐다. 이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녹이 슨 채로. 전화가 올까. 미림은 오래전에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었다. (187)

 

 

 

끝의 응시


 

상지와 미림의 전개가 굉장히 비슷하다. 어찌 보면 도식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그 세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심리적 특징이 있다. 상지와 미림은 상대방의 못난 부분을 알 뿐이지, 상대방이 보는 자신의 못난 부분은 모르고 있다. 상지는 때론 재수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여유로움을 갖고 있으나 그걸 전혀 모르고, 미림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 싶을 정도로 무례하게 굴지만 전혀 모른다.

 

오히려 상대를 통해서야 자신의 못난 부분을 알게 된다. 상지는 미림에게서 자신의 열등감과 미림을 향한 미움, 도둑으로 몰고 간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미림 또한 상지에게서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복수와 상지를 향한 미움, 아꼈을 오르골의 톱니바퀴를 버린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상대방을 미워하면서도 마냥 미워하지는 못하듯이, 자신의 미운 부분을 알면서도 그걸 완전히 미워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미움을 애써 상대방에게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또 완전히 돌리지는 못하고 있기도 하다. 상지와 미림의 관계는 마치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울처럼 끝없이 서로를 비추고 반사하고 있다.

 

'먼 친척'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그들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2월생인 미림이 4개월 빨리 태어난 상지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런 단어들이 어울리지 않는 그들을, 서로의 못난 부분만 발견할 줄 아는 그들을 계속해서 묶어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 사이로 묶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갈팡질팡하지 않고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고 이 관계를 개선했거나 미리 이 관계를 끝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이틀 전의 카페라는 배경에도 이질적인 요소가 많다. 바깥은 연말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사 현장이고 하늘은 '꽤 불길한 색채'(170)를 머금고 있다. 내부는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져 있지만 옆 테이블 아이가 동전을 매만지는 소리로 시끄럽다. 편해야 하지만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그들은 결국 그들의 끝을 응시하게 된다.


 

상지는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상지가 기다리는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춥고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았다. (181)

 

미림은 트리에 매달린 전구를 응시했다. 전구는 플래시를 연달아 터뜨리는 수십 대의 카메라처럼, 빠르고, 불규칙하고, 불친절하게 반짝거렸다. 미림은 그것이 캐럴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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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면


 

끝은 형식일 뿐이지만, 누군가는 그 끝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한다. 여태까지가 전부 좋서, 놔주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걱정되는 경우는 그 반대의 경우다. 여태까지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놔주고 싶으나 거기에 깊이 빠진 사람.

 

그런 사람은 두려워한다. 그 끝이 이야기의 전부를 결정할까 봐. 시작이 어땠 간에 끝이 그 이야기의 전부로 기억될까 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상지와 미림의 관계처럼 이런 끝도 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런 끝을 이렇게도 부른다. 이미 끝나버린 관계. 그들은 지금까지 무슨 관계로 남아 있었던 것일까. 무력하겠지만 거기서 멈춰 있지 말고 벗어나야 한다. 그건 늪처럼 보이지만 허위에 다름 없다. 그런 허위의 관계는 서로의 삶을 침범하며 각자의 삶을 더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끝을 잔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번에 끝나버리는 것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것이 더 잔인하다. 그것은 지속이라기보다는 지연이다. 세상엔 아름다운 끝만 있지 않다. 지저분한 끝, 치사한 끝도 있다. 내 스스로가 미워지는 끝도 있다. 그러나 벗어나려면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장, 펼치기 전까진 거기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모를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내년이 그런 '다음 장'이 되었으면 한다.

 


*조수경. (2017, 2). 크리스마스이브 이틀 전. 문학들,(47), 16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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