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눈이 내리는 날 까치.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1/20241128172222_sezzvzip.jpg)
첫눈이 내린 나뭇가지 위에 앉은 까치
첫눈이 내리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눈꽃이 피듯 ‘겨울 감성’이 올라옵니다. 연말을 맞이하듯 길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고, 겨울바람 냄새는 우리에게 겨울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첫눈'하면 애틋한 '사랑'이 담긴 시, 문학, 영화가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첫눈’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합니다.
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아련, 애틋'과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윤동주의 시 '눈 오는 지도'는 순이가 떠난 후, 순이가 어디로 떠난지 몰라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라고 합니다. 윤동주의 시에서 '순이'는 작품 '사랑의 전당'과 '소년'에도 등장합니다. 실제 인물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윤동주 시인이 사랑했던 '순이'가 실제로 있었다면 안타까운 이별을 한 여인일 것입니다. 눈 내리는 배경은 이러한 '아련, 애틋'의 감성에 한층 더 깊이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눈이 내릴 때에는 사랑했던 이를 떠올리곤 합니다.
첫눈 오는 날 (정호승)
남한테 비굴하게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첫눈이 내릴 때
첫눈한테는 무릎을 꿇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첫눈 오는 날
길 잃어 쓰러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 내리는 날은 때로는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갈 곳 없는 이, 길 잃은 이들은 추위로 인해 그 어려움이 배가 되기도 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첫눈 오는 날'은 평소엔 비굴하게 굴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지만, 길 잃어 쓰러진 강아지를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외부의 온도는 낮으나 내면의 마음은 따뜻해지는 시입니다.
첫눈 (정연복)
첫눈 오는 날
그때 그 자리에서 만나자는
당신의 말씀 아직도
귀에 생생해요.
하루도 빠짐없이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첫눈
조금은 더 빨라질 수 있을까요.
당신과 함께할 첫눈이
언제 올지는 몰라도
매일 밤 내 꿈속에서는
송이송이 눈이 내려요.
우리나라에서 '첫눈'은 '약속'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첫눈 오는 날 / 그때 그 자리에서 만나자'라는 구절처럼, 재회 및 고백 등을 약속하곤 합니다. 때로는 '기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첫눈이 올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등 믿기는 어렵지만 한편으로 믿고 싶은 미신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애틋, 아련' 혹은 '약속', '기적'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첫눈'이 오는 날에 관련된 문화는 매우 다양합니다. 물론 눈이 안 오는 나라들도 꽤 있으나, 이번 글에서는 눈이 내리는 나라들 위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일본 - 일본에서 첫눈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특히 '初雪'(하츠유키)라는 단어로 불립니다. 일본에서는 첫눈이 왔을 때 "하츠유키가 오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민속에서는 첫 눈을 맞으며 '첫눈의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첫눈을 맞은 날에 외출을 삼가며,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것을 권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집안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한 음식을 나누며 새로운 겨울의 시작을 축하하기도 합니다.
2. 미국 - 미국에서는 "첫눈이 오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 첫눈이 오면 그날에 특별한 일을 시작하거나 소원을 빌면 그 일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시점에 첫 눈이 오면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여깁니다. 이때 미국은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랑하는 이 혹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3. 러시아 - 러시아는 넓은 땅인 만큼 첫눈이 오는 시기가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때 러시아는 특이하게도 1월 7일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 이유는 러시아는 대다수 국민이 '정교회'신자이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12월 25일보다 대략 13일 가량 뒤인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산타클로스' 대신 '제드마로스'라는 할아버지가 손녀 '스네구로치카'와 함께 다닌다고 합니다. '루돌프' 대신 '흰색 말'을 타고 다닌다고 합니다. 제드마로스의 손녀에 대한 사랑이 모든 아이들에게 확산되어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나누어준다는 미신이 있지만, 슬프게도 정작 손녀 스네구로치카는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 녹아내리기에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4. 영국 - 영국에서는 첫 눈이 오는 날에 "첫눈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없더라도 "첫눈을 맞으면 다음 해에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미신이 전해집니다. 영국은 왕실이 존재하는 국가이기에, 왕실에서는 매년 샌드링엄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국민에게 공개하는 공식 크리스마스 카드를 제작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해에는 'Wishing you a very Happ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라는 문구와 함께 지난해 대관식 당시 촬영한 버킹엄 궁 앞 알현실 속 찰스 3세 국왕 부부 사진을 첨부했다고 합니다.
5. 핀란드 - 핀란드 사람들은 첫 눈을 맞으며 그해의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기를 기원하기도 합니다. 핀란드의 겨울은 특히 길고 춥기 때문에, 첫눈이 오면 일종의 축하 분위기 속에서 그 해의 겨울을 맞이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다만 핀란드의 눈은 금방 녹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총출동하여 눈을 치우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6. 독일 - 첫눈이 오는 날 독일의 전통 중 하나는 첫 눈을 맞은 후 '복을 기원하며'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첫 눈으로 만든 작은 조각들을 집안에 두는 것입니다. 독일은 북위 47~55도에 있어 우리나라에 비해 고위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먄 오전 8시 경에 일출, 오후 4시 경에 일몰이 시작되어, 낮보다 밤이 2배 가량 길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철학자 칸트의 산책 시간이 3시 30분이었던 이유도 독일 겨울의 빠른 일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두운 시간이 길어지면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칸트, 니체, 괴테 등의 철학자와 문학가를 다수 배출했다고도 합니다. 독일은 저온다습한 겨울이기에 따뜻한 보온 물주머니를 침대 이불 속에 넣어두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7. 프랑스 - 프랑스에서는 첫눈이 올 때 그날을 기념하며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삼기도 합니다. 특히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고백을 하고, 이후 성사되면 매년 그곳에서 기념일을 챙긴다고 합니다. 화가들은 첫눈이 오는 날 캔버스를 들고 몽마르트 언덕에 가서 그 풍경을 그린다고 합니다. 또한, 프랑스의 일부 지역에서는 첫 눈이 오면 집에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문을 열어두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세계 각지에서 첫눈과 관련된 의미나 문화는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결국 첫눈을 희망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그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기 위한 여러 전통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