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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님은 동화책에서 나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수식어가 되었다. 그때는 백마 탄 왕자님은 온갖 좋은 걸 다 가진 멋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보기 드문 하얀 말을 가질 수 있는 재력, 왕자라는 명예와 권력, 그리고 출중한 외모와 낭만까지. 그런 헛된 이미지에 오랫동안 사로잡혀있었다. 시간이 흘러 왕자는 커다란 나라가 아닌 수도 없이 많은 작은 왕국 출신이란 걸 알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엘라 피츠제럴드의 ‘섬데이 마이 프린스 윌 컴’을 듣는 어른이 되었다가 이내 왕자의 환상 따위 필요 없는 걸스 두 낫 니드 어 프린스 표어의 시대의 1인이 되었다. 내 세대에게 백마 탄 왕자를 물으면 아마 비슷한 대답이 나올 듯하다.


책의 제목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라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왕자님, 정무 수행은 어쩌시고 국경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한적한 곳을 그렇게나 지나다니신단 말입니까.


첫 장을 펼쳤다. 카노사의 굴욕에서부터 베스트팔렌 조약까지 나온다. 꽤 본격적으로 서양사를 다룰 것 같아 겁먹었는데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냈다.

 

작은 왕국의 차남들은 가문을 물려받는 대신 부모님이 사준 성직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영지도 딸려있고 수입도 보장되고 정치 참여까지 가능하니 면을 살려주면서 먹고 살 걱정도 덜 수 있다. 때문에 황제와 교황이 성직자 임명권을 가지고 싸우는 카노사의 굴욕이 언급되는 거였다. 백마 탄 왕자님에서 카노사의 굴욕까지 이토록 가깝다니. 아니다, 아직 왕자님은 말에 올라타지 않았다.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공동 왕이 되기 위한 차남들의 이야기. 마상시합에 참여하거나 기사 수련 생활을 하면서 모험을 떠난다. 예비 장인장모님이 사위를 위해 짜고 치는 시합의 우승자로 만들기도 하고. 자주국방을 위해 무예가 출중한 기사 출신 사위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뛰어난 인물은 세상에 많지 않다. 그랬구나, 백마 탄 왕자님은 가문을 물려받을 장남도 아니고 이웃 왕국 공주님의 마음을 훔친 것도 아니고 먹고살려고 돌아다니는 자들이었구나.


목차를 살피다가 눈에 띈 건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법학개론 시간에 교수님이 샤일록을 예로 들며 이야기했다. 법에서는 ‘사회 통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살을 베어가면 피가 나는 게 당연하니 살만 베어가되 피는 흘리지 말라는 건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이 책에서 샤일록 이름 앞에 붙은 말은 ‘알고 보면 억울한 금융업자’이다. 제목 아래에는 200년간 잉글랜드, 프랑스, 에스파냐에서 각각 ‘유대인을 추방하다‘라는 역사적 사실이 쓰여있다. 그렇다. 서구의 반유대주의 정서가 고약한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이란 캐릭터를 차곡차곡 쌓아 만들었다. 왜 그 유대인이 고리대금업자가 되었는지 배경은 생략되었고 악독한 악인만 인상만 남은 것이다. 이에 저자는 팩트 체크에 들어간다. 셰익스피어는 유대인의 고리대금업이 금지된 이후에 태어나 유대인은 이미 추방당하고 없었다. 베네치아는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은 이걸 몰랐을까, 모르고 덮어놓고 즐기고 싶었을까.

 

편견을 담은 또 다른 이야기로 드라큘라가 있다. 드라큘라와 루마니아를 연결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실존 인물 블라드 3세가 어쩌다 오랜 시간 흡혈귀 악당 이미지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는 역사적 배경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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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름부터 살펴본다. 드라큘라의 드라큘은 용이라는 뜻이지만 악마의 의미도 있는데, 드라큘라의 아버지가 황제에게서 용 문장을 받은 드라큘, 드라큘라는 여기에 ~의 아들이라는 뜻의 a를 붙여 드라큘의 아들 드라큘라가 되었다. 드라큘도 드라큘라도 잔인한 면이 있지만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는 민족 영웅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루마니아의 당시 정적이 드라큘라 악마 설을 퍼뜨렸을까? 우선은 종교부터 짚고 간다. 동방 정교회 신자였다가 군사적 지원을 받으면서 개종했다고 한다. 배신자는 악마로 기록된다. 가톨릭이면서 수도원을 탄압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사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여기서도 악마가 되었다. 그리고 적국 튀르키예. 아버지를 따라 적을 말뚝에 박아 죽이고, 도시를 불태우고, 우물에 독을 풀고, 전염병 환자를 적국에 잠입시키는 세균전도 서슴지 않았다. 외교사절이라고 곱게 대해주었을 리 만무하다. 이러니 악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작가에게 모티브가 되어 편견을 두른 악당으로 재탄생되었다. 발칸반도의 민간 신앙은 미신 신봉으로, 이슬람 영향을 열등한 것이 되었다. 그런 곳의 드라큘라가 매부리코였다니 유대인이겠군, 손에 털이 있으니 웨어울프겠군.

 

이런 책은 전에도 읽은 적이 있다. 빨간 모자에게 늑대를 조심하라고 하는 건 어린 소녀들을 현혹하려는 남자를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걱정을 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회가 어땠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의 시각이 어떠했는가. 편견으로 쓰인 이야기를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들인 건 아닌지 그동안의 수많은 이야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는지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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