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과 영화의 장점만을 살린 뮤지컬 영화 - 위키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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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봤던 <위키드>가 영화로 개봉했다.
뉴욕까지 왔는데 기념으로 뮤지컬은 보고 가자 해서 그날 제일 싸게 나온 티켓이었던 <위키드> 티켓을 사서 봤었다. 원작 책 내용도 전혀 몰랐고 영어도 반의반 정도만 알아들었나, 대충 흐름만 이해하고 브로드웨이 배우의 공연을 실제로 보고 듣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봤었던 기억이 난다.
와 잘한다 확실히 브로드웨이는 다르구나라는 짧은 감상만 남기고 바로 다음 일정으로 갔었다. 이렇게 별 관심이 없을 때도 <라이언 킹>, <오페라의 유령>, <캣츠> 같은 작품과 항상 함께 언급되는 메이저 작품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 뮤지컬이 이제야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원래 <위키드>가 이런 내용이었던가?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줄은 몰랐다.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항상 멸시를 받으며 자란 엘파바와 사회성도 좋고 착해서 인기가 많은 글린다의 우정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하는 사회와 군중심리, 동물권 등 제법 진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엘파바 역을 맡은 신시아 에리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반응이 꽤 많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뮤지컬도 가벼운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원작은 뮤지컬보다 더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았다. 나는 스포일러에 딱히 거부감이 없어서 (위키드는 원작이 6권이나 되는 장편이라 다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기도 하고) 검색해서 나오는 요약정리를 봤는데 원작은 어둡다 못해 굳이 이렇게까지 불행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스토리였다. 영화는 각색된 뮤지컬을 기반으로 만들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가창력으로 유명한 아리아나 그란데는 뮤지컬 영화에서도 당연히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브리저튼>에도 나왔던 피예로 역의 조나단 베일리는 춤을 너무 잘 춰서 놀랐다.
무엇보다도 <위키드>는 엘파바 역을 맡은 신시아 에리보라는 배우의 발견이었다. 원래 뮤지컬 쪽에서 유명했는데 이제 드라마, 영화에도 진출한 배우였다. 이런 배우를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아쉬울 정도의 미친듯한 연기력이었다. 글린다가 할머니에게 받은 촌스러운 모자를 엘파바에게 선물이라고 주며 밤에 있을 파티에 초대하는 장면이 있었다. 자신을 놀리려고 한 줄도 모르고 모자를 쓰고 파티에 참석한 엘파바는 사람들이 비웃고, 자신을 두고 둥그렇게 에워싼 상황에서 혼자 춤을 춘다.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 수치스러움과 서글픔이 한 번에 다 느껴지는 연기였다.
처음에 춤을 출 때는 저게 뭐지...?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캐스팅은 다 배역과 잘 어울리고 좋았다. 특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후 다시 전성기를 맞은 양자경은 이번에도 역시 쉬즈 대학교 학장 마담 모리블 그 자체였다. 중간중간 지루했던 부분에서 뭔가 쎄한데 진짜 착한 사람인지 엘파바를 이용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마담 모리블의 애매모호함을 계속 끌고 나가서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연급 다음으로 분량이 많았던 마담 모리블이라는 역할과 조연치고 꽤 얼굴을 자주 비추는 글린다 무리 중 한 명도 아시안이 맡았다. 글린다의 친구는 미디어 속 퀴어 스테레오타입이었는데 아시안 남자가 맡았다는 게 유색인종에게 성 소수자 코드까지 몰아주기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다.
한 무대에서만 진행되는 뮤지컬이 가진 공간이라는 제약을 다양한 로케이션과 연출, 카메라 워크로 더 화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영화다. 하지만 그만큼 뮤지컬은 앙상블들의 안무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게 잘 안 담길 때가 있다. 그런데 <위키드>는 군무 수준의 안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찍어 우리 이만큼 연습했어 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동시녹음. 뮤지컬 영화는 보통 후시녹음으로 알고 있는데 <위키드>는 동시녹음이었다. 나도 영화를 다 보고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 정도로 믿기지가 않았다. 아이돌 춤만큼 움직임이 많은 동작들을 소화하면서 라이브, 그것도 흔들림 없이 정확한 발성으로 라이브를 했다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 특히 태양의 서커스 수준인 피예로와 앙상블의 ‘Dancing Through Life’와 빗자루가 아닌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엘파바의 ‘Defying Gravity’는 이게 가능하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퍼포먼스들은 완벽했는데 하나 아쉬운 점은 자막이었다. 언리미티드, 파퓰러, 퍼펙트 같은 영단어는 왜 번역을 안 하고 그대로 쓴 건지 의문이었다. 국내에서도 라이선스로 공연됐던 작품이라 넘버도 이미 다 정식으로 번역돼있을 텐데 왜 굳이 그대로 썼을까. 자막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언리미티드, 파퓰러만 동동 떠다녔다. 그냥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억지로 이해하고 겨우 넘겼다.
뮤지컬과 영화가 가진 각각의 장점을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실망하고 나온 기억이 대부분인데 <위키드>는 오랜만에 본 제대로 된 뮤지컬 영화였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지막 ‘Defying Gravity’에서 그 아쉬움이 다 상쇄됐다. 중력을 거스르겠다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엘파바와 함께 영화 <위키드>는 파트2에서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끝이 난다. 파트 2 개봉은 내년 11월 개봉이라고. 언제 개봉하나 싶지만 <위키드> 파트 1도 2024년 개봉 예정이라고 했을 때 멀게만 느껴졌는데 벌써 이렇게 개봉해서 보고 후기를 남기고 있으니 파트 2도 눈 깜짝할 사이에 개봉하지 않을까. 파트 2 개봉 전에도 다른 장르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겠지만 뮤지컬 영화는 가뭄에 콩 나듯 개봉하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위키드>를 비롯한 뮤지컬 영화의 흥행으로 완성도 높은 뮤지컬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신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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