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사와 자막 없이도 눈물 한 바가지 흘리고 나올 수 있는 기분 좋은, 청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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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설렘을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느끼다" 영화 <청설>
대만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대만 영화 혹은 드라마 속 풍기는 색감과 분위기에 매료되어 대만 한달살이를 꿈꾸는 사람이다. 10월 말 즈음, 모 웹툰 작가의 인스타그램 스레드에서 영화 <청설> 리메이크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확신이 생겼다. 당장 원작을 보고 개봉 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야겠다는.
대만 원작 '청설'은 2010년에 개봉한 청펀펀 감독의 작품으로, 손으로 말하는 '양양'과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티엔커'의 간절한 사랑 이야기다. 동생 '양양'은 수영선수인 청각장애인 언니 샤오펑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는 양양은 오로지 언니 샤오펑의 시간과 인생이 전부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언니의 시간에 맞춰 살아온 양양에게 어느 날 티엔커가 등장한다. 티엔커는 양양에게 첫눈에 반해 양양과 친해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행복도 잠시, 양양에게 여러 고비가 닥친다.
1. 언니를 보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시간이 부족해, 티엔커와 사랑을 나눌 시간이 없다.
2. 티엔커와 데이트를 간 사이, 아파트에 불이 나 언니가 화재 경보기를 듣지 못해 대피를 못하고 연기를 꽤 마신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간다.
3. 언니가 수영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자기 때문에 언니가 못 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해하고 언니보다 더 속상해한다.
4. 언니는 양양 자신의 인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답답해 하며 진심으로 충고한다.
한번도 양양은 자신의 꿈과 인생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니가 수영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기쁨이었다. 착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수영장에 홀로 나가 생각에 잠긴다. 언니가 매일 수영을 했던 물속에 얼굴을 넣고 숨을 참아본다. 언니가 느꼈던 청각 외의 감각들을 하나씩 느껴보던 중, 티엔커가 조심스럽게 양양에게로 다가간다. 양양이 듣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양양을 생각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고백한다. 처음으로 양양에게 수화가 아닌 말로 표현한 장면이다. 이때 아마 양양은 티엔커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티엔커는 가게에서 부모님께 양양을 소개한다. 부모님은 소리를 듣지 못할 양양을 배려해 스케치북에 적은 말을 넘기며 어설픈 수화를 한다. 티엔커 부모님과 티엔커, 양양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하는 장면은 화목하고 따듯하다. 그리고 이때 반전이 등장한다. 혹시라도 영화를 볼 생각이 있는 분들을 위해 반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실관람객 평점 8.51, 리메이크작 <청설>
수화로 소통하는 영화. 수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화도 하나의 언어임을, 또 국제수화가 따로 있음을 친절하고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전체 스토리는 유사하게 가져가되, 원작을 각색하여 재구성한 장면들이 보였고 원작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취업할 나이는 되었지만 철학과를 나와 하고 싶은 일도 경력도 없는 남자주인공 용준과, 동생 여름을 보조하고 국제 수화를 배우고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하는 언니 여름이 나온다. 원작에서는 언니가 수영선수, 동생이 언니를 보조하는 역할이자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리메이크작에서는 반대로 동생이 수영선수, 언니가 동생을 보조한다.
장애인 차별 문제를 원작보다 선명하게 부각하려고 했다. 수영 연습을 하던 중, 비장애인 어머니들이 장애인 때문에 수영장 물이 더러워진다는 둥, 락스 물을 새로 갈으라는 둥 차별적이고 이기적인 말들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다. 이때 용준은 차별을 리드한 어머니가 차에 타고 출발하기 전에 다가가 어머니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리고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세운 어머니의 차를 사진 찍고 온라인 신고를 하면서 통쾌하게 어머니의 차별 행위를 응징한다.
논란의 '클럽씬'을 아는가. 리메이크작을 본 관람객이라면 모를 수 없다. 중간에 여름, 가을, 용준 셋이 놀러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루는 용준이 여름과 가을을 데리고 클럽에 간다.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웬 클럽? 이라는 생각이 처음엔 들었었는데, 다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세 사람은 북적북적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스피커 앞에 선다. 그리고는 용준이 스피커에 손을 대고 소리를 느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아. 이래서였구나, 하며 용준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클럽 씬은 이래나저래나 뜬금없는 장면이기는 했다. 그러나 클럽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을 여름과 가을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되었을 거고, 비록 소리를 듣지 못해도 일렁이는 소리의 촉감은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여름과 가을에게, 그리고 관람객에게 보여주려했던 것은 아닐까.
잔잔하게 울림을 주는 영화. '손으로 설렘을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느끼다'라는 포스터 문구가 영화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서서히 또렷해졌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게 사랑임을 보여주었던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였던 것 같다.
용준이 여름의 듣지 못하는 상황과 마음을 대신 이해하기 위해 이어플러그를 끼고 거리를 걷는 장면이 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직접 비슷하게 겪어보니 몰랐던 것들이 여전히 많았음을, 가을의 감정을 뒤늦게 이해하였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달하는 장면이라 더 깊이 와닿았다.
홍경 배우와 노윤서 배우의 합도 좋았다. 영화 개봉 전 메인 포스터를 먼저 접했을 때 연하고 고운 그림체라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연기 역시 최고였다. 대사와 자막 없이도 눈물 한 바가지 흘리고 나올 수 있는 기분 좋은 영화였다. 아직 극장에서 방영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한번 관람해보길 바란다.
[양유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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