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준수 표' 완창 판소리를 만들어 내다 – 김준수의 수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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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김준수의 수궁가>가 상연되었다. 완창 판소리 공연이었으며, 대개 완창 판소리의 경우 가령 ‘김준수의 미산제 수궁가’라는 제목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데 반해, 이번 공연 제목에는 김준수가 완창하는 수궁가의 제인 ‘미산제’를 붙이지 않았다. 김준수는 이미 2018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완창 판소리> 공연에서 <수궁가> 첫 완창을 마쳤고, 이번이 두 번째 <수궁가> 완창이다. 그는 국립극장 <절창 1>에서 유태평양과 함께 미산제 수궁가를 각색해 공연을 선보였으며, 다수의 행사에서 수궁가 눈대목을 열창한 만큼, 이미 수궁가는 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산제 수궁가는 상·하청을 넘나드는 음과 시김새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준수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장 첫 번째 소리인 만큼, 김준수가 가지고 있는 소리의 특징과 매우 잘 맞는 작품이다. 김준수의 소리는 화려한 시김새가 강조되면서도 상·하청을 자유로우면서도 단단하게 오간다. 특히,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정제된 발림(너름새), 그리고 인물에 따라 각기 다르게 소리하는 연기성이 돋보인다. 그는 스승 박금희(본명 박방금) 명창에게 <수궁가>를 사사받아, 전라남도 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이자 현재 국립창극단 창악부 부수석 단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프로그램은 1부 ‘용왕탄식’부터 ‘토끼 용궁 가는 대목’, 2부 ‘토끼 잡아들이는 대목’에서 ‘더질더질’까지로 이루어졌으며, 180분가량 진행되었다. 고수로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이수자이자 우리소리 바라지 동인인 이준형이 함께 했다.
김준수는 올해 7월, 전주 우진문화공간의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에서 수궁가 반창을 선보인 적이 있다. 당시에도 기존의 완창 판소리에서 보여지는 소리꾼들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김준수만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대개 (완창)판소리에서 소리꾼은 최소한의 발림만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연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오로지 소리에만 집중하는 데 반해, 김준수는 ‘판소리’가 ‘소리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인 만큼, 창극 배우답게 자신만의 연기와 발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진 제공 (@pencil.kim)
이번 수궁가 완창은 전주에서 진행되었던 반창의 완성작이었다. 김준수의 노래뿐 아니라 연기, 발림은 철저한 계산 아래 이루어졌다. 3시간가량 진행되는 공연으로,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꾼 혼자서 무대를 채워나가며, 관중을 압도하면서도 소통을 이뤄내야 한다. 즉, 소리꾼은 고수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는데, 김준수는 소리가 늘어지거나, 이야기 전개가 더뎌 조금 지루해져 분위기가 가라앉으려고 하면, 특유의 재치 있는 몸짓, 그리고 고수와의 적극적인 호흡을 전개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관객이 자신에게서 조금이라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사로잡는 영리한 모습이었다. 그는 한복의 나풀거리는 의복 자체의 매력을 한껏 살리면서 매력적이면서도 정제된 연기와 발림을 선보였다. 가령, 용왕의 아니리에서는 늙은 목소리와 노인과 같은 움직임, 자라 부인의 아니리에서는 여자의 목소리와 치마를 감싸는 동작을 선보이며, 각 인물에 따라 다른 소리와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수궁가의 유명한 눈대목인 ‘범 내려온다’에서는 무대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호랑이가 위협적인 움직임을 가하며 오는 것처럼 날라오기도 하고, 토끼를 놓친 자라의 서글픈 심정을 노래할 때는 바닥에 주저앉아 마치 세상이 무너진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발림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다.
김준수는 하청보다 상청에 특화된 소리꾼이지만, 하청도 기가 막히게 잘 낸다. 더불어 정대하면서 화평한 평조, 씩씩하고 단단한 우조, 슬픈 계면조와 같이 판소리의 ‘조’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다채로우면서도 풍부하고 세심한 소리를 완성해 냈다. 김준수는 연기, 재담 그리고 소리의 완급 조절까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하게 해냈다. 단순히 화려하게 보이는 발림이나 시김새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내실이 탄탄한 소리꾼임을 증명했다.
발림의 극적 효과는 19세기 후반 정현석과 신재효를 통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사설, 소리, 추임새, 현장 등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총체적 표현 양상으로 간주되었다. 발림의 연행 원리로는 추상화의 원리(상징화, 관습화), 사실성의 원리(사실주의), 소통의 원리(정서적 감흥)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발림은 개별 공부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발림은 오랜 수련과 자신만의 양식이 만들어져야 하는 만큼, 판소리를 공연 예술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자, ‘판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김준수는 다리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한복을 골라, 팔뿐 아니라 다리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며, 자신만의 신체적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양식화함으로써 ‘김준수만의 발림’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의 발림은, 유연하면서도 매끄럽게 이어져 마치 한 폭의 춤을 보는 듯했다. 이렇게 그는 자신만의 발림을 통해 판의 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단순히 소리판이 아닌 하나의 공연예술로 만들었다. 그에 상응하듯, 관객과 고수는 창자와 함께 신명 나게 판을 즐길 수 있었고, 관객의 눈과 귀는 쉴 새 없이 즐거움을 만끽했다.
