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이란 문제 - 묘비 세우기 [도서/문학]

글 입력 2024.12.04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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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좋은 단편을 소개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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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문제는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울 때 인생은 ‘사투’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땐 또 그런 위기가 손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쉽다가도 어려워지고, 어렵다가도 쉬워지는, 그래서 인생은 어떻게 살든 살아지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퀘스트 없는 오픈월드 게임 같다.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 또한 ‘상태’다. 사람은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세상을, 인생을 다르게 보며 살아간다. 그런데 상태는 부단히 노력한다면 제어가 가능하다. 그 노력을 ‘태도’라고 부른다. 만일 인생이란 문제에 정답이 있다면, 그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단어는 태도일 것이다. 인생은 태도로 돌파해야 한다.

  

그 태도는 어떻게 배우는 것일까.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 어른인 사람한테서 배울 수도 있지만 지금 나와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도 배울 수 있다.

 

 

 

재언의 문제


 

‘연주’의 연인인 ‘재언’은 ‘콩벌레’처럼 방어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단단한 외피만 믿고 바싹 움츠러든 채 안전해지기만을 기다리’(218*)듯이 살아간다. 냉동 탑차 일을 하며 겪은 부조리를 꿈에서도 경험하지만, 저항하는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다. 그 일은 그들의 ‘유일한 사치’인 아이스크림 먹기를 저버리게 했다. 싱글컵 아이스크림 두 개가 더블사이즈컵 아이스크림 한 개가 되지 못했던 그날. 규정이 그런데 어쩌겠냐며 싱글컵 아이스크림 두 개를 건네는 재언이 연주는 문득 부조리마저 규정으로 생각하고 반복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진다.

 

그러나 연주는 재언이 먹지 않는 한정 아이스크림을 냉동고에 남겨둔다. 재언이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221)며 ‘매사에 철저한 사람’(226)이자 ‘매 순간 최선을 선택’(230)하는 사람,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231)는 사람이다. 그런 태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재언이 이사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다가도 그들의 현실을 알게 되고선 불쌍해하면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고, ‘무리한 부탁이라도 들어주려고 애’(225)쓰는 모습, ‘고객의 잘못인데도 고객들에게 사과’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226)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주는 ‘그 착함이 과하다’(225)고 생각하기도 한다.

 

착함도 과하면 변질된다. 과한 착함은 직장 사람들한테는 ‘융통성 없는’ 성격으로, 고객한테는 ‘당연한 것’으로 읽힌다. 사회가 견고하게 빚어놓은 공식에는 재언이 고안한 ‘진정성’이라는 함수가 그 이름 그대로 도입되지 못하고 튕겨 나갈 뿐이다. ‘위법’이 진정성을 앞서는 것처럼 거론되고, ‘위법’이란 단어의 불길한 어조는 ‘관행’과 ‘미덕’이란 단어로 아름답게 둔갑한다. 한편에선 그걸 ‘꼼수’라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욕을 하고 잊을 뿐이다. 꼼수이자 미덕이며 관행이자 위법 그 어딘가를 줄타기하던 재언은 그렇게 ‘헌신’하다가 사고로 죽는다.


 

그 헌신이 끝내 재언을 자개장과 함께 운반용 리프트에서 낙하하게 만들었다. 이삿짐을 포장하고 나르는 건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 업무상 과실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자개장은 리프트에 실어도 되지만 사람은 안 된다. 분명한 위법이지만 짐과 사람이 같이 타는 건 일종의 관행이었다. 관행이란 귀찮고 오래 걸릴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끝내는 방법이었고 거절하는 건 불가능했다. (226)

 

 

 

사라진 사람, 남겨진 사람


 

재언이 택한 태도가 재언을 인생에서 내몰았다. 그의 인생은 끝나버렸다. 짐도 정리하지 못한 채. 본의 아니게 다 풀지 못한 문제를 냉동고 속 아이스크림들처럼 오롯이 연주의 몫으로 남겨두면서. 연주는 그의 문제 풀이 과정을 전부 보아온 사람이지만, ‘재언의 죽음은 연주에게 어떤 법적인 책임도’, ‘아무런 권리도 허락하지 않(224)’는다. 그녀에겐 진술이라도 할 수 있는 목격자의 역할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도 없’(227)다. 연주는 사과도 없이 ‘위로금’만으로, ‘유감’이나 ‘애도’도 없는 장례 절차로 연인의 죽음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더블사이즈컵 아이스크림의 절반이 사라져도 그걸 여전히 더블사이즈컵 아이스크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연주는 더블사이즈컵이라는 이름을 뒤로하고 싱글컵으로 돌아와야 한다. ‘서로 다른 맛을 나누어 먹고 싶었는데 혼자서만 꾸역꾸역 먹으면 외로운 기분이 들’(222)겠지만, 재언이 두고 간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꾸역꾸역 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중대한 문제 하나가 연주를 찾아온다.

