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려와 회피의 사이, 릴러말즈와 미노이의 "내일 얘기해" [음악]

기질적 간극으로 사랑에 실패하는 연인들을 위해
글 입력 2024.12.0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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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얘기해 - 릴러말즈, 미노이] 앨범 커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이야기.


"나중에 얘기하자." vs "아니? 지금 당장 얘기해."


연인과의 다툼 후 언제가 가장 화해하기 좋냐는 질문에는 두 답변이 늘 첨예하게 대립한다.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자 감정 정리를 한 후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더 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람들. 이들은 깻잎 논쟁의 대립만큼이나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간극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의견 차이는 대부분 이별의 문턱에 다가서도 잘 좁혀지지 않는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인과의 다툼을 노래한 릴러말즈의 "내일 얘기해"는 2024년 1월 17일에 발매된 감성 힙합/알앤비 장르의 곡이다. 뮤직비디오는 고등학생의 릴러말즈와 미노이의 모습으로 귀엽게 그려지며 줄곧 손등에 상처를 지니고 있던 미노이가 결국 좀비가 되어 릴러말즈를 따라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유머러스한 결말로 그려지지만 이조차 흔한 연인 사이의 모습을 좀비라는 메타포로 그려낸 듯하다. 우리 모두 사랑의 고통에 짓눌리면 좀비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둘이 이야기는 가사에서 상세히 알아볼 수 있다.


 

내일 얘기하자는 말이 어려웠나

피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쁜가

내 말은 싸우자는 게 아니고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건데 

나쁜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너도 알잖아 화난 내 모습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을 닮았다는 걸

참 신기해 섞여 산다는 건

나 사실 나를 버리며 누구를 구하는 일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다고 믿어

그런 사랑은 없다고 모두 이기적이니까

내가 먼저 일 테니까 적어도 나는 그랬어

근데 요즘 나름 일찍 일어나고

스케줄도 확인하고

너가 뭐 먹는지도 궁금한데

이렇게까지 하는데

내 마음을 모르는 너가 답답해

 

 

처음은 릴러말즈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끝없는 다툼에 지쳐 내일 얘기하자며 대화를 끝내려던 그는 자신의 말에 기분이 상한 연인을 보며 의문을 갖는다. '내일 얘기하잔 말이 어려웠나? 이게 피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쁜가?' 더 싸우고 싶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구사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닫아버린 것뿐인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진심을 의심해버리는 연인이 야속하기도 하다. 나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왜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지 그도 연인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잠이 안 와 다시 읽어봐

너와 나눴던 연락

뭐해 밥은 나왔어

잘 자 매일 똑같은 말

당연해져 버린 걸까

편안해져 버린 걸까

내가 변한 건 아닐까 

날 사랑하긴 할까

내일 얘기하자는 너의 말이

내겐 어떤 의미인지 말하자면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

쓸데없는 얘기까지 하고 말았어

듣고 싶지 않아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맘에도 없는 말

또다시 돌아가 우린 말하지

피곤해 그만 얘기하자


 

릴러말즈의 말에 상처받은 미노이는 대화가 마무리된 후에도 과거의 다툼에 머물러 있다. 잠이 오지 않아 그간 했던 연락을 다시 읽어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싸우고 난 후 생긴 불안은 연인을 향한 의심으로 변질되고 그 상황에서 내일 얘기하자는 릴러말즈의 말은 그녀에게 또 다른 불안의 증폭기가 된다. 대화를 끝내는 연인에 어쩔 수 없이 내일 얘기하자며 덩달아 연락을 마무리하지만 아마 그녀는 오늘 밤도 뜬 눈으로 지새우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회피형과 불안형으로 풀이될 때가 있다.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순간 회피형은 릴러말즈의 모습을, 불안형은 미노이의 모습을 띤다. 갈등으로 인한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고자 하며 나아가 대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회피형들은 다툼의 과정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무력해진다. 반대로 불안형은 어떻게든 문제를 당시에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불안형들이 보통 문제의 원인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문제가 지속되는 시간 엄청난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불안형의 숨통을 조인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회피형의 기질도, 불안형의 기질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혼란형이라고 부른다. 나보다 더한 회피형을 만났을 땐 불안형이 되고, 나보다 더한 불안형을 만났을 땐 회피형이 되는 유동적인 사람인 것이다. 둘 다 겪어본 나의 입장으로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나보다 더한 회피형과 관계를 쌓았을 때였다.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글을 쓰며 본인을 묘사했던 것이 좀비였다. 회피형의 남자를 만나며 갈등이 되풀이되는 순간마다 모든 문제를 나에게로 돌렸다. 나에게서 나는 썩은 악취로 인해 그가 힘들어하는 것이고 그가 온전히 나를 참아주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했다. 그가 나를 떠나지는 않을까 매일을 그에게 매달리며 살았다. 마치 관계의 피해자인 양 말하는 듯하지만 전혀 아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또한 나의 반응에 매우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자체의 한마디 한마디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모든 상황을 확대 해석하는 연인에게 어찌 안정된 애정을 느낄 수 있으랴?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대환장 콜라보였던 것이다.

 

*

 

릴러말즈와 미노이는 다행히도 자신들의 관계에 굳건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변하지 않는 건 서로 사랑한다는 거겠지." 우리는 이 가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안정형도, 회피형도, 불안형도, 혼란형도. 사랑할 때의 마음은 모두 같다. 평생 잘 지내자고 하는 마음에 드러나는 표현 방식만 다를 뿐이다. 혹여나 위와 같은 갈등으로 인해 관계에 의심을 갖게 된 연인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그(그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며 입 밖으로 내뱉는 문장의 속내에는 관계의 지속을 향한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변하지 않는 건

서로 사랑한다는 거겠지

욕을 하고

소리 질러도

자고 일어나면

조금 나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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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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