사진 출처 (서울돈화문국악당 유튜브)
더불어, 고수와의 호흡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김준수의 수궁가>에서는 1인극 형태로 볼 수 있는 판소리에서 마치 고수와 함께하는 2인극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고수 이준형은 김준수에게 굉장히 잘 맞추어주었고, 김준수가 그를 보고 아니리를 건네면, 이준형은 쑥스럽다는 듯하면서도 호쾌하게 웃으며 북장단을 이어 나가거나, 추임새 혹은 재담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소리를 하는 김준수의 모습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이 계속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 이준형의 모습에, 웃음은 관객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전파되며 호쾌한 판소리 판이 벌어졌다. 더불어 이준형의 북소리는 김준수의 창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는데, 완급조절과 강약 조절을 능숙하게 함으로써 김준수의 소리가 돋보일 때와 자신의 북소리가 돋보여야 할 때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그대로 표현했다. 맑으면서도 힘 있고, 말 그대로 박자를 가지고 노는 그의 북소리는 김준수와 최상의 호흡을 만들어냈다.
사진 제공(@pencil.kim)
김준수가 부채를 이용하는 모습은 다른 소리꾼과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였다. 그는 판소리에서 ‘(쥘)부채’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였다. 소리꾼에게 부채는 뗄 수 없는, 소리꾼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물건이며, 부채는 여러 물건이나 인물 등으로 분한다. 김준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부채를 던지거나 깔고 앉는 등의 행위를 통해 인물의 감정 표현을 더욱 극대화했다. 김준수의 부채는 종국에 가서는 약간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 형태를 보일 정도로, 극이 전개되는 동안 김준수와 함께 호흡하며, 발림과 함께 극을 완성하는 요소로서 그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 또한, 그는 또 다른 손에 쥔 손수건 또한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서신을 볼 때 손수건을 펼쳐서 종이처럼 사용하는 등 부채와 더불어 또 하나의 소품으로 이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리에 집중하던 ‘정통’ 완창 판소리의 흐름과 달리, 김준수는 ‘소리꾼’이라는 정체성 이외에 ‘창극 배우’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듯, 앞서 언급한 연기와 발림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자신만의 ‘김준수 표’ 완창 판소리를 만들어냈다. 더 이상 완창 판소리는 재미없는, 혹은 지루한 것이 아니다. 김준수는 관객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창자와 관객이 함께 웃으면서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판’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완창 도중 대사 실수가 몇 번 있었는데, 관객이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관객이 추임새뿐만 아니라 대답을 하기도 하는 등 공연 내내 유쾌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발림과 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완창을 보여준 탓인지, 2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자, 김준수는 다소 지쳐 보였고, 목이 살짝 간 듯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시김새가 길게 이어지는 부분에서 소리가 살짝 끊기기도 하고, 하청 부분에서는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지금까지 갈고닦은 실력으로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오히려 살짝 간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서 그것을 뛰어넘는 강단 있는 소리가 나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 이후에는 특유의 테크닉으로 잠깐 보여주었던 다소 아쉬웠던 지점을 모두 보완해 나갔으며, 마지막 대목인 ‘더질더질’까지 잘 마무리했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북이 말라서 고수가 여러 차례 북에 물칠을 할 정도로 건조했던 공연장 내부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김준수는 의상까지 극의 내용에 맞게 준비하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1부는 용궁과 자라에 초점에 맞춰지는 만큼, 안쪽 두루마기는 짙고 푸른 색상의 한복을, 겉에는 맑은 하늘색으로 된 얇은 두루마기를 걸쳐서 마치 드넓은 바다를 연상시켰다. 2부 한복은 안쪽 의상은 민트색, 바깥 의상은 연보라색이었다. 이는 2부는 ‘토끼’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토끼가 용궁에서 살아 돌아와서 육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개되는 만큼 육지를 상징하는 초록색과, 처음 토끼가 자신을 ‘퇴 선생’이라고 자라에게 소개하는 대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유생을 떠올리게 하는 비단을 겉에 더해 입은 듯했다.
신재효가 지은 <광대가>에는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라는 4대 법례가 나온다. 인물 치레는 공연자의 외모상의 됨됨이를 말하고, 사설 치레는 공연자가 하는 공연의 문학적 표현 능력을, 득음은 음악적 표현 능력, 너름새는 연극적 표현의 역량을 말한다. 김준수는 이 네 가지를 모두 골고루 갖춘 소리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문학적, 음악적, 연극적 표현력으로 채워진 <수궁가>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다. 모든 움직임과 노래, 연기는 철저히 계산된 중용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것이 그가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배우이며, 항상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이유가 아닐까. 다음 완창 예정인 <춘향가>에서는 또 어떻게 ‘김준수만의 춘향가’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바이다.
* 최혜진, 「판소리 너름새의 역사적 추이와 연행 원리」, 『우리문학연구』49, 우리문학회, 2016.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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