 

 

 

연주의 문제


 

재언이 처했던 문제가 연주에게 찾아온 것만 같다. 진정성 있는 문제라도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오류’라고 여기는 출판사 사람들은 논란이 된 문제집을 편집한 연주에게 문제 출제자 ‘최선생’을 질책할 책임을 떠넘긴다. ‘반성하는 척’(225)하는 연주는 그 문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안다. 그 문제는 틀린 문제가 아니라 ‘낯선’ 문제다. 사회가 공식화해 온 문제들과 ‘다른’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문제가 되었고,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책임’이 생겨버렸음을 연주는 안다. 연주는 최선생에게 사과문을 쓸 필요는 없지만 ‘정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인의 진정성을 곱씹었던 연주는 어느새 동료의 진정성을 깎아내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최선생의 태도는 재언의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와 다르다. 최선생은 ‘꼿꼿이 날을 세운 채 시시비비를 가리려’(228) 든다. 연주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만 공공연히 그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조급해진 연주는 결국 최선생의 자리를 걸고 최선생을 흔든다.

 

문제를 수습하고 집에 온 연주는 재언의 태도를 떠올리며 이의를 제기한 학생을 생각한다. 익숙한 공식만으로 답이 나오는 문제들에 길들여져 그런 문제만 요구하는 그 학생도 언젠간 자신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연주는 답지가 없어 확인할 수조차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셈이었다. 그녀는 학생이 괜한 엄살을 부리는 것일 뿐이라던 최선생의 말을 기억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학생은 앞으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학 문제들을 풀어야 했다. 설령 그 문제들을 다 풀어낸다 해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에게 풀리지 않은 문제는 풀지 못한 문제가 될 것이고, 끝내 그 문제를 포기했다는 사실만큼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30~231)

 

 

연주는 그제야 재언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남겨진 것들은 주인의 부재를 모른 채 무방비하게’(225) 방을 채우고 있는데, 마치 그것들만이 재언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재언의 짐을 전부 버리려다가 옷 하나를 꺼낸 연주는 더 이상 인생이란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되는 재언에게 묻는다. “재언아, 나 이거 입어도 돼?”(231)

 

마지막에 남은 건 재언이 생전에 먹지 않았던 아이스크림들이다. 재언을 위해 남겨두겠다는 핑계 때문에 냉동고 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한정 아이스크림들. 재언을 위한 배려의 흔적이 재언의 묘비처럼 냉동고 속에 남아있다. 연주가 재언을 위해 세울 수 있는 묘비란, ‘조금만 힘주어 당기면 부러지고 말 플라스틱 숟가락’(231)뿐이다. 연주는 자신의 ‘분수’를 생각하며 그 묘비를 전부 개수대에 흘려보낸다.


 

고작 아이스크림 주제에 묘비라니. 조금만 힘주어 당기면 부러지고 말 플라스틱 숟가락에 지나지 않았다. 분수를 모르는 것 천지였다. (231)

 

 

그날 연주는 재언이 사고를 당한 날에 꾼 것과 똑같은 꿈을 꾼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달려오지 않’(232)는 꿈. 기절할 만큼 피곤해도 인생의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인 건지, 꿈도 여전하다. 다음날 연주에게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최선생으로부터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니 다행’(232)이라는 답장을 받고 재언만 부딪히던 전등에 부딪힌다. 전날 꿨던 꿈이 앞으로 닥쳐올 문제에 관한 힌트를 주고 간 것만 같다.

 

 

 

돌고 돌아 인생이란


 

연주가 재언으로부터 배운 건 인생이란 문제는 어찌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공식들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태도를 택한 재언은 세상을 등졌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던 최선생은 세상의 공식을 받아들이고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것이 어찌 됐든 정답일까? 부조리를 받아들여서라도? 섣불리 대답하긴 어렵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그 학생처럼 공식에 의존하며 살아가더라도, 언젠가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최선생은 정답을 맞힌 게 아니라 다른 문제로 나아간 것일 뿐이고, 그건 연주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은 자기만의 태도, 세상의 공식과 다른 나만의 함수를 만들고 지켜야 한다. 나의 영혼만큼은 지켜줄 그 함수를. 재언은 그런 힌트를 남기고 연주의 인생에서 꿈처럼 사라졌다. 인생이란 문제엔 정답이 없다. 힌트만 있다. 연주는 아프게 그 힌트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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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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