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를 여행하던 중 카탈라니아에서 사는 한 친구가 World Press Photo 전시회를 추천해 가게 되었다.
*카탈로니아: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분리주의 성향이 강함
동굴처럼 아치 형태의 깊숙한 내부로 들어가니 강렬한 색채의 사진들이 드문드문 걸려 있었다. 기후 위기로 빨갛게 불탄 호주의 한 숲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소방관의 얼굴이나, 거품으로 하얗게 표백된 강물에서 물고기를 잡는 아마존의 어부의 모습 등이 담담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중 갤러리 한 벽면을 차지한 한 사진에는 전쟁 속 모든 것이 사라진 황폐한 벌판에서 다 헤진 소파 위에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한껏 엉망이 된 삶에서 그녀는 두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듯했다.
이 사진을 보자 그 말이 떠올랐다. '웃어라, 세상은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넌 혼자 울 것이다.' 그렇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처음으로 마주한 텍스트였다.
살아남은 것은 재해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도, 혹은 짐승만도 못한 인생이라도 살 권리는 있지 않느냐는 혹자의 물음에 이 영화는 끊임없이 거절을 표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웃든 울든 결국 세상은 우리를 버리고 혼자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술 좋아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오대수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 경찰서에 구금이 되기도 한다. 친구 덕분에 겨우 풀려났는데, 한순간 그는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한 사설 감금방에서 15년을 살게 된다.
그 사이 아내는 살해되고 그녀를 죽인 범인이 자신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그는 분노에 이를 갈며 죽지 못해 살아간다. 그는 오랜 세월 끝에 탈출하게 되고 자신을 가둔 우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한다. 복수극이 끝을 향해 갈수록 거대한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게 된다.
사실 '올드보이'는 복수극도, 범죄 영화도 아닌 멜로 영화다. 오대수는 상대방에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내던진다. 아내와 실랑이가 잦았던 오대수는 술에 취해 경찰서에서 하루 종일 난동을 부리다가도 딸의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잊지 않고 챙긴다. 우진은 부모가 아닌 수아를 막연한 사랑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살았다. 오대수가 탈출 후 만난 미도는 어떠한가. 이 둘은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어떻게 이들이 이렇게 빠르고 깊게 사랑에 빠질 수 있냐는 우진의 물음은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허탈한 물음이지 않을까.
우는 법을 잊어버리고 뉴스에 나오는 말투를 따라 하며 낯익은 여자의 얼굴을 따라다닌 오대수는 수없이 의심하면서도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짐승만도 못한 사람은 '온전히' 살 권리가 없다는 것, 우는 법을 잊은 자는 진실로 웃을 